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글로벌제약사들이 야심차게 한국 복제약(제네릭) 시장을 두드렸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다진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국내제약사들이 평정한 시장에 뒤늦게 진입해 ‘히트 제품’ 하나 발굴하지 못하는 처지다.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LG생명과학은 지난 7일 하루 동안 ‘발사브이’, ‘로살브이’ 등 총 23개 품목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이중 20개 품목은 지난 2013년 이후 허가받은 제네릭 제품이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더 이상 팔지 않겠다고 허가증을 반납한 것이다.
LG생명과학이 자진 취하한 제품 대다수는 한국화이자가 LG생명과학에 의뢰해 허가받은 제네릭이다.
한국화이자와 LG생명과학은 지난 2012년 제네릭 사업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한국화이자가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위해 국내 제네릭 사업에 뛰어들면서 LG생명과학과 손을 잡은 것이다. LG생명과학이 화이자의 의뢰를 받고 제네릭 허가 취득 후 생산·공급해주면 화이자가 판매하는 방식이다. 당시 화이자는 ‘화이자 바이탈스(Pfizer Vitals)’라는 제네릭 사업 브랜드를 출범하고 국내 제네릭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LG생명과학은 2013년 이후 40여개의 제네릭을 허가받았다. 전체 허가 제품 70여개 중 절반 이상을 제네릭이 차지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허가받은 제네릭이 30여개에 달할 정도로 제네릭 개발에 집중했다. 이들 제네릭은 대부분 화이자 공급용이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10년 옛 LG텔레콤 출신 정일재 사장의 부임 이후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하자”는 경영 방침을 세우고 제네릭 시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LG생명과학은 화이자와의 파트너십 계약 이전에 허가받은 ‘몬테루브이’, ‘실로브이’, ‘클로브이’ 등 제네릭 제품의 판권도 화이자에 넘겼다.
하지만 시장 진입 3년 만에 무더기로 철수하며 일부 제네릭 시장은 백기를 들었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정비 차원에서 일부 제품의 허가 취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향후 판매할 계획이 없는 제품은 허가증을 반납했다는 얘기다.
사실 화이자의 제네릭 시장 고전은 이미 시장에서 신호가 감지됐다. 의약품 조사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화이자가 판매 중인 제네릭 제품 중 고혈압약 ‘노바스크브이’와 ‘실로브이’가 지난 5월까지 각각 25억원, 3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올렸을 뿐 나머지 제품들은 처방실적이 미미하다. 화이자의 제네릭 사업이 출범 4년만에 사실상 ‘개점휴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4년 전 출범했던 화이자 바이탈스도 해체됐다.
아직 화이자가 국내 제네릭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제네릭 전담 사업부가 영업하는 방식에서 질환군별로 제품 특성에 맞게 영업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향후 또 다른 제품의 제휴도 추진 중이다”면서 “화이자와의 제네릭 사업이 청산 수순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세계 1위 제네릭 업체 테바도 아직 국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테바는 연간 약 20조언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다. 지난 2013년 11월 한독과 합작사 한독테바를 설립하고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합작비율은 테바 51%, 한독 49%으로 테바가 제품을 공급하고 한독과 한독테바가 공동으로 영업하고 있다.
한독테바는 국내 시장 진출 이후 기존에 명문제약이 팔던 있던 자사 제품 판권을 회수하고 천식약 ‘몬테퀄’, ‘테바레트로졸’, ‘테바도네페졸구강붕해정’ 등 20여개의 신제품을 발매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10억원 이상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한 제품이 ‘펜토라’(13억원) 1개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독테바의 지난해 매출은 105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데뷔 첫해인 2014년 38억원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테바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노바티스의 제네릭 사업 자회사 산도스도 국내에서 100여개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의 ‘히트 제품’은 전무하다. 한국산도스의 지난해 매출은 343억원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네릭 시장은 제약사들의 과열경쟁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달해 글로벌 제네릭 업체가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번에 허가를 취하한 화이자의 제네릭 제품 고혈압약 ‘이베브이’의 경우 제네릭 제품이 23개에 달한다. 고혈압약 ‘올메브이’는 똑같은 경쟁 제품이 70여개에 이른다. 한독테바가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몬테퀄’은 44개 업체가 제네릭 시장에 포진해있다.
지난해 처방실적 상위 제네릭 제품은 삼진제약의 ‘플래리스’(479억원), 동아에스티의 ‘플라비톨’(305억원), 종근당의 ‘리피로우10mg’(266억원), 유한양행의 ‘아토르바10mg’(244억원), 일동제약의 ‘큐란’(229억원), 동아에스티의 ‘리피논10mg’(179억원), 한미약품의 ‘카니틸’(143억원) 등 모두 국내제약사들이 차지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릭은 다국적제약사가 발매했더라도 과학적으로 국내사가 만든 제품과 똑같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면서 “이미 대부분의 제네릭 시장에 국내업체 수십곳이 선점한 터라 다국적제약사 브랜드를 앞세워도 후발주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