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현대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질병의 위협에서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오늘날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주요 질환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이다. 그중 심장질환과 뇌혈관 질환을 통칭하는 ‘심혈관 질환’은 위험성이 알려지며 최근들어 경각심이 더욱 커졌다. 여기에 비만과 당뇨 등 대사증후군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그에 관한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느 정도까지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질환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심혈관 질환은 눈에 두드러지거나 병세가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비만과 대사증후군 또한 여러 증상을 동반하며 다른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위험성이 높은 질환이다.
『대사질환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은 이렇듯 현대인을 위협하는 주요 질환이 어떻게 발견되고 치료되었는지를 신약개발 중심으로 엮어낸다. 이는 곧 현재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달성하고 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의료기술 미비로 편견이 가득했던 20세기부터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고도로 발전하는 유전자 연구까지, 현대 의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큰 반향을 일으킨 혁신적인 연구나 한때는 추앙받았지만 부작용으로 얼룩진 약물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심혈관 질환 및 대사질환 치료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과학자들과 심혈관 질환의 파란만장한 역사
1부 ‘고지혈증과의 전쟁’에서는 혈액순환, 죽상경화증, 콜레스테롤 등 심혈관질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다양하게 파악한다. 동맥경화증은 동맥이 두꺼워지고 탄력성이 떨어지는 장애를 총칭하는 말로,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죽상경화증이다. 죽상경화증으로 동맥 가장 안쪽에 죽상경화판이 형성되면 혈액순환이 방해되며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1852년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가 죽상경화판의 원인을 파악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 혈관 내에 축적되는 지방 물질의 성분이 주로 콜레스테롤임이 밝혀진다.
1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혈중 LDL(고밀도 지단백질) 수준을 낮추는 약물인 ‘스타틴’의 개발 과정이다. 당시 콜레스테롤 저해 물질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던 일본의 산쿄제약은 동물실험 중 종양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임상시험을 중단한다. 이후 스타틴은 여러 제약사의 개발을 거쳐 로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 심바스타틴, 아토르바스타틴 등 다양한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한다. 현재는 간 독성과 근육 독성이라는 부작용으로 투여가 제한적인 스타틴을 대체할 신약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2부 ‘고혈압과의 전쟁’에서는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인 고혈압과 뇌혈관 질환, 특히 뇌졸중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뇌졸중 환자는 정상인보다 혈압이 높은 편이고, 고혈압 환자는 정상인보다 뇌졸중 위험도가 4~5배 높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발생하며, 주요 원인은 고혈압과 죽상경화증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뇨제와 베타 차단제를 시작으로 혈압을 낮추는 신약들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그중 베타 차단제는 부신수질에서 분비되며 심장 박동 수를 높이는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의 원리를 이용해 개발되었으며, 이후 에피네프린에 의한 신호전달을 차단하고 심장 박동을 낮추는 약물인 프로프라놀롤 개발로 이어진다. 한편 신장이 혈압을 조절한다는 발견은 인체 혈압을 조절하는 주요 기능인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또한 현재 혈압조절 약물을 대표할 만큼 널리 알려진 칼슘 채널 차단제도 살펴본다. 칼슘 채널 차단제는 칼슘의 심장박동 촉진 효과를 상쇄하는 원리로, 대표적인 약물로 니페디핀과 암로디핀이 있다.
과연 비만을 치료할 수 있을까? 대사증후군의 현재와 미래
3부 ‘비만 및 대사증후군과의 전쟁’에서는 고지혈증과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의 직간접적 원인이자 단독으로도 많은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 비만을 알아본다. WHO에 따르면 비만은 전세계에 퍼져 가는 유행병이자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다. 먼저 현대에 이르러 비만이 늘어난 이유를 역사적·과학적으로 살피고, 인간 유전학 연구를 통해 비만 관련 유전자를 발견한 과정을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비만과 관련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FTO 유전자다.
독일의 의사 헤르만 할러에 따르면 대사증후군은 비만, 당뇨, 과다콜레스테롤혈증, 고요산혈증, 지방산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1988년 미국의 내분비학자 제럴드 리븐은 제2형 당뇨병의 특징인 인슐린 저항성이 복부비만, 당뇨, 중성지방 증가, HDL(고밀도 지단백질) 감소, 고혈압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는 인슐린 저항성을 비롯해 과영양 상태, 염증반응 등을 대사증후군 관점에서 면밀히 파악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비만에 대한 약물치료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아직까진 부작용이 매우 적으면서 약효가 뛰어난 약물은 거의 없다. 마지막 14장에서는 DNP, 펜터민, 리라글루티드 등 비만 치료 목적으로 나온 약물의 장단점과 위험성, 그리고 진행중인 비만 치료제 연구를 들여다본다.
의문에 답하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다. 신약개발의 남겨진 숙제와 가능성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심혈관질환, 대사증후군 등을 일으키는 이상상태 중 상당수는 질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한 예로 1943년 4월 임기 도중 사망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당시 혈압이 매우 높았지만 사망 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고혈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치료할 만한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20세기 중반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 관리 및 치료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혈압 강하제나 스타틴을 정기 복용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약물치료 대상이 점점 늘고 약효가 뛰어난 신약이 속속 등장하는 데는 과학자들의 공이 크다. 이 책의 표현처럼 “인간 수명 연장의 상당한 지분은 약물을 개발하며 실용화한 사람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신약개발은 때론 뜻밖의 결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비아그라는 원래 협심증 및 혈압 저하제로 개발되다가 성기 발기라는 ‘부작용’이 빈번하게 나타나자 결국 발기부전 치료제로 출시되었다. 이처럼 신약개발은 수많은 의문에 답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며, 이같은 노력은 인류 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신약개발의 남겨진 숙제는 무엇이며,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현대 의학이 제시할 새로운 미래를 만나보자.
◆남궁석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45×215mm / 264쪽 / 무선제본 / 2023.05.15. / 값 25,000원 / ISBN 979-11-91768-05-3 03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