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신약이 글로벌 시장 진출 과정에서 험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신약 개발에 잠재된 변수 중 일부가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기술 수출 계약 체결 당시 받았던 기대감이 또 다시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의약품 산업 특성을 고려한 냉철한 판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미약품이 지난해 11월 얀센에 기술 수출한 당뇨/비만치료제 ‘HM12525A’의 임상시험이 중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주가가 폭락했다. 제약 바이오업체들의 주가도 출렁거렸다.
◇얀센 수출 바이오신약 환자모집유예..안전성 문제 또는 임상 설계 변경 가능성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짚어보면 지난달 30일 미국 임상정보사이트 ‘ClinicalTrials’에 얀센이 임상1상시험을 진행 중인'JNJ-64565111'의 개발 진행 과정을 ‘recruiting’(환자모집) ‘suspended participant recruitment’(환자 모집 유예)으로 변경했다.
한미약품 측은 "임상 중 자주 발생하는 일시적 조치이며, 임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얀센과의 파트너십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마치 개발 중단의 전 단계가 아니냐'며 불안감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JNJ-64565111’는 지난해 11월 한미약품이 얀센에 기술수출한 지속형 당뇨/비만치료제 HM12525A의 과제명이다. 한미약품이 지속형 당뇨 및 비만치료제로 개발 중인 HM12525는 인슐린 분비와 식욕억제를 돕는 ‘GLP-1’과 에너지 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이중작용 치료제다.
기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성분을 한미약품이 보유한 약효지속 기반기술 랩스커버리(LAPSCOVERY)를 적용한 바이오신약이다. 한미약품은 주 1회 투약 가능한 당뇨/비만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해 임상1상시험을 마치고 얀센에 기술수출했다.
얀센은 임상 규모를 확장해 글로벌 임상1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HM12525의 기술수출로 계약금 1억500만달러를 받았고 상품화 도달시 받을 수 있는 마일스톤은 최대 8억1000만달러다. 사노피와 체결한 39억유로(약 5조원) 규모의 계약에 이어 계약 규모로만 보면 국내 제약역사상 두 번째로 큰 계약이다.
업계에서는 임상1상시험에서 환자 모집이 중단된 이유로 예상치 못한 독성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항암제와 같은 중증 질환을 제외하고 ‘임상 약리 시험’을 지칭하는 임상1상시험은 약물의 안전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통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낮은 용량부터 단계적으로 투여 용량을 늘리면서 독성 발생 여부를 점검하며 최대로 투여할 수 있는 용량을 확인하는 단계다. 환자를 모집하다 중단했다는 사실만 보면 임상시험 설계 당시에 예측했던 것보다 낮은 용량에서 독성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임상1상시험에서는 당뇨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임상1상시험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독성 뿐만 아니라 적정 용량을 살펴보기 위한 임상시험이라는 얘기다. 한미약품은 얀센에 기술수출하기 전에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1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했고, 이 데이터를 토대로 얀센이 기술을 사들인 것이다.
한미약품 측은 환자 모집 유예의 이유로 “정확한 사유를 파악 중이지만 계약 조건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용량 변경이나 피험자 조건 변경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이상반응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독성 문제로 환자 모집을 중단했을 경우에도 당초 설계한 최대 용량 근접 수준에서 독성이 발견됐다면 개발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더욱이 환자 모집 대상을 변경하는 것은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잠재된 수많은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임상 대상 환자 모집이 어려워 추가 모집을 중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의약품 임상시험을 조기 종료했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접수된 166건 중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 중단된 임상시험은 18건에 달했다.
이번 '환자 모집 유예'로만 확인된 사실은 애초에 얀센이 계획했던 개발과정이 100%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개발 중단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독성이나 용량 등의 설계 변경으로 피험자 모집 계획을 변경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신약 특성상 곳곳에 변수 불가피..지나친 반응 경계해야"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억울한 처지에 빠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 수출 성과가 지나치게 화려한 조명을 받은 데다 이미 잠재된 변수인데도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의혹을 받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미약품이 지금까지 기술 수출한 제품 중 계약 규모 1, 2위 모두 랩스커버리를 접목한 약물이다. 기존 약물의 약효 지속시간을 늘려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고 초대형 수출 계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기술 수출한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 3개 모두 아직 후속 임상단계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다. 한미약품이 임상 2상시험을 마치고 기술 수출한 당뇨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우 연내 임상3상진입이 계획됐지만 한미약품의 생산 일정이 지연되면서 내년 초로 미뤄진 상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사노피 기술 수출 건도 물거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임상용 제품을 생산할 준비가 덜 됐을 뿐 우려할만한 악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한미약품 측 설명이다. 생산설비의 완성도, 수율 등의 문제가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한정된 공간에 대규모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처음 건설하는 특성상 공장 건설 일정 지연 가능성도 충분하다.
랩스커버리 기술 자체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나오지만 이미 임상2상시험을 통해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미약품과 사노피의 계약에서 계약 파기시 지급하게 되는 터미네이션 조항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사노피와의 계약에는 최대 2억유로(약 2500억원)의 터미네이션 조항이 포함돼있다. 사노피가 개발을 포기한다면 한미약품은 최대 2억유로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금액은 한미약품이 계약금으로 수령한 4억유로의 절반에 해당한다.
터미네이션 조항 역시 제약사들간 기술수출 계약에서 흔히 설정하는 조건 중 하나다. 기술을 도입한 기업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했을 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특히 사노피 계약으로 받은 계약금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수치다. 사노피 입장에서도 보험을 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한 신약의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변수에 지나치게 반응해서는 안된다고 주문한다. 최근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된 ‘올무티닙’의 권리가 반환됐을 당시에도 마치 올무티닙이 위험한 약인 것처럼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무티닙의 경쟁 약물로 평가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보다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최근 오스트리아 바이오업체 바이라 테라퓨틱스로부터 차세대 항암 기술을 사들였다는 점도 올무티닙의 개발 중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성공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신약 개발 특성을 감안하면 잠재된 변수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신약의 개발이 모두 중단되더라도 한미약품은 이미 계약금과 마일스톤으로 6000억원 이상을 확보한 상태다.
신약 수출 계약은 다른 산업보다 수많은 변수에 대한 조건을 반영하는데 계약 조건상 많은 정보를 노출하지 않아 불필요한 의혹이 증폭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계약 상대방과의 약속에 따라 밝히지 못하는 내용이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는 피험자 모집 난항, 임상시험 지연, 경쟁약물의 개발 속도 등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하는데 잠재된 변수 하나가 불거졌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과거 한미약품과 같은 빅딜을 경험하지 못해 조그만 변수에도 불안감이 확산되는데, 신약개발 특성을 고려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