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조정민 기자
'9.6%'와 '90%'.
두 개의 확률이 있다. 전자는 BIO(Biotechnology Innovation Organization)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거친 모든 의약품 후보물질의 임상 1상에서부터 품목 승인까지의 성공률이다. 신약에 도전하는 10개 프로젝트 중 1개만이 빛을 본 것이다.
낮은 성공률이 제약회사만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막대한 임상비용 투입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패 확률은 결국 성공한 의약품의 고가화를 부추긴다. 이는 결국 환자와 보험자의 의료비 부담 증가로 귀결된다.
또 하나의 확률은 일본인 의사 곤도 마코토가 그의 저서 '암과 싸우지 마라'는 책에 언급한 내용으로 암의 90%는 항암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항암제가 환자에게 전혀 듣지 않는 '무반응률'이 높다는 것은 의학계의 오랜 이슈이자 숙제였다.
항암제의 치료효과는커녕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치료효과가 없는 고가의 신약을 사용하는데 따른 의료비 증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 찾기에 몰두해왔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s, CDx)'은 신약개발의 성공률은 높이고 의약품 무반응률은 낮추기 위한 오랜 고민의 산물이다.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동반진단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맞춤의료의 새로운 트렌드 '동반진단'
동반진단은 특정치료제에 대해 안정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환자군을 선별하는 공인된 진단기술이다. 개별 환자의 특정 바이오마커(biomarkers) 보유 여부를 진단하는 것이다.
각 연구실이나 실험실 차원에서 의약품 선택을 위한 지표를 찾는 기존 방식과 달리 동반진단은 임상과 연계하는 공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신약 임상에 준하는 임상을 거쳐야 동반진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연구실의 환경적, 기술적 요인들과 해석자 개인의 주관을 배제한다.
미국 FDA는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의약품의 용량과 적합한 사용법을 찾기 위해 정밀하고 규격화된 진단의 필요성을 느끼고 2004년 환자 선별을 위한 바이오마커 중심 연구와 임상 시험에서의 동반진단의 활용을 권고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신약개발과 동반진단을 의무화하는 가이드라인까지 내놨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때는 동시에 동반진단을 위한 체외동반기기의 개발과 허가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 특히 신약 임상시험 과정에서 체외동반기기 사용을 위한 임상시험 계획서와 임상적 기능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5년 '체외동반진단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새로운 치료제의 체외동반진단기기가 승인 받기 위해서는 무작위 환자군보다 체외동반기기로 선별된 환자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약효를 입증하도록 했다.
동반진단은 기존의 연구실 기반 실험과 진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엄격한 품질 관리 속에서 규격화된 제품을 이용하며 정해진 프로토콜과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해석, 판독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오차범위와 판독의 주관성을 줄일 수 있다.
◇신약 성공률 높이고 환자 부담 줄이고
동반진단을 하면 어떠한 점이 달라질까
첫번째로 특정 치료제에 대해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환자 선별이 가능해진다. 같은 개념으로 부작용 위험성이 높은 환자도 선별이 가능해 환자의 위험을 줄이고 부작용과 관련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신약개발 단계에서도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군의 범위 선정이 용이하고 명확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함으로써 개발의 위험성이나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바이오마커 기반의 동반진단을 적용한 임상시험에서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BIO의 발표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신약개발 기간도 줄어든다.
두번째로 약효가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주고 판독 시간을 줄여준다. 약효가 있는 경우에는 언제까지 이 약물을 투여할 것인지 투약 종료 시점을 결정하는 데에도 동반진단이 객관적 자료를 제시한다.
약효가 없는 경우 다른 치료법에 대한 고찰이 빠른 시기에 이루어질 수 있어 환자에 치료편의를 제공하고 환자의 비용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효과 없는 약을 사용해야 하는 의료인의 윤리적 책임에 관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세번째로 치료로 인해 어떠한 유전자적 변화가 있을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예후에 대해서 예상이 가능하게 되면서 환자의 치료 일정과 과정을 계획하는 데 용이하다.
◇에이비온, 국내 최초 신약+동반진단 동시 개발
현재 미국에서는 19개의 동반진단법이 허가를 받았다. 유방암의 표적 인자 중 HER-2가 발현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표적항암제 ‘허셉틴’의 환자 선별 및 약효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허셉 테스트’가 최초다.
MSD의 ‘키트루다’의 경우 동반진단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MSD는 임상시험 과정에서부터 동반진단을 활용해 PD-L1(암세포 표면에서 발현하는 단백질)이 50% 이상 발현하는 환자들을 선별했다. 그 결과 약효 입증이 용이했고 임상기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키트루다는 한국 식약처에서 처음으로 동반진단을 포함한 표적항암제로 승인 받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다양한 진단업체와 제휴, 인수를 통해 신약개발과 동반진단키트를 동시에 개발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아직 일부 바이오벤처기업들만 관심을 가지는 걸음마 단계다.
에이비온은 동반진단 혁신신약 개발 전문회사를 목표로 한다. 에이비온은 중추신경계 질환으로서 신경세포를 둘러싼 수초가 탈락함으로 감각 장애, 운동 장애 등을 수반하는 만성질환인 다발성경화증 신약을 동반진단키트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
다발성경화증의 재발과 완화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질병완화를 위해 사용되는 인터페론은 30~50%의 환자에서 약에 반응이 없는 단점이 존재한다. 에이비온이 개발 중인 ABN101은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 동반진단을 실시함으로써 기존 치료제의 단점을 극복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치료제는 2년을 사용하고 나서야 약효가 확인되는데 ABN101은 6개월 이내로 약효 입증이 가능하다"면서 "매년 수천 만원에 이르는 환자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에이비온은 고형암의 유발요인 중 하나인 c-Met을 타깃으로 해 활성화를 억제하는 c-Met 억제제 ABN401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대형 제약사들의 겪었던 c-Met 타깃 암 치료제의 임상 실패를 동반진단을 통해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개발된 치료제에 동반진단을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에이비온과 함께 항암제동반진단기술개발사업단의 진단분야 핵심 기업으로 참여한 젠큐릭스는 폐암 표적치료제 ‘타세바’의 동반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생검이나 절제가 아닌 혈액을 통해 진단한다는 점이 기존 동반진단키트와의 차별점이다.
파나진은 유전자 염기서열을 인식 결합하는 인공물질인 PNA 플랫폼을 기반으로 암 조직 샘플로부터 EGFR(폐암), KRAS(대장암, 폐암), NRAS(흑색종, 대장암, 폐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검출하는 키트인 'PNA Clamp' 시리즈로 동반진단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파나진 역시 혈액으로 진단하는 폐암 대응 키트를 2017년 1분기 국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에이비온의 대표이사인 신영기 서울대 약대 교수는 “예측이 불가능한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이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동반진단을 통한 정밀의료가 필수 요소”라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 빠른 제도적 보완과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