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보령제약이 간판 의약품의 업그레이드 제품을 계열사와 동시에 허가받는 '쌍둥이 전략'을 구사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사업 성격이 다른 계열사를 간판 의약품의 '보험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보령제약은 최근 두 개의 고혈압약 성분(피마살탄+암로디핀)으로 구성된 '듀카브정' 4종을 허가받았다. 듀카브는 보령제약의 간판 제품인 고혈압신약 '카나브'에 또 다른 고혈압약 성분 '암로디핀'을 결합한 복합제로 카나브의 업그레이드 제품이다.
지난 2011년 국산신약 15호로 발매된 카나브는 지난해 334억원의 매출을 올린 보령제약의 효자 제품이다.
고혈압치료제 처방 패턴이 단일제보다는 복합제로 재편된 상황에서 보령제약 역시 복합제로 효과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의약품 조사 업체 유비스트의 자료의 원외 처방실적을 보면 지난달까지 고혈압치료제 매출 상위권에는 베링거인겔하임의 트윈스타(텔미살탄+암로디핀, 392억원), 한미약품의 아모잘탄(암로디핀+로잘탄, 274억원), 노바티스의 엑스포지(발사르탄+암로디핀, 270억원) 등 복합제가 주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나브의 매출도 지난해 334억원으로 발매 이후 처음으로 전년대비 감소하며 주춤하는 모습이다.
보령제약은 카나브의 허가를 받기 전인 2009년부터 카나브 복합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2013년 카나브와 이뇨제를 섞어 만든 '라코르'(동화약품이 판매)를 발매한 바 있다. 듀카브가 약가협상을 거쳐 발매되면 '카나브시리즈' 3종이 출격하는 셈이 된다.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보령제약의 계열사 보령바이오파마도 듀카브와 같은 성분으로 구성된 '카브핀' 4종을 비슷한 시기에 허가받았다는 점이다. 카브핀 역시 보령제약이 생산한다. 듀카브의 포장만 바꾼 제품이다.
보령바이오파마는 백신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로 보령제약의 계열사 보령파트너스가 최대주주(지분율 87.4%)다. 보령파트너스는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의 장남 김정균 보령제약 이사가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대웅제약이 주력 제품의 후발주자를 지주회사 대웅을 통해 발매한 적이 있지만 계열사와 동시에 신제품을 허가받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문 현상이다. 업계에서는 보령제약이 약가인하나 행정처분 등 추후 발생할지 모르는 악재에 대비해 보험용으로 계열사를 통해 같은 제품을 하나 더 장착하는 것으로 관측한다.
예를 들어 보령제약의 듀카브가 같은 약가 사후관리가 적용돼 약가가 큰 폭으로 깎여 수익성이 낮아지면 보령바이오파마의 카브핀이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실제로 보령제약의 카나브는 2014년과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사용량이 많으면 약가가 깎이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 등이 적용돼 약가가 소폭 인하된 바 있다.
이미 보령제약은 유사한 전략으로 효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2년 '아스피린' 성분의 보령아스트릭스를 팔아오다 2015년부터 돌연 생산을 중단하고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의 판매를 시작했다.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 역시 보령제약에서 생산하는 보령아스트릭스의 '쌍둥이' 제품이다.
보험약가를 올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보령제약은 보령아스트릭스를 43원의 보험약가로 판매했는데, 2015년 이후 보령바이오파마의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를 73원에 등재받고 대신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사 제품의 보험약가가 낮다는 이유로 허가를 받납하면 일정 기간 동안 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 없지만 다른 업체의 비싼 제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것은 제약이 없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보령바이오아스트릭스는 지난해 190억원어치 팔리며 기존의 보령아스트릭스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었다. 보령제약은 의사단체 등으로부터 '편법 약가인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실리를 챙긴 셈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보령바이오파마의 카브핀을 당장 발매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향후 수출 등을 대비해 전략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