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 6월 강수형 동아에스티 부회장(당시 대표이사 사장)은 바이오스펙테이터와 만난 자리에서 “당장 내일이라도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신약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리고 6개월만에 회사 창립 이후 최대 규모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자신감을 실천했다. 특히 탐색 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물질로 연간 영업이익에 육박하는 계약금을 받아내는 초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켰다.
◇동아에스티, 5802억원 규모 기술수출..국내 제약산업 역사상 수준급 규모
28일 동아에스티는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면역항암제 '멀티K(MerTK) 저해제' 개발 및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휴미라’ 등을 판매하는 미국 애브비의 자회사다.
계약 규모는 총 5억2500만달러(6300억원)다. 이번 계약으로 동아에스티는 계약금 4000만달러(약 480억원)을 받고, 개발 허가 판매에 다른 마일스톤은 최대 4억8500만달러(5820억원) 규모에 달한다. 지난 1932년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으로 평가된다.
이번 계약은 120년의 국내 제약산업 역사상으로 따져도 손에 꼽히는 규모다. 계약금 4000만달러는 지난해부터 한미약품이 체결한 기술수출 중 5건의 계약금에 이은 6위권에 해당한다. 전체 계약규모 4억8500만달러는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6건에 이은 7위권 규모다.
동아에스티는 최악의 경우 계약금 480억원만 수령할 수 있는데, 계약금만 따져도 지난해 1년간 영업이익 543억원의 88%를 받을 수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216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을 일시불로 받는 셈이다. 동아에스티는 계약금을 올해 안에 받기로 했다.
MerTK(Mer Tyrosine Kinase)는 면역시스템을 억제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물질과 관련된 단백질이다. MerTK 저해제는 MerTK의 활성을 저해해 항암 면역시스템이 활성화 되는 것을 돕는다. 기존의 면역항암제나 다른 항암제와 병용 시 항암제의 효과를 증진시킬 것으로 회사 측은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계약은 후보물질 탐색 단계에서 기술수출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아직 전임상시험 단계에도 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 수출이 성사되는 사례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극히 보기 드물다. 그만큼 애브비가 이 신약 후보물질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이번 계약에 따라 양사는 전임상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전임상 완료 후 애브비가 글로벌 임상 및 허가를 담당한다. 개발이 완료되면 애브비는 글로벌 지역에 대한 판매권을 갖고, 동아에스티는 한국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갖는다.
동아에스티의 항암 후보물질 기술수출은 동아에스티가 3년 전부터 준비해온 미래 성장동력 확보 전략이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1990년대 초 강신호 회장이 ‘우리 회사의 사회공헌은 신약개발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혁신신약 개발에 대한 인프라는 최근 구축됐다.
옛 동아제약은 지난 2013년 지주회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전문의약품을 전담하는 동아에스티, 박카스 및 일반의약품을 전담하는 동아제약으로 분할했는데, 이때 기존의 동아제약의 연구소를 동아쏘시오홀딩스 연구본부와 동아에스티 연구본부로 이원화 하고 지주사 연구본부에 혁신신약 연구소를 새롭게 창설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혁신신약연구소 설립은 패스트팔로워(추격자, Fast Follower)에서 퍼스트무버(선도자, Fast Mover)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신약연구소는 기존 신약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혁신신약연구소에 노바티스 연구소에서 혁신 신약을 연구하던 윤태영 박사를 소장으로 영입하고 20여명의 연구진으로 중개화학연구팀과 분자약리연구팀을 구성했다. 중개화학연구팀에서는 신약구조설계 및 합성, 선도물질과 후보물질의 도출을 담당하고 분자약리연구팀은 타깃 발굴과 기전연구, 분자생물학과 약리연구를 담당한다.
혁신신약연구소에서 지속적으로 기존에 없는 후보물질을 탐색한 결과 애브비와의 ‘빅딜’을 성사시키는 쾌거를 거둔 셈이다.
6개월 전 강수형 동아에스티 부회장이 “충분한 R&D 역량을 갖추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글로벌 무대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배경이 혁신신약연구소가 구축한 R&D 능력에서 비롯된 셈이다. 당시 강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 동향을 고려한 효율적인 신약 전략을 구상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수 실적 부진 장기화' 벗어날 전환점 마련..추가 계약 가능성
특히 동아에스티는 이번 기술수출로 고질적인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전환점을 맞게 됐다.
사실 동아에스티는 지난 몇 년간 극심한 실적 부진에 겪고 있다. 동아에스티의 핵심사업인 전문의약품 매출은 지난 2012년 4397억원에서 지난해 3304억원으로 3년새 33.1% 추락했다. 분기에 1000억원을 웃돌던 전문의약품 매출은 7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국내 복제약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도달한데다 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로 건전한 영업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 걸출한 성과를 내면서 내수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미약품의 사례처럼 동아에스티의 이번 ‘빅딜’이 추후 또 다른 대형 계약으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강수형 부회장은 "항암 분야 경험이 많은 애브비와 MerTK 저해제의 라이센싱 아웃계약을 체결해 매우 기쁘다"며 "MerTK 저해제는 2013년 설립된 혁신신약연구소의 첫 번째 가시적 성과다. 향후 혁신신약 개발을 통해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획기적인 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