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제약사들이 고혈압치료제 ‘트윈스타’ 복제약(제네릭) 시장을 정조준했다. 같은 날 제네릭 제품 83개를 허가받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시장을 두드리고 나섰다. 제네릭 허가 규제 완화로 한정된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제네릭을 쏟아내며 과당경쟁을 펼치는 관행이 또 다시 반복되는 조짐이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달 제약사 44곳이 총 93종의 ‘텔미사르탄+암로디핀’ 성분의 고혈압치료제 허가를 받았다. 베링거인겔하임이 개발해 유한양행과 공동 판매 중인 ‘트윈스타’의 제네릭 제품이다. 국내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칼슘길항제(CCB 계열)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계열) 조합 약물이다.
지난 23일 일동제약의 ‘투탑스’를 시작으로 셀트리온제약, 부광약품, 한독, 광동제약, 동국제약 등이 일제히 트윈스타 제네릭의 허가를 받았다. 지난달 30일에는 하루 동안 83개의 트윈스타 제네릭이 식약처 시판승인을 받았다. 9월22일부터 9일 동안 허가받은 전문의약품 116개 중 트윈스타 제네릭 제품이 71.6%를 차지할 정도로 특정 시기에 같은 제품 허가가 집중됐다. 트윈스타 제네릭 제품은 약가등재 절차를 거쳐 오는 12월께 출시될 전망이다.
제약사들의 트윈스타 제네릭 허가가 집중된 이유는 시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10년 발매된 트윈스타는 지난 3년(2013~2015년)간 처방실적이 2343억원에 달한다. 2개의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알약 1개만 복용해도 된다는 편의성이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주효했다. 유한양행이 트윈스타 발매와 함께 영업에 뛰어들면서 시장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제약사들이 트윈스타 제네릭 허가 신청이 가능해진 날에 집중적으로 허가를 신청해 같은 날 시판승인이 쏟아졌다.
신약의 경우 식약처 허가 이후 6년 동안 부작용을 재검증하는 재심사 기간을 부여받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제네릭 허가 신청이 불가능하다. 트윈스타는 지난 2010년 8월19일 허가받은 이후 6년이 지난 올해 8월19일 이후부터 허가 신청이 가능해졌다. 트윈스타를 구성하는 2개의 성분 모두 물질특허가 만료돼 특허 장벽도 없다. 재심사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제약사들이 동시다발로 허가 신청서를 제출해 유사 시기에 시판승인을 받은 것이다.
유사 시기에 동일 성분의 제네릭 허가가 집중되는 것은 제네릭 시장 개방과 함께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
업계에서는 허가 규제의 완화로 제네릭 제품의 허가 건수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식약처는 지난 2014년 의약품을 생산하는 모든 공장은 3년마다 식약처가 정한 시설기준을 통과해야 의약품 생산을 허용하는 내용의 ‘GMP 적합판정서 도입’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서 허가용 의약품을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규정을 완화했다.
기존에는 다른 업체가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 의약품이 허가를 받으려면 3개 제조단위(3배치)를 미리 생산해야 했다. 생산시설이 균일한 품질관리 능력이 있는지를 사전에 검증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미 같은 제품을 생산 중인데도 또 다시 허가용 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적합판정을 통과한 제조시설에서 생산 중인 제네릭을 제품명과 포장만 바꿔 허가받을 때 절차가 간소화됐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허가 신청 수수료 90만원 가량만 부담하면 별도의 생동성시험과 허가용 의약품 생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신규 제네릭을 장착할 수 있게 됐다. 제약사들은 개발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네릭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어 위탁 다른 업체의 생동성 자료를 통해 제네릭 시장에 뛰어드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MSD의 항궤양제 ‘넥시움’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13개의 제네릭 제품이 허가받았다. 이중 상당수 제품은 직접 생산하지 않는 위탁 제품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시판승인이 쏟아진 트윈스타 제네릭 제품 중 상당수는 한국콜마, 다산메디켐 등 수탁 전문업체가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제네릭 제품의 무분별한 등장으로 영업현장에서 과당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제약사 한 개발본부장은 “신약개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제네릭 시장에서 캐시카우를 마련해야 하는 현실이지만 수십개 업체가 같은 시기에 똑같은 제네릭을 발매하면 시장 선점을 목적으로 출혈경쟁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