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2017년은 전세계 바이오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CAR-T라는 새로운 치료제의 허가, 바이오마커 항암제라는 새로운 치료제 패러다임의 등장 등 의미있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발맞춰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약진했습니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2017년 바이오산업 핵심이슈와 트렌드'를 정리해봤습니다.[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휴먼 게놈 프로젝트로부터 출발한 유전체 산업은 2017년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시퀀싱(Sequencing)에 기반한 연구 중심의 유전체 산업은 암 조기진단을 위한 액체생검(liquid biopsy), 정밀의학 등 인류 건강증진을 위한 의미있는 서비스 개발에 도전하며 진정한 산업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을 본격화했다. 유전체산업과 인공지능(AI) 등 IT기술과의 융복합은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100달러 게놈시대의 예고..액체생검 위한 도전의 시작
올해의 시작은 전세계 유전체 장비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생명공학기술업체 일루미나(Illumina)가 열었다. 일루미나는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반의 새로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플랫폼인 ‘노바섹(NovaSeq) 시리즈’를 공개하며 "100달러에 한 사람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이 가능한 날이 멀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1000달러 게놈 시대가 열린 지 3년만에 10분의 1 가격에 유전체를 해독하는 '100달러 게놈(Genome)' 시대를 예고한 것이었다. 연구소나 병원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게놈을 소유하고 직접 활용하는 소비자 유전체(Consumer genomics) 시대의 예고였다.
이어 등장한 것이 일루미나에서 출발한 그레일(Grail). 유전체를 활용해 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액체생검 개발에 본격 도전장을 냈다. 암을 조기진단하는 액체생검은 유전체 산업뿐 아니라 인류 건강증진을 위한 가장 폭발력있는 기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레일은 올해 3월 시리즈 B 투자로 9억 달러 이상을 투자 받아 설립받아 총 10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확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모든 암 종을 동시에 조기 진단하는 암 스크린진단 서비스체제를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주기적으로 혈액 등을 채취해 혈액내 떠돌아 다니는 DNA 분석해 암을 미리 예방할 수가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레일은 여러 종양∙암 환자 7000명 과 3000명의 정상인들로 구성된 코흐트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에도 돌입했다. 그레일은 기술 확보를 위해 비침습적 태아 기형아 검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데니스 로(Dennis Lo)가 설립한 시니라를 인수하기도 했다.
유전체 기반 액체생검의 도전은 그레일만의 것은 아니다. 가던트헬스 역시 올해 3억 6000만 달러(2016년 투자금 포함하면 5억 5000만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액체생검 개발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5 년 이내에 백만명 이상의 암 환자의 종양 DNA를 분석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테라젠이텍스, 이원다이애그노믹스가 유전체 기반의 액체생검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액체생검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임상을 통해 그 효용성을 증명하는 등 넘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5년 이내에는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유전체+AI의 결합.."신약개발에서 정밀의료까지"
구글의 알파고는 인공지능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유전체 산업에서도 인공지능을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올해 가속화됐다. 소피아제네틱스, 딥지노믹스, 우시넥스트코드, 아이카본엑스 등 많은 회사들이 유전체와 인공지능을 융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올해 본격화했다. AI 기술을 이용한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 관련 연구 및 비즈니스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며 유전체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이 탑재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올 것으로 전망한다.
딥지노믹스는 기계학습과 유전체 빅데이터를 결합해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유전체와 의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고 미묘한 신호를 찾아 정밀 의학, 유전체 검사 그리고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을 사업의 방향으로 잡고 있다. 이 회사는 중추신경계, 눈, 간과 관련된 멘델리안 질병에 집중해 신약을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그 시작으로 멘델리안 질환 치료제의 초기 단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딥지노믹스 외에도 영국의 인공지능 회사인 베네볼런트에이아이(BenevolentAI)와 구글의 알파벳의 칼리코(Calico), 국내에서는 신테카바이오가 인공지능과 유전체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대열에 합류했다. 인공지능이 초기 R&D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성공적인 약물을 도와주는 효율적인 툴로 발전해가고 있다.
중국 유전체기업 BGI의 준왕(jun Wang)이 설립한 아이카본엑스(iCarbonX)는 100만~300만명 게놈 정보와 대사체부터 박테리아까지 개인의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포함해 분석해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삶을 디지털화하는 '디지털된 나(Digital Me)'를 통해 정밀의학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다.
◇FDA, 유전체 서비스 규제완화 시동..국내선 NGS 첫 보험 적용
미국 FDA는 올해 유전체 서비스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였다. 올해 4월 23앤드미(23andMe)의 개인용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허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23앤드미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열 가지 질환에 대한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개인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병원이 아닌 민간 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해 6월 12개 항목에 대한 민간 업체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처음 허용됐다.
FDA는 11월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유전적 건강 상의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genetic health risk tests) 판매·제공 기업들에 대한 규제 경로를 간소화한다고 발표했다. FDA는 최초 검토와 승인을 받은 업체의 경우 추가 검토와 허가 절차 없이 DTC GHR 검사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질병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의 DTC 서비스 업체에 대한 규제를 제품별 심사에서 업체별 심사로 간소화한 것이다.
FDA는 미국 실험실 표준인증(CLIA)을 받은 연구소 등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암 패널 검사도 처음으로 승인했다.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MSK)가 개발한 차세대게놈시퀀싱(NGS) 기반 암 패널검사 'MSK-IMPACT', 파운데이션 메디슨(foundation medicine)의 FoundationOne CDx(F1CDx) 등이 허가를 받았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이사는 "국내에서는 NGS검사에 대해 보험수가 적용됐는데 이는 전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신상철 이원다이애그노믹스 공동대표는 "올해 마이지놈박스, 헬릭스, 23andme 등 유전체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유전체 산업이 연구중심에서 소비자가 지불가능한 합리적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