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Lunit)은 미국 내 2000곳 이상 의료기관에 AI 솔루션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Volpara Health Technologies)를 1억 9307만 달러(한화 약 252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인수는 루닛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 유망 의료AI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루닛은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에서 매출을 본격적으로 올리는 동시에 미국내 자체 AI 솔루션 판매망을 확보하게 됐다.
루닛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볼파라 지분 100%를 1억9307만 달러에 인수키로 의결했다. 이는 호주증권거래소(ASX)에 상장된 볼파라 주가를 주당 1.15 호주달러(AUD)로 책정한 것으로, 전날 종가 주당 0.78 호주달러에 프리미엄 47.4%를 붙인 가격이다. 전날 기준 볼파라 시가총액은 1억 9332만 호주달러(한화 약 1672억원)다.
루닛은 이번 볼파라 인수를 위해 인수자금을 외부 차입 등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이번 계약에 따라 볼파라는 내년 2분기 이내에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 75% 동의를 얻어 최종 절차를 마무리하며, 이후 합병 완료까지 약 3~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루닛은 볼파라 최종 인수 이후, 자원 효율화 및 사업개발 집중을 위해 볼파라를 호주시장에서 상장폐지할 예정이다.
볼파라는 지난 2009년 뉴질랜드 웰링턴에 설립된 유방암 검진에 특화된 AI 플랫폼 기업으로, 미국 시애틀에 사무소를 두고 미국내 임상 및 영업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 호주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유방암 조기 진단을 위한 AI 플랫폼을 미국시장에 집중 공급하며 매년 견조한 매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전체 유방촬영술 검진기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곳 이상 의료기관에서 볼파라 제품을 사용하며, 지난해 기준 미국 내 시장점유율 42%를 차지해 미국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볼파라는 지난 2021년 전년대비 57% 증가한 197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158억원), 2022년에는 전년대비 32% 증가한 261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2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도 회계연도가 종료된 지난 3월말 기준 올해 매출은 전년대비 34% 증가한 350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282억원)를 달성하는 등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CACR)은 63%에 이른다. 특히 전체 매출의 96.5%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고, 매출구조가 병원과의 장기계약을 통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등 연간 구독 형태로 발생하고 있어, 추후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볼파라는 회사 설립 후 줄곧 연구개발(R&D)에 매진한 기술혁신기업이란 점에서 영업손실을 기록중이다. 하지만 손실 규모는 지난 2022년 164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약 132억원)에서 올해 98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약 79억원)로 감소 추세에 있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 양사의 사업적, 재정적 시너지를 통해 흑자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데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데이터 1억장 보유한 AI 플랫폼..‘제품간 시너지 기대’
볼파라는 유방암 조기진단과 검사과정의 워크플로우(Workflow)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AI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120건 이상의 특허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및 유럽 CE인증 제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대표 제품인 △볼파라 덴서티(Volpara Density)는 유방 조직의 밀도를 정량화해 유방암 위험 평가에 도움을 주는 솔루션으로, 2차원 유방촬영술과 3차원 유방단층촬영술 모두에서 유방 밀도에 대한 객관적 측정값을 제공한다. 유방암 검사에서 유방밀도 측정은 미국내 다수의 주에서 법제화시킬 만큼 유방암 검진을 위한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유방조직 밀도를 정확히 측정해 위험정보를 제공하는 볼파라 덴서티 제품의 활용도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다음으로 △볼파라 리스크(Volpara Risk)는 개인 맞춤형 유방암 위험평가를 제공하는 솔루션으로, 환자의 개인적 위험인자 및 유전적 요소 등 환자의 개별 요인을 고려해 유방암 위험정도를 측정한다. 이 제품은 유방촬영 이미징 분석에 더해 환자 고유의 임상정보를 포함시켜 정밀분석(Multi-modal Analysis)함으로써 환자별 맞춤형 진단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볼파라 페이션트 허브(Volpara Patient Hub)는 실시간 피드백 제공을 통한 검사과정의 자동화 및 품질개선에 도움을 주는 솔루션으로, 의료진이 일관된 고품질 유방촬영 이미지를 획득하고 불필요한 재검사를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볼파라 애널리틱스(Volpara Analytics)는 객관적인 품질 지표 및 자동화된 보고를 통해 의료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솔루션이다.
특히 볼파라는 유방암 검진에 특화된 정밀한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 등 서양권 여성 약 1억장의 유방촬영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데이터는 제품 개발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객 동의를 얻는 등 이례적으로 법적분쟁 가능성을 모두 해소한 것으로,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 추가적으로 연간 약 2000만장 이상의 데이터를 지속 확보할 예정이다. 루닛이 유방암 진단 AI솔루션 개발을 위해 30만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것을 감안하면, 볼파라가 보유한 1억장 막대한 양의 데이터는 향후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전망이다.
또한 루닛은 볼파라 데이터를 활용해 주로 동양권 여성의 데이터를 학습한 루닛의 유방촬영술 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MMG' 및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한 3차원 유방단층촬영술 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DBT' 제품 고도화를 꾀할 예정이다.
루닛은 볼파라가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초거대 AI에 적용시켜 완벽에 가까운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동시에 미래 먹거리로 추진하는 자율형 AI(Autonomous AI) 구축에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루닛은 볼파라가 미국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내 볼파라 플랫폼 설치기관을 대상으로 루닛 AI 솔루션을 추가 공급할 기회를 얻게 됐다. 또한 루닛은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볼파라 AI 플랫폼을 유통함으로써 매출을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테리 토마스(Teri Thomas) 볼파라 대표(CEO)는 "볼파라 이사회는 이번 인수 계약이 주주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견해에 만장일치로 동의해 이번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며 "이번 인수계약은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사업적 리스크를 완화시키는 한편, 다른 어떤 회사도 따라할 수 없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해 양사가 암 검진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루닛의 볼파라 인수는 루닛이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자, 앞으로 루닛이 암 조기진단을 위한 강력한 솔루션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올해 3분기에 시작된 볼파라 인수 추진 과정에서 암 정복에 대한 양사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는 향후 양사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볼파라는 미국 정부의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Cancer Moonshot)을 추진하기 위한 공공-민간 협력체 '캔서엑스(CancerX)'에 루닛과 함께 창립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지난 2016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협력해온 결과,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정한 '올해의 헬스케어 및 생명과학 파트너(2023 Healthcare & Life Sciences Partner of the Year)'에 뽑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