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노신영 기자
바이오제약업계에서 적극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바이오텍에 대한 전략적투자(SI)를 활발하게 진행했던 유한양행(Yuhan)이 전략적 투자(SI)를 지양하고, 바이오텍의 유망에셋을 라이선스인(L/I)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사장은 지난 12일 "전략적 투자는 가능하나 이제는 배제하고자 한다"며 "그동안 수많은 전략적 투자를 소규모로 진행하면서 그 투자규모가 현재 5000억원 이상 누적됐는데, 유한양행이 투자를 철수하겠다고 하면 소액투자자들의 비난과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엑싯(exit)을 할 수가 없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그래서 앞으로 유망한 파이프라인이 있다면 이에 대한 라이선스인 또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는 전략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다만 정말 유한양행이 투자를 해야할 파트너 기업이 육성된다면 200억~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함으로써 유한양행이 1대주주로 올라가는 전략을 펴는 것으로 내부적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광범위하게 진행해온 유한의 전략적 투자에 대한 회수 실패를 인정하고 전략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벤처캐피탈(VC) 등 투자사와 같이 IPO를 통해 엑싯하는 방식이 신약개발을 함께하는 전략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녹록치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서 개최된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BIOPLUS-INTERPHEX KOREA, BIX 2023)에서 ‘한국 바이오산업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패널토론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행사에는 김 사장과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LegoChem Biosciences) 대표,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참석했으며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이 좌장(chair)을 맡았다.
이 부회장이 최근의 바이오투자 상황과 관련, “IPO(기업공개), 바이오투자와 관련된 어려움을 겪으면서 업계에서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전략적 투자가 나오고 있다"며 "유한양행은 오랫동안 전략적 투자 등을 통해 회사의 역량을 확대하는 전략을 가져왔다"고 화두를 꺼내자, 이에 김 사장은 회사의 전략변화와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김 사장은 또 ‘바이오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상장 문턱이 높아진 지금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눈 앞의 목표에만 매몰되지 말고 초기 창업 당시의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기업의 방향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당장 눈앞의 IPO 준비에 매몰돼 파이프라인 개발에 소홀하거나 유망하다는 이유만으로 역량이 없는 분야에 엉뚱하게 자본을 투자하곤 한다”며 “이 과정에서 초기 창업당시 가졌던 무엇을 개발하고,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바이오텍들이 창업당시에 가졌던 'first-in-class, best-in-class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부하며, 이같이 방향성을 회복한 후에는 회사의 강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곧 기업의 운영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김 사장의 생각이다.
김 사장은 “유한양행 중앙연구소는 신규 플랫폼이나 모달리티(modality)에 대한 연구 역량은 부족하고, 업계에는 이미 관련 연구를 10년, 20년 이상 지속해온 다른 연구소 또는 벤처기업이 많이 존재한다”며 “유한 연구소는 전임상 중개연구, 후보물질 최적화 등에 강점이 있어 다른 연구소나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이날 패널토론에 참석한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LegoChem Biosciences) 대표도 바이오텍들이 신약개발을 목표로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 대표는 최근 투자침체와 관련, “창업한지 16년이 됐는데 이정도 수준으로 바이오투자가 경색되고 외면받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며 “(이같은 투자침체는) 바이오기업 스스로가 만든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대표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경우 마일스톤, 기술이전 및 IPO 일정 등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으나, 왜 바이오텍을 창업했고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오 벤처기업을 운영한다면 어떤 목적으로 운영할지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향성이 명확하다면 이에 맞는 운영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운영전략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서 유연하게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또한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은 결국 과학(science)밖에 없다”며 기초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을 강조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바이오기업의 상장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들이 확실히 느껴지고 있다"며 "올해부터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찾아가는 기술특례상장 설명회’ 등을 개최해 기업들에게 상장에 대한 방법, 정책 설명을 해주고 있고, 코스닥에 대한 상장 문호도 확대가 이미 되고 있어 앞으로 상황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장된 회사들이 적정기업 가치를 받아야지만 소규모 바이오텍에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게 된다”며 개인 투자자들의 바이오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참여를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