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서윤석 기자
'2조 기술수출 대박' '4조 라이선스아웃 계약 체결' 등의 뉴스를 간간이 접하게 된다.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와 체결하는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서다. 겉으로는 조단위 계약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약체결과 함께 곧바로 받게되는 계약금(upfront)은 200억원 내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이 정도면 빅딜에 속한다. 총 계약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딜의 경우에는 계약금이 50억원을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외기업의 라이선스 딜을 보면 전체 딜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총 계약규모에서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이상인 경우를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계약금 규모가 총 딜 규모의 50%에 가깝거나 넘는 계약도 가끔씩 눈에 띈다.
계약금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 혹자들은 총 계약규모에서 계약금을 잘 살펴야 기업들의 언론플레이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적어도 5% 수준은 돼야 한다며 적정 계약금 비율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혹자들은 총 계약규모에서 판매 마일스톤은 제외하고, 별도의 로열티로 책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초기 개발단계에서 판매 마일스톤은 너무 먼 얘기이기 때문에 굳이 그걸 넣어 전체 계약규모를 부풀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얘기다. 큰 계약규모에 계약금 비율이 높다면 기술을 이전하는 회사로서는 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신약성공 가능성이 높아 처음에 계약금을 적게 받았지만 후기로 갈수록 마일스톤을 크게 늘렸다는 변명(?)에 가까운 바이오텍의 설명도 전략상의 선택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정작 문제는 계약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인식이다. 계약금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가 계약금 논란에서 놓치고 있는 핵심이다. 막연히 계약금이 많을수록 좋다는게 아니라 '계약금은 무엇이다'라는 개념이 있다면 적정 계약금이나 계약금 비율 논란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기술이전 딜에서 계약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버텍스가 CRISPR와 맺은 파트너십 확장계약 딜이다(관련기사). 이 케이스를 살펴보면 앞으로 기술이전 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버텍스는 지난 4월 CRISPR과 50:50의 권리를 가지고 공동개발 중인 CRISPR 치료제 후보물질 ‘CTX001’의 권리를 60:40으로 변경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지분 10%를 올리는데 계약금 9억달러에 CTX001의 첫 승인 마일스톤으로 2억달러를 추가 지급키로 했다. 이에 따른 연구개발 비용도 기존보다 10%를 더해 60%를 부담하고, 향후 판매수익도 60%를 받는 계약이었다.
이 계약이 발표된 후 브라이언 코니(Brian Skorney) 미국 투자은행 베이어드(Baired)의 애널리스트는 분석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 딜을 평가했다. “미래에 10%의 수익을 더 얻기 위해 계약금으로 9억달러를 지급한다는 것은 버텍스가 현재 CTX001의 가치를 90억달러 이상으로 보고있다는 것(the $900 million payment for an extra 10% in future profits implies that Vertex sees CTX001 as a more than $9 billion opportunity, which might be lofty)”이라고.
버텍스와 CRISPR의 딜을 통해 이 애널리스트는 현재시점에서 양사가 본 약물의 가치(value)을 추정하고 있다. 즉 계약금 규모가 계약당시 약물의 현재가치를 유추해볼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양사는 CTX001의 현재 가치를 90억달러 수준으로 봤고, 향후 도래할 약물 승인시점에서는 20억달러의 가치를 더해 2억달러의 마일스톤을 추가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산업에서 신약개발 후보물질의 라이선스 딜 구조는 일반적으로 계약금, 임상개발 단계 및 허가 마일스톤, 별도의 판매 로열티 등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계약금은 계약과 동시에 받는 금액으로 반환의무가 없는 게 일반적이다. 마일스톤은 향후 약물의 개발단계(전임상, 1상, 2상, 3상) 또는 규제기관 허가에 등을 달성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즉, 마일스톤은 미래의 각 단계에 이르렀을 때 추가되는 해당 약물의 가치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초기 임상단계임에도 유망한 후보물질 △후기 임상단계에 있거나 △승인 기대감이 높은 약물의 경우 현재가치가 높아 전체 계약규모 대비 계약금의 비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준하에서 계약의 양 당사자가 협상에 따라 계약금 규모나 마일스톤을 다소 조정하는 전략을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최근에 체결된 국내/외 기술이전 딜을 자체집계해 분석해봤다. 먼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기술이전 소식을 알린 국내 기업과 올해 1~6월사이에 해외에서 성사된 10억달러 이상 딜을 정리해봤다.
◆ 해외 사례. 임상단계 약물일수록 계약금 규모∙비율 높은 경향..”유망하다 판단, 높은 계약금 베팅”
먼저 앞선 버텍스의 사례를 보면 계약금으로 9억달러를 지급해 총 11억달러 규모 대비 계약금 비율은 82%에 달한다. 이는 그만큼 버텍스가 CTX-001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음으로 승인이 가깝거나 이미 일부 규제기관에서 승인받은 사례들을 살펴보자. 아젠엑스(Argenx)는 지난 1월 FcRn 항체인 ‘에프가티지모드(Efgartigimod)’에 대해 계약금 7500만달러와 중화권지역 개발 및 허가 마일스톤으로 1억달러를 자이랩(Zai lab)으로부터 받아 총 1억7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규모 대비 계약금 비율은 42.8%다. 에프가티지모드는 전신 중증근무력증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 올해 승인이 기대되는 약물이다.
코헤러스(Coherus)는 중국 준시 바이오사이언스(Junshi Bioscience)와 PD-1항체 ‘투오이(Tuoyi, toripalimab)’의 미국 및 캐나다 지역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계약금 1억5000만달러와 마일스톤 3억 8000만달러에 확보했다. 추가로 TIGIT 항체와 IL-2 항체를 확보하는 옵션을 행사하면 추가로 총 5억1000만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으로 총 규모는 11억1100만달러다. 계약금 규모는 13.5%. 투오이는 이미 중국에서 승인받은 약물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게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사례로 노바티스(Novartis)는 지난 1월 베이진(Beigene)의 PD-1항체 ‘티슬레리주맙(tislelizumab)'의 미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 영국,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러시아, 일본에서의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계약금 6억5000만달러와 상업화 마일스톤 등으로 15억5000만달러, 총 22억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인 계약을 체결했다. 티슬레리주맙은 중국에서 승인받은 PD-1항체다. 계약금 비율은 29.54%.
임상 2상, 3상 단계에 있는 유망한 약물에 대한 딜 사례를 보면, 릴리(Eli Lilly)는 지난 2월 리겔(Rigel Pharmaceuticals)의 RIPK1 저해제를 계약금 1억2500만달러에 더해 개발 및 상업화 마일스톤으로 최대 8억3500만달러, 총 9억6000만달러 규모로 사들였다. 리겔이 개발 중인 RIPK1 저해제는 임상 2상 단계의 약물로 총규모 대비 계약금 비율은 13%다.
독일 머크(Merck KGaA)는 지난 3월 디바이오팜(Debiopharm)의 ‘제비나판트(xevinapant, Debio1143)’의 글로벌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계약금 약 2억2620만달러에 마일스톤 약 8억5400만달러로 총 10억8000만달러 규모의 딜을 체결했다. 계약금 비율은 약 20.94%. 제비나판트는 임상 3상 단계의 두경부편평세포암종(SCCHN) 타깃 항암제다.
암젠(Amgen)은 지난 3일 쿄와기린(Kyowa Kirin)이 임상 2상을 완료한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OX40 항체를 계약금 4억달러에 마일스톤 8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총 12억5000만달러 규모로 계약금 비율은 약 32%에 달한다.
후보물질 발굴 및 전임상단계 약물 개발의 경우에는 총 규모 대비 계약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먼저 머크(MSD)는 지난 1월 GC녹십자홀딩스 계열사인 아티바(Artiva Therapeutics)와 계약금 3000만달러에 마일스톤을 더해 총 18억5100만달러규모로 CAR-NK세포치료제 딜을 체결했다. 후보물질 발굴 단계부터의 계약으로 계약금 규모는 1.6% 수준. 이 딜의 경우 해외 딜이지만 국내사와 관련된 딜이기도 하다. 릴리와 미나(MiNA)는 지난달 saRNA 약물 개발을 위해 계약금 2500만달러에 마일스톤을 포함해 최대 12억5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로 계약금 비율은 약 2%다.
초기단계의 딜이라고 해서 계약금 비율이 낮은 것만도 아니다. 임상 1상단계이지만 큰 규모의 계약금을 지급하며 과감한 베팅에 나선 사례도 있다. 단적인 예로 GSK는 지난 15일 아이테오스(iTeos Therapeutics)의 임상 1상 단계 TIGIT 항체에 계약금 6억2500만달러에 마일스톤 포함 최대 20억7500만달러 규모 딜을 체결했다. 총 계약규모대비 계약금 비율은 약 30.12%. 그만큼 GSK가 TIGIT항체를 유망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 국내 사례. 계약금 규모∙비율 현저히 낮은 경향.."대부분 초기단계 약물, 허가후 판매 마일스톤까지 포함하는 딜 많아"
이제 국내의 상황을 알아보자. 먼저 바이오스펙테이터가 자체 집계한 19개 국내 바이오텍들의 기술이전(L/O) 규모는 평균 5.9억달러 규모였다. 계약금 규모는 1000만달러 이하가 15곳, 1000~2000만달러 이하가 3곳, 2000만달러 이상은 1곳으로 전반적으로 낮았으며, 총 기술이전 규모 대비 계약금 비율은 0.48~5.8%로 나타났다.
먼저 올해 체결된 딜 중에서 계약금 비율이 높은 알테오젠과 GC녹십자랩셀의 계약을 각각 살펴보자. 알테오젠은 올해 1월 인타스(Intas Pharmaceuticals)와 인간 히알루로디나제 ‘ALT-B4’를 이용한 피하주사제형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600만달러를 포함 최대 1억1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으로 계약금 비율은 약 5.2%다. 또 GC녹십자랩셀은 아티바에 계약금 500만달러에 마일스톤 8150만달러를 더해 총 8650만달러 규모의 CAR-NK 세포치료제 관련 기술을 이전했다. 계약금 비율은 약 5.8%다.
다음으로 전체 계약규모가 4억달러 이상인 기술이전 사례를 분석해봤다. 먼저 이뮨온시아는 지난 3월 CD47 항체 ‘IMC-002’를 중국 3D메디슨(3D medicine)에 중국내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넘겼다. 계약금 800만달러에 개발, 허가 및 판매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최대 4억6250만달러를 받는 총 4억7050만달러 규모로 계약금 비율은 약 1.7%다. 이뮨온시아는 판매에 따른 경상기술료는 별도로 3D메디슨으로부터 받는다. 3D메디슨은 올해 중국에서 IMC-002의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할 예정이다.
펩트론은 지난 3월 중국 치루제약(Qilu Pharmaceuticals)에 전임상 단계의 MUC-1 ADC를 계약금 약 461만달러 및 마일스톤 5억3900만달러에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비율은 0.84%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중국 심시어(Simcere)와 유한양행을 상대로 기술이전에 성공했다. 심시어와는 임상1/2상 진행예정인 약물을 계약금 600만달러에 개발, 상업화 및 판매 마일스톤으로 최대 7억9600만달러를 받는 계약이다. 유한양행과는 계약금 200억원에 개발, 상업화 및 판매 마일스톤 등으로 최대 1조3000억원을 받아 총 약 1조4000억원 규모다. 특이점은 상업화 후 판매에 따른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1조3000억을 지급한다는 것. 지아이이노베이션이 심시어, 유한양행과 체결한 딜의 계약금 비율은 각각 약 0.84%, 약 0.75%다.
제넥신은 지난 2월 인도네시아 칼베(Kalbe Frama)와 설립한 합작회사 KG BIO에 GX-I7을 계약금 2700만달러에 마일스톤을 더해 총 11억달러 규모에 기술이전했다. KG바이오는 GX-I7과 면역항암제 병용투여 임상을 진행할 계획으로 계약금 비율은 1.42%다.
알테오젠은 지난해 6월 ALT-B4를 글로벌 제약사와 계약금 1600만달러에 개발, 상업화 및 판매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총 38억 6500만달러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규모는 0.48%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