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올 하반기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시장 개방을 앞두고 제약사들간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는 국내 업체들이 일제히 신제품 발매를 예고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그동안 제약사들이 새로운 백신을 내놓을 때마다 품질관리 위반으로 적발되는 상황이 반복된 터라 업체마다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녹십자는 이달 들어 독감백신 2종(인플루엔자분할백신,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주)의 7개 제조단위에 대해 국가 출하승인을 받았다. 약 90만도즈(90만명 투여 분량) 규모이며 올 하반기 공급되는 백신 중 처음으로 승인받은 물량이다.
백신, 혈액제제 등과 같은 보건위생상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제품은 식약처가 유통 전 품질적합 여부를 판별하는 국가출하승인을 통과해야 판매가 가능하다. 제약사들은 3월부터 독감 백신 생산에 착수하고 가을 이전에 식약처 출하 승인을 받고 공급 채비를 마친다.
녹십자의 출하 승인으로 본격적인 독감백신 시즌에 돌입했다. 연간 국내 독감백신 수요량은 약 1600만~1700만도즈 규모다. 식약처는 올해 약 2300만도즈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급 초과량이 600만~700만도즈 가량에 달해 제약사들의 시장 쟁탈전은 뜨거울 수 밖에 없다. 독감백신은 매년 균주가 달라지기 때문에 생산한 해에 팔지 못하면 모두 버려야 한다.
올해는 4가백신의 본격적인 시장 경쟁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여느 때보다 시장 판도 변화에 업계 관심이 높다. 4가 백신은 한번의 주사로 4가지 독감바이러스 면역력을 확보하는 제품이다. 지금까지 국내 유통된 독감백신은 대부분 3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3가 백신이다. 일반적으로 3가 독감백신으로도 충분한 면역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독감 바이러스 변이로 인한 대유행 등에 대비하기 위해 4가 독감백신 접종이 권고되는 추세다. 접종료 기준으로 4가백신(약 4만원)이 3가백신(약 3만원)보다 30% 가량 비싼 수준이다.
지난해 다국적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4가백신 ‘플루아릭스테트라’를 출시했지만 공급량은 150만도즈에 불과했다. 한국GSK 관계자는 “현재 본사에서 올해 한국 시장 공급물량을 조율 중인데 지난해보다는 공급량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만성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 대상으로 4가백신의 유효성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고 말했다.
녹십자, SK케미칼, 일양약품 등 토종제약사들도 4가백신 시장을 정조준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유정란 방식 4가백신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를 허가받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달 들어 4개 제조단위(약 50만도즈)를 출하 승인받았다.
녹십자는 올해에도 예년 수준인 800만~1000만도즈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3가백신과 4가백신을 각각 절반 정도 공급할 계획이다. 국내 독감백신 시장은 지난 2009년 녹십자가 백신 개발을 완료한 이후 점유율 50% 가량을 차지하며 독주해왔다. 녹십자 측은 축적된 기술력와 안전성을 앞세워 시장 방어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녹십자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수천만도즈를 생산·판매하면서 단 한번도 품질 이상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 국내 독감백신 시장에 데뷔한 SK케미칼은 작년 12월 4가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4가’를 허가받고 본격적인 출하를 준비 중이다. SK케미칼의 독감백신은 전통적인 백신 제조기술인 유정란을 사용하지 않고 세포배양 방식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4가 독감백신이다.
세포배양 방식 백신은 생산량과 생산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인플루엔자의 대유행 시 짧은 기간에 백신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부 오염에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K케미칼은 보건소 입찰 물량을 제외한 민간 의료기관 공급물량은 모두 4가 백신을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 2013년 독감백신 시장에 진출한 일양약품도 올해는 4가 백신 시장도 겨냥했다. 일양약품은 올해 초 4가 독감백신의 임상시험을 마치고 식약처에 시판허가를 신청했고 이르면 오는 8월께 허가가 예상된다. 일양약품은 4가백신의 시판승인 이후 최종 공급 물량을 결정할 방침이다. 일양약품은 지난 2014년 약 200만도즈, 지난해 약 250만도즈를 생산했고 올해에도 공급 물량을 더욱 늘린다는 방침이다.
제약사들은 올해 새로운 형태의 독감백신이 첫 발매되는 만큼 품질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후발주자인 일양약품과 SK케미칼은 시장 진출 초반 쓴맛을 본적이 있다.
일양약품은 데뷔 2년차인 지난 2014년 국가출하승인을 신청한 제품 일부에서 품질 기준에 다소 미달된다는 점이 발견돼 약 30만도즈 분량이 판매 승인을 받지 못했다.
당시 일양약품은 식약처 승인을 받은 이후 독감백신을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보건소에 납품할 예정이었지만 제동이 걸렸다. 일양약품은 해당 제품의 제조업무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고, 이후 백신 품질관리 책임자도 교체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막바지 생산분량에서 일부 제품이 식약처의 국가출하승인 검사 결과 함량부족 판정을 받고 유통이 허용되지 않았다. 발매 첫해 총 26번의 국가출하승인을 통과하며 370만도즈를 유통했지만 마지막 생산분량 15만도즈가 주요 성분 일부에서 함량이 미달된 것으로 확인돼 판매 승인을 받지 못했다.
SK케미칼 입장에선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세포배양방식 백신을 내놓고 안전성을 홍보한 상황에서 체면을 구겼다. SK케미칼의 독감백신도 제조업무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다.
백신 제품이 국가출하승인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 시중에 판매되지 않았더라도 품질관리 미흡으로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통상 제약사의 자가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에 한해 식약처 출하승인을 신청하기 때문에 일양약품과 SK케미칼의 품질관리 위반은 이례적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일양약품과 SK케미칼 측 모두 “식약처 부적합 이후 제조공정 관리 체계를 더욱 엄격하게 조치했다"고 말했다
제약사들간 영업경쟁도 관전포인트다. GSK는 유한양행과 공동으로 독감백신 판매에 나서고 SK케미칼은 JW신약과 손 잡았다. 일양약품 백신은 한국백신이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