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복제약(제네릭)이 발매되면 전체적으로 동일 성분 의약품의 처방이 더 늘어날까?
지난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건강보험 약가제도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간 펼쳐진 논쟁이다. 이날 토론회는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면서 합리적인 의약품 보험약가 체계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는데, 토론 과정에서 제네릭과 약품 처방량간의 상관관계를 두고 잠시 설전이 펼쳐졌다.
이날 주제 발표를 한 권혜영 목원대학교 의생명보건학부 교수는 고지혈증치료제 ‘아토르바스타틴’(오리지널 제품명 리피토) 시장 패턴 분석을 통해 “제네릭 발매 이후에도 오리지널과 제네릭 사용량 점유율은 큰 변화가 없었다”면서 “오히려 환자 수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시장 확장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제네릭 도입 이후 신규 환자의 경우 기존환자보다 제네릭 처방이 3.81배 많았고, 동네 의원급에서 제네릭 처방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수치상으로 제네릭 발매가 처방량 증가를 견인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서국희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통상 제네릭이 발매되면 개인병원이나 작은 병원을 중심으로 제네릭을 쓰기 시작한다"면서 "일부는 환자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아토르바스타틴의 경우 LDL(저밀도지질단백질)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다고 쓰기 시작해서 계속 사용하는 방식으로 약 사용이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제네릭의 등장으로 일부 의료진의 경우 기존에 약물을 처방하지 않았던 환자에게 제네릭을 처방하는 사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제네릭과 처방량 확대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 교수는 “병원은 약이 들어오면 더 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오리지널은 그대로 쓰면서 제네릭 처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제네릭이 출시되면 시장이 확대된다”며 이 논리에 힘을 보탰다.
반론도 제기됐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제네릭이 발매됐다고 환자가 갑자기 늘어날 수는 없다. 약은 규정대로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제네릭 점유율이 높을수록 전체 약품비가 낮아질 가능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안 아픈 사람이 갑자기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 시장만 보고 제네릭이 약품 처방 증가를 부추긴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객석에 있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제네릭 발매시 단순히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만을 잠식했다고 볼 수 없다. 동일 치료군의 다른 의약품을 대체했을 가능성도 크다. 특정 약효군 전체 시장을 봐야 제네릭 발매에 따른 재정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설 정책연구기관이다.
제네릭과 처방량 증가의 상관관계에 대해 엇갈린 양 측의 시각 모두 일리가 있다.
이날 예시로 거론된 리피로의 사례를 따져보자. 리피토는 특허 만료 이후에도 매년 처방실적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리피토의 원외 처방실적은 특허 만료 직전인 2007년 773억원에서 지난해 1579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리피토의 보험상한가가 종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 것을 감안하면 처방량은 4배 가량 늘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지난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는 제네릭 발매시 종전 가격의 53.55% 수준으로 깎인다.
제네릭 제품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종근당의 리피로우(460억원), 유한양행의 아토르바(416억원), 동아에스티의 리피논(309억원) 등은 제네릭 제품들도 매년 기세를 올리고 있다. 리피토의 특허만료 이후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제품이 동반성장하면서 전체 아토르바스타틴 시장도 팽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셈이다.
하지만 이 사실만을 토대로 제네릭 발매로 인해 전체 처방량이 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변수들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고지혈증치료제 시장에는 아토르바스타틴 이외에도 심바스타틴, 로수바스타틴, 피타바스타틴 등 다양한 종류의 약물이 있다. 아토르바스타틴 성분의 제품들이 다른 성분 시장을 잠식하면서 시장이 팽창했을 가능성도 짚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환자 수의 증가도 시장 확대의 요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고지혈증 환자는 148만7825명으로 2012년 122만6320명보다 21.3% 증가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만약 제네릭 발매로 시장 규모가 팽창했다는 가설이 성립하려면 의료진의 과잉처방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제네릭 업체 입장에서 제네릭 발매 이후 시장 침투를 위한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을 뺏어오거나 같은 치료군의 다른 약물의 시장을 잠식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같은 성분의 제네릭 제품들도 타깃이 된다.
여기에 의료진을 설득해 처방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환자 수를 늘리는 전략도 강구되기도 한다. 물론 성공확률은 높지 않은 전략이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의료진들에게 기존에는 환자로 분류되더라도 약을 처방하지 않은 환자에게 제네릭 발매 이후 처방을 권유하는 전략도 구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의 은밀한 제네릭 영업이 과잉진료를 통한 처방량 증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네릭 영업력이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된 통계가 없다.
국내에서는 처방건당 약 품목수가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는 점도 의료진의 과잉처방을 의심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처방건당 약품목수는 3.9개로 2002년 4.15개보다 소폭 줄었지만 2개 안팎에 불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2배 가량 많은 수준이다.
이날 김성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전무는 "정부가 보험약가를 통제하는 것은 비용적으로 한계가 있다. 사용량을 줄이면 보험재정 절감 효과는 미미하다. 단순 감기처방을 보면 우리나라는 처방건당 약 품목수는 4.7개로 독일의 1.7개보다 월등히 많다“고 지적했다. 의료진들이 불필요한 의약품의 처방을 줄이면 효과적으로 약품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란 인식이다.
결국 제네릭이 처방량 확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강한 의심은 들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다양한 관리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험약가 등재시 낮은 가격을 책정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사후에도 다양한 약가인하 기전을 가동한다.
과연 의료진들의 불필요한 처방에 따른 약품비 누수 가능성은 없을까. 제네릭 발매로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이 약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특정 질환군 환자 수 증가율에 비해 약품 사용량 증가율이 지나치게 높지는 않을까. 건강보험 빅 데이터를 활용한 정부 차원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정확한 시장 분석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 방안을 모색하기 전에 선제돼야 할 필수 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