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신약 개발은 돈이 많이 들고 오래 걸려 장기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입니다."
"silo(조직내 장벽과 부서간 이기주의)를 허물고 팀워크를 극대화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제넨텍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신영근 충남대 약대 교수의 말은 거침없었다. 글로벌 제약사의 실패방정식을 그대로 좇아가는 국내 바이오제약기업에 대한 비판은 통렬했다. 그럼에도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의 성장가능성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직접 '성공스토리를 쓰겠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감도 드러났다.
신영근 교수는 최근 대전 충남대 연구실에서 가진 바이오스펙테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신약개발 성공에 이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했다. 그는 미국 제넨텍, GSK 등에서 근무한 신약개발 전문가로 최근 바이오기업 창업지침서인 '실리콘밸리에서 바이오벤처 창업하기'라는 책을 번역 출간해 주목받고 있다.
◇신약개발생산성(P)= 지식 정보 인프라 (K) x 정보교류속도(V)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자본, 인력, 인프라 등이 모두 열악한 국내 바이오제약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신 교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신약개발 비용 측면에서 보면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 사노피 등은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평균 6조~7조원을 투자하는 반면 길리어드와 제넨텍은 1조~2조원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신약개발 생산성의 차이다.
선두업체가 연매출 1조원수준에 불과한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성공하려면 길리어드, 제넨텍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 그럼 어떻게 길리어드와 제넨텍과 같은 신약개발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신 교수는 신약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P = K x V'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했다. 신약개발 생산성(P)은 신약개발 관련 지식·정보 인프라(Knowledge)와 정보교류속도(Velocity)의 곱이라는 것이다.
K가 부족한 국내 기업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V다. 만약 정보교류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식·정보 인프라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정보교류속도를 어떻게 높일까. 같은 목표아래 부서간 장막을 허물고 팀워크를 극대화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들리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러한 노력이 결국 신약개발의 성공률을 높이는 굉장한 무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GSK의 경우 총 직원이 11만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자신의 퍼포먼스만 중요하게 여기고 개별 플레이를 한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지식이나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정보교류속도를 높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 글로벌 제약사의 조직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신약개발에서 R&D팀은 1년에 10개의 후보물질 도출을, 전임상팀은 3~4개의 후보물질을 1상에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류없이 분리된 각 팀은 혁신 신약개발이라는 궁극적 가치보다는 당장의 평가지표인 '숫자'를 채우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전임상 1상까지는 진행되지만 약효를 증명해야 하는 2b상에 이르면 많은 경우 실패로 결론납니다. 결국 일종의 폭탄돌리기였던 것입니다."
국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R&D와 임상개발팀을 지역적으로 분리해 놓은 것은 굉장히 안 좋은 결정"이라면서 "신약개발의 큰 허들을 양분한 것으로 연결고리가 강할수록 임상 성공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조직과 구성원들이 '환자를 위한 신약 개발'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각자의 임무에 매몰되지 않고 부서간 교류를 늘려 신약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A급 아이템보다 A급 매니지먼트가 중요"
신 교수는 국내 바이오제약기업들이 매니지먼트, 특히 리스크매니지먼트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급 아이템 B급 매니지먼트와 B급 아이템에 A급 매니지먼트를 선택하라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면서 "투자기관들의 투자액 20~30%는 경영진을 보고 배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B급 아이템이지만 시장 진출을 위한 효율적 전략을 짜고 또 실패에 대비한 다른 후보물질을 확보하는 안정적 매니지먼트가 A급 아이템의 가치를 뛰어넘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신약개발이 모두 성공할 수 없다.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백업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및 플랜을 갖고 있어야 바이오텍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바이오제약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투자자 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신 교수는 신약개발에 대한 대표적 오해 중 하나가 '많은 비용이 들고 오래 걸려 장기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누구도 오랜시간 돈이 묶여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기지 주택담보대출을 도입한 미국 은행들은 주택에 묶여 있는 자본을 활용하기 위해 모기지를 채권화해 재투자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이는 주택시장에 재투자돼 시장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신 교수는 "한국의 바이오제약산업도 이런 투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중간 단계의 금융시스템을 만들어줘 비상장 회사라도 원하는 시점에 들어갔다가 원하는 시점에 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토양이 갖춰져야 경쟁력있는 바이오텍들이 자본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신약개발에 도전할 수 있다.
◇퍼스트바이오 창업.."새로운 RM-BIRD 성공모델 제시"
신 교수는 올해 LG생명과학 출신인 김재은 박사 등과 함께 '퍼스트바이오'라는 새로운 바이오텍을 창업했다. 자신이 주창한 새로운 신약개발 접근법이 실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최고의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인사들이 뭉쳤다는 설명이다.
퍼스트바이오의 신약개발 전략은 최근 국내에 소개된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바이오텍 보다 훨씬 앞단에서 신약 개발하는, RM-BIRD (Risk-Management Based Investment, Research & Development)를 목표로 하는 첨단 신약개발 모델이다.
NRDO는 개발 후보 물질을 자체 개발하지 않고 연구소나 대학 등 외부로부터 도입한 뒤 전임상, 임상 개발에만 집중하는 바이오텍이라면, RM-BIRD는 마치 5살 아이 중 성장 가능성이 큰 아동을 조기발굴해 최대하게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비용효과적(cost-effective)인 성장전략을 조직내(in-house)에서 설계하고 개발해 나가는 전략이다.
신교수는 "NRDO가 성공하려면 좋은 후보물질이 많이 나와야 하다"면서 "퍼스트 바이오는 국내외에서 좋은 초기 원석 다이어몬드 같은 물질들을 잘 발굴해 최대한 밸류-업을 해 NRDO기업 및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개발해 내보내는(licensing out)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NRDO와 초기 연구자들 사이의 갭을 최대한 메워주는 역할이다.
퍼스트바이오는 특히 글로벌 신약개발 트렌드를 철저히 분석하고 좋은 초기물질을 발굴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신 교수는 "특허단계까지 가지 못한 초기 물질이라도 가치가 있다면 공동연구를 통해 밸류를 최대한 키워 라이센스 아웃을 도울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국내외 NRDO회사, 글로벌 제약/바이오텍 모두에게 win-win하는 성장 전략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