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제약사들이 경쟁업체나 바이오벤처 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 투자 당시 기대했던 인수·합병(M&A)이나 신약 개발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도 주식 처분만으로 많게는 10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자금 마련의 창구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보유 중인 크리스탈지노믹스 주식 192만3999주(7.85%) 전량을 장내에서 팔았다.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이 각각 67만737주(2.71%)와 125만3262주(5.07%)를 처분했다. 처분금액은 424억원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총 201억원을 투자해 크리스탈 2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 투자 기간 동안 당초 기대했던 연구·개발(R&D)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지만 주식 처분으로 약 109.4%의 수익률을 올렸다.
앞서 한미약품은 옛 동아제약 지분 투자로도 6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한미약품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동아제약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2008년 3월 보유 지분율을 9%대로 끌어올렸다. 동아제약 지분 투자에만 총 734억원을 투입했다. 동아제약이 2013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이후 한미약품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았고 주식 처분으로 총 1158억원을 확보하며 57.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수익률만 따지면 성공적인 투자인 셈이다.
제약사 중에는 녹십자가 왕성한 투자로 전문 투자기관 부럽지 않은 수익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녹십자는 2003년 1600억원에 인수한 대신생명(현재 녹십자생명)을 8년 후 현대자동차에 2283억원에 팔았다. 경남제약 인수(210억원)와 매각(245억원)을 통해 35억원의 수익을 남겼다. 녹십자는 지난 2012년부터 동아제약의 지분을 4.2% 매입했고 2013년 동아제약의 분할 이후 대부분 매각하면서 200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냈다.
녹십자의 일동제약 지분 취득은 경영권분쟁으로 번지면서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안겨다줬다. 녹십자는 녹십자홀딩스 등과 2012년부터 일동제약 주식 취득에 총 738억원을 투입해 지분율을 29%까지 끌어올렸고 지난해 총 1399억원에 팔면서 89.6%의 수익률을 올렸다.
지분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옛 이노셀(현재 녹십자셀) 투자도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투자로 평가받는다. 녹십자가 지난 2012년 5월 150억원을 투자해 녹십자셀을 인수했고, 2014년 추가로 99억원을 들여 지분율을 25.0%로 높였다. 현재 녹십자셀의 주가 상승으로 현재 녹십자의 주식 평가액은 약 1200억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보유 중인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일부를 매각하면서 이미 투자금을 회수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2년 296억원을 투자해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374만4500주(9.1%)를 확보하며 2대주주에 올랐다. 유한양행은 3년만인 지난해 7월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174만4500주를 장내매도, 시간외매매 등을 통해 272억원에 처분했다. 이어 올해 초 추가로 100만주를 162억원에 팔아 이미 투자금 이외에 131억원을 챙겼다.
유한양행은 현재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100만주(2.0%)를 보유 중인데, 주식 평가액은 약 240억원에 달한다. 보유 중인 주식을 모두 처분할 경우 100% 이상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말 바이오업체 제넥신에 200억원 지분 투자를 했는데, 현재 주식 평가액은 3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한양행은 테라젠이텍스(9.2%), 바이오니아(8.65%), 엠지(38.5%) 등 바이오벤처의 지분을 다수 보유 중이다.
업계에서는 제약사들이 동종 업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미약품, 녹십자, 유한양행 등 모두 지난해 나란히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제약업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들 업체의 투자 사실만으로도 투자 대상업체의 주가상승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형제약사들의 투자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투자 당시 목표로 세웠던 R&D 시너지는 내지 못하고 투자금만 회수하는 데 그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크리스탈의 주식을 처분한 이유도 투자 당시 기대했던 R&D 제휴가 중단되며 주식을 장내에서 팔았다. 유한양행 역시 신약 제휴를 목표로 한올바이오파마에 투자했지만 대웅제약이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하면서 R&D 성과를 내지 못하고 주식을 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