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 9월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한 항암제 ‘올무티닙’의 권리가 반환되자 업계 일각에서는 기존에 발표한 계약 규모에 허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른바 '거품 계약' 논란이다.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금 5000만달러를 포함해 총 6500만달러를 받았다. 이 금액만을 보더라도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산업에서 손에 꼽히는 성과를 냈음에도 ‘거품 계약’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올무티닙이 상업화 단계에 도달시 받을 수 있는 7억3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실제 받은 금액이 크게 쪼그라들었다는 이유에서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기존에는 국내제약사가 한미약품과 같은 대규모 기술수출 사례가 없어 기술 계약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면서 “마치 전체 계약 규모를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이해하면서 계약 파기 이후 줄어든 계약 규모에 대한 실망을 나타내는 시선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사실 그동안 국내제약사들이 체결한 기술수출이나 완제의약품 공급 계약의 경우 계약금이 미미한 수준이거나 계약금 규모를 공개하는 사례조차 많지 않았다. 그만큼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규모가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성과였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술수출의 가치를 전체 계약 규모보다는 계약금 규모로 살펴봐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이번에 동아에스티가 애브비와 체결한 계약 규모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까.
지난 28일 동아에스티는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면역항암제 '멀티K(MerTK) 저해제' 개발 및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총 5억2500만달러(6300억원)이며 계약금 4000만달러(약 480억원), 개발 허가 판매에 다른 마일스톤은 최대 4억8500만달러(5820억원) 규모다. MerTK(Mer Tyrosine Kinase)는 면역시스템을 억제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물질과 관련된 단백질로 현재 후보물질 탐색 단계에 있다.
동아에스티가 받는 계약금 4000만달러는 국내 제약산업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다. 지난해부터 한미약품이 체결한 기술수출 중 5건의 계약금에 이은 6위권에 해당한다. 전체 계약규모 4억8500만달러는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6건에 이은 7위권 규모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 계약은 수준급에 속한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분석기관 퍼스트워드파마(Firstword Pharma)가 지난해 말 계약금 순위로 발표한 ‘2015년 의약품 기술 계약 순위(Biggest drug-licensing deals 2015)’ 자료를 적용하면 동아에스티가 애브비로부터 받는 계약금은 전체 23위에 해당한다.
후보 물질 탐색 단계에 이뤄진 기술수출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4000만달러의 계약금은 파격적인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신약 기술 계약을 보면 개발 단계가 상업화에 가까울수록 계약금 규모가 커진다. 상업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을수록 계약금을 많이 책정하기 때문이다.
'멀티K(MerTK) 저해제'가 후보물질 탐색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기술수출의 가치는 더욱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의약품 기술 계약 순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위 32개 계약 중 전임상 단계(Pre clinic)에서 10건 기술수출이 이뤄졌다. 동아에스티의 계약금은 이중 7위에 해당하는 성적표다.
전체 계약 규모에서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다. 이번 동아에스티의 기술수출 계약 규모에서 계약금은 7.6%를 차지한다.
지난해 전임상단계에서 체결된 10건의 기술수출 중 계약금 규모를 공개한 9건의 계약을 보면 전체 계약 규모는 103억1000만달러, 계약금은 6억7800만달러로 계약금이 계약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그쳤다. 헵타레스 테라퓨틱스(Heptares Therapeutics)가 화이자에 기술수출한 신약 후보물질(GPCR 타깃)은 계약규모(18억9000만달러) 대비 계약금(3300만달러)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상업화 단계에서 멀수록 불확실성이 높아 전체 계약규모에서 낮을수록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지는데, 동아에스티는 전임상 단계에도 진입하지 않은 신약 후보물질을 전임상단계의 신약 후보물질보다 더 높은 비중의 계약금을 따낸 셈이다.
그만큼 애브비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이 신약 후보물질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목할만한 계약 규모라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