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국내 바이오기업 대표(CEO)의 83%가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예상보다 높은 수치이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벤처캐피탈(VC) 투자가 끊기고 자금줄이 메마르면서, 다른 대안없이 국가과제로만 연명하는 상황이지만 아직은 '버티기 모드'라는 것.
글로벌 시장의 과감한 구조조정 움직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수십조~수백조원의 이익을 내는 빅파마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노바티스는 지난해 직원 8000명(전체 12.7%)을 구조조정한데 이어 올해는 파이프라인의 10%를 잘라냈다. 또한 지난해부터 화이자, 바이오젠, 로슈, 다케다, BMS 등도 수백명씩을 해고했다.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올해말까지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구조조정 움직임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은 흉흉하다. 고가의 실험기기와 연구실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호황기 때의 과도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표이사를 제외한 모든 인력이 퇴사, 사실상 문을 닫았다는 회사 얘기도 있다. 신약개발 회사가 업종을 CDMO 회사로 전환하기도 하고, 투자 붐 막바지에 설립된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서 시작도 하기전에 문닫았다는 소식, 대규모 투자를 받은 회사가 추가 자금조달을 해주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구조조정 움직임은 피부에 와닿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바이오스펙테이터(BioSpectator)는 창간 7주년을 맞아 바이오기업 CEO 71명을 대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가’에 17%만이 ‘그렇다’,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가’에는 46%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2022년 글로벌 제약·바이오 분야의 키워드는 '구조조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뼈 아픈 시간을 보냈다. 글로벌시장에서 지난해 공식적으로 구조조정을 한다고 밝힌 바이오텍만 100곳이 넘었다. 이들 기업만해도 투자침체를 2~3년동안 견뎌낼 자금이 있는 회사로, 대부분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움직임이었다.
더구나 올해 상반기 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말 한때 ‘PARP 저해제’로 시가총액 5조원을 찍은 클로비스 온콜로지(Clovis Oncology)의 파산을 시작으로 올해 엑소좀(exosome) 신약개발 분야 선두주자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Codiak BioSciences), 디지털치료제(DTx) 선두주자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 등도 파산하면서 자산을 매각했다. 상업화 제품이 있거나 ‘최초’의 타이틀을 단 바이오텍까지 자금조달을 하지 못해 파산하면서, 업계에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 국내는 찻잔속의 태풍과도 같은 모습이다. 물론 국내는 관련법규상 인력 구조조정이 어려운 환경이기는 하다. 구조조정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신약개발 회사에 있어서 임상개발 및 전략 실패 이후에 다시 동력을 얻고, 체질을 개선하는 에너지를 응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글로벌과 국내 상황의 격차는, 현시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혁신성’과 ‘임상에서 개념입증(PoC)’, ‘데이터(data)’가 밸류를 결정하는 바이오산업의 본질적인 속성상 국가과제 등으로 연명하면서 인력을 그대로 끌고가는 현재의 바이오텍의 스탠스가 미래 신약개발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번 설문에서 인력구조정을 하고 있다고 답한 CEO 중 그 비율을 묻는 질문에 ‘10% 이내’가 7%(5명), ‘10% 이상~20% 미만’이 2.8%(2명), ‘20% 이상~30%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이 7%(5명)으로 나왔다. 그 외에 30% 이상 항목에 답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일부 회사 가운데, 올해초 주요 임원을 제외한 모든 인력을 해고하거나, 상장일정이 미뤄지면서 지난해 최고재무책임자(CFO)을 해고하거나, 또는 연구원 위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회사들도 있어, 이번 설문이 과거의 구조조정은 미반영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는 점은 일부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을 진행한 부문을 묻는 질문에는 ‘초기 연구개발(후보물질 발굴, 전임상 등)’을 답한 CEO가 6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외 임상개발, 사업개발(BD), 생산공정 및 품질관리, 경영관리 등을 답한 회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인력부문으로는 ‘초기 연구개발’이 29.6%(21명) 가장 많았고, ‘임상개발’과 ‘사업개발(BD)’이 각각 19.7%(14명)로 공동 2위, 다음으로 3위 ‘채용을 진행하지 않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14.1%(10명)로 나왔다. ‘생산공정 및 품질관리’, ‘경영관리’ 등이 잇따랐으며, 대기업과 마케팅 인력을 보강하는 회사에서 ‘전부문 수시채용’하고 있다는 답변도 나왔다.
인력 구조조정은 미루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략 절반의 회사가 전략적 우선순위 조정, 임상개발 중단, 매각 등의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즉 국내는 인력보다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을 통해 운영비용을 감축한다고 보여지는 부분이다.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46.5%(33명)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53.5%(38명)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현재 자금투입을 중단하거나 개발을 중단한 파이프라인 비율 또는 개수는 주관식으로 묻는 답변에는 최대 ‘70%, 80%’까지 줄였다는 답변이 다수 도출됐으며, 4명이 절반으로 줄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7명의 CEO가 ‘20~30%’의 파이프라인을 구조조정했다고 답했다. ‘10% 이내’로 줄인 회사가 2곳 나왔다. 파이프라인 숫자로 얘기한 답변에는 최대 수치는 ‘3~4건’을 줄인 회사가 다수 있었고, 대부분은 1~2건 이내였다. 다만 바이오텍 특성상 1~2건의 숫자이지만,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바이오스펙테이터는 글로벌 경제침체라는 상황 속에서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금을 받는다면 마지막 투자 밸류에이션 대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하한선’을 물었으며, 이전보다 2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답한 경우가 46.4%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숫자로 ‘10% 이내’로 답한 CEO가 36.6%(26명)으로 가장 많았고, ‘20% 이상~30% 미만’이 23.9%(17명)으로 다음을 차지했다. 잇따라 ‘10% 이상~20% 미만’이 16.9%(12명), ‘30% 이상~40% 미만’이 11.3%(8명), ‘50% 이상’이 7%(5명), ‘40% 이상~50% 미만’이 4.2%(3명)으로 집계됐다.
<바이오스펙테이터 창간 7주년 설문 참여 기업들>
나손사이언스,네오이뮨텍,넥스아이,넥스트젠 바이오사이언스, 노벨티노빌리티, 뉴라메디, 듀셀바이오테라퓨틱스, 드노보바이오테라퓨틱스, 랩지노믹스, 레고켐 바이오사이언스, 루닛, 마이크로바이오틱스, 머스트바이오, 메디픽, 바이오밥에이바이오, 브렉소젠,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사이러스 테라퓨틱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스탠다임, 스파크바이오파마, CJ 바이오사이언스, 아름테라퓨틱스, 아밀로이드솔루션, 아벨로스 테라퓨틱스, 아이비스바이오, 아이엔테라퓨틱스, 아이엠바이오로직스, 아이진, 알지노믹스, 알테오젠, 애스톤사이언스, 앱클론, 에이비엘바이오, 에이피트바이오, 에임드바이오, 엔게인, 엘마이토 테라퓨틱스, 오름 테라퓨틱, 오토텔릭바이오, 와이바이오로직스, 원진바이오테크놀로지, 웰마커바이오, 유바이오로직스,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 인세리브로, 인투셀, 일리미스테라퓨틱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입셀, 제노스코, 지노믹트리, 지놈앤컴퍼니, 지니너스, 지아이이노베이션, 지투지바이오, 진코어, 체크메이트 테라퓨틱스, 카나프 테라퓨틱스, 큐로셀, 큐리언트, 테라펙스, 트리오어,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티움바이오, 티카로스, 파멥신, 펨토바이오메드, 프로지니어, 피노바이오 등 71개 기업(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