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서윤석 기자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엑싯하면 된다. 상장이 중요하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투자사의 모든 관점은 상장에 맞춰쳐 있고, 실제 신약개발 여부는 투자자에겐 부차적인 일이다. 그건 CEO와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비상장 바이오투자에 적극적인 한 투자사 임원의 얘기다. 단순하고도 아주 명확한 목표다. 물론 상장은 바이오기업의 자금조달 측면에서 중요한 마일스톤중 하나이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발전해서 상장가능한 회사로 변모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고, 초기부터 투자한 초기투자자나 벤처캐피탈(VC) 등이 엑싯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짝만 더 나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상장만 시키면 되고, 상장만 하면된다'는 식의, 바이오투자자와 바이오텍 경영진간의 이해가 딱 들어맞는 그 지점에서 태생해 야기된 현실들을 마주하게 되면 말이다. '상장만이 목표다'가 만들어낸 수많은 문제점들이 현재 상장 바이오텍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지적이다. 상장기준에 무리하게 맞춰 파이프라인 개발을 진행하다보니 막상 후속 개발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기술이전 실적을 맞추다보니 계약규모를 부풀리고 계약상대 회사의 후속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지난 2005년 코스닥 시장에 기술특례제도가 생겨난 이래 100개에 가까운 바이오기업들이 이 루트를 통해 상장기업이 됐지만 지금까지 17년동안 이렇다할 실적하나 내놓지 못한 이유다. 더 거칠게 말하면 바이오기업을 상장시켜놓고 개미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떠넘기고 빠져나간 VC 등 초기 투자자들과 이에 동조한 바이오텍 경영진들의 잔치가 이어져왔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뼈아픈 현실이다. 기업들 하나하나를 거슬러 추적해보면 누가 성과없이 시장에 부담만 안긴채 과도한 이익을 챙겨갔는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스타트업에서 상장기업까지 기업을 성장시켜온 VC 등 투자자들에게만 이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시장참가자들은 당국이 제공한 틀 안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또다시 초기 기업에 투자한다.
문제는 기술특례제도가 생긴지 17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여전히 '상장이 목표인 기업'과 '상장만 목표인 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장시스템으로 인해 지금도 이같은 기획창업이 성행하고, 이같은 회사들이 코스닥시장을 통과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의 시장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데서 온 결과로, 1차적으로 시장제도를 만들고 관리해온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기존 제도도 정교하게 정착시키지 못한 당국이 성장성 특례니, 유니콘 특례니 자꾸 새로운 트랙을 만들어 기존에 진입못하던 회사들을 상장시키면서 문제를 가중시키는 꼴이다.
물론 아예 성과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기업들의 성과를 보면 그동안 '상장이 목표' vs '상장만 목표'를 구별해야 하는 싸움에서 한국거래소 등 당국은 KO패에 가까운 승부를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진단기업들의 선전, 우회상장을 통해 상장한 셀트리온, 편법상장 논란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삼성바이로직스 등이 바이오업종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패배를 거듭해온 시장시스템의 개선방안에 대한 숙제를 안고, 바이오스펙테이터는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상장한 회사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엑싯을 위한 상장 목표' VC.. "충분한 기술성숙 시간 필요"하다는 기업
올들어 지난 20일 기준으로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기업공개(IPO)한 바이오기업들의 수는 현재까지 단 3개에 불과하다. 지난 2018~2021년 각각 17개, 15개, 16개, 13개 바이오기업이 상장됐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숫자다. 이전과 달리 거래소가 바이오 기업이 가진 기술과 성장성에 대해 의문의 눈길을 가지고 깐깐히 검토한 결과다.
그러자 유망하다고 여겨지며 비상장 상태의 기업가치가 상장기업보다도 높게 평가받던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심사에서 탈락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투자업계에서는 IPO 허들을 너무 높인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최근에야 에이프릴바이오, 루닛, 샤페론 등이 상장심사를 통과했다. 거래소는 조였던 고삐를 살짝 풀어주는 분위기이다.
지난 2005년 기술특례제도가 도입된 이후 17년간 상장된 기업은 151개로, 이 중 63%인 95개 기업이 바이오 기업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 중 상장폐지심사가 진행 중인 곳도 신라젠 등 4곳으로 모두 바이오 기업이다. 거기다가 현재까지 시장에서 인정받는 성과를 낸 바이오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래의 기술성을 평가해 시장에 신뢰도를 주려던 제도가 거꾸로 불신을 자초한 모양세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업계에 따르면 비상장 바이오기업은 VC들의 요구와 한국거래소의 상장요건에 맞춰 타임라인에 따라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거래소의 상장심사기준에 구색을 맞춘 모양좋은 학생부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실질적인 신약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장용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도 한다. 라이선스아웃 계약에서는 실질적인 계약금 수령보다는 시판허가 후 얼마나 판매될지도 모르는 판매 마일스톤까지 끼워넣어 총 계약규모를 부풀린다. 당연히 글로벌 제약사와 딜은 거의 불가능하니, 이름을 들어보기 힘들었던 중소규모 해외 바이오텍과 계약을 체결한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은 약물을 계속해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작업이지만 VC 등 투자자들이 신속한 엑싯을 위해서 파이프라인이 충분히 성숙되기 전 상장하도록 압박을 넣거나, 임상에 진입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VC들의 비상장바이오텍에 대한 관리는 '강한 그립'으로 상당히 타이트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기업 CEO가 생각하는 연구결과에 따른 타임라인과는 별도로 VC의 일정에 맞춰 끌려가듯 신약개발이 진행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개발이 진행된 경우 제대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전제 하에 파이프라인이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고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피해는 상장후에야 바이오기업에 투자하게 된, 온전히 개인투자자들의 몫이 된다.
이같은 시장의 부담과는 반대로 상장전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VC들의 잭팟 소식은 간간히 전해진다. K사는 C사에 8억원을 투자해 137억원을 회수해 17배, H사는 A, V, B사 등에 7배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P사는 C사에 시리즈A 단계에서 2억원을 투자해 118억원을 회수해 59배의 수익을 올렸다. H사는 A사 투자 하나로만 수백억원의 이익을 냈다.
특례상장 기업 주가 고점 대비 70~80% 급락, 공모가 이하 대부분"
최근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기업의 주가는 고가대비 '반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했다. 기술특례 상장 95개 기업의 최근 고가대비 등락률을 조사해보니 평균 70.4% 급락한 상태다(20일 기준). 헬릭스미스, 제넥신, 강스템바이오텍, 안트로젠, 셀리드, 셀리버리, 유틸렉스, 메드팩토, 에스씨엠생명과학 등 28곳(29.5%)은 80% 이상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기업들이 상장 당시 공모가를 밑돌고 있었다.
신약개발 회사중 공모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은 에이비엘바이오, 레고켐바이오, 티움바이오 등 일부에 그쳤다. 이는 연구성과를 꾸준히 학회에서 발표하고, 좋은 조건으로 기술이전을 성사시켜온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장만이 목표'가 아니었던 기업들로 분류될 수 있는 회사들이다.
상장 새내기로 시장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하는 지난 2021년 기술특례 상장한 12개 기업들의 주가를 살펴보면 공모가를 상회하는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회사는 단 한곳도 없다. 그나마 공모가를 약간 하회하는 기업은 코넥스를 통해 우여곡절 끝에 이전상장에 성공한 툴젠 한 곳뿐이다. 에이비온은 50% 이상, 바이젠셀과 딥노이드는 70% 이상 급락했다. AI의료 솔루션으로 주목받아온 뷰노도 공모가 대비 62.4% 하락한 상태다.
길게 보아도 상황은 녹록치않다. 10여년전 기술특례 도입 초기에 코스닥에 입성해 상당기간 높은 밸류로 시장을 선도하면서 대표주 역할을 해온 몇몇 선행기업의 부진은 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의 설문조사에서도 국내 바이오기업 CEO들은 선행기업의 낮은 퍼포먼스가 특례상장 등 시장시스템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꼽았다(링크).
통상적으로 신약개발에 10년의 기간이 걸리고, 성공확률은 신규 항암제의 경우 3.4%, 전체적으로는 약 10%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선행 바이오기업들은 너무나도 저조한 퍼포먼스를 냈다. 10여년동안 신약은 커녕 빅파마와 제대로된 라이선스아웃 하나 내놓지 못했다. 이들 선행기업들이 지난 10~15년간 연구해온 파이프라인을 여전히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후속 파이프라인은 주로 임상 1/2상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연구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같은 가운데 국내 상장 바이오텍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개발전략 부재, 유연성 부족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경쟁상황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기존 파이프라인 변화없이 '10년 넘게 한우물만 파는 우직함(?)'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달리티에 대한 도전도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문화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국가 연구과제 성공률은 100%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실패없이 그냥 끝까지 가보는 나몰라라 신약개발이다. 코스닥 시장도 그렇게 계속 실패없는 바이오기업 시장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