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아직까지 ‘c-Myc’이라는 단백질을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약물은 없습니다. 2000년부터 c-Myc을 저해하는 약물을 개발하기 시작해 현재 연구팀은 최종약물을 도출하는 단계입니다. 기존 약물은 c-Myc을 구성하는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방해하는 원리로 약물선택성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임상에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c-Myc 단백질이 유전물질에 결합하는 부분을 직접 겨냥하는 차별화된 접근방식을 가집니다”
정경채 국립암센터 암중개연구과 선임연구원은 지난 18일 바이오스펙테이터와의 만난 자리에서 c-Myc 저해제가 ‘퍼스트인클라스(first-in-class)’ 가능성을 갖는 약물이라는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판될 경우해당 타깃을 저해하는 최초의 약물이 된다는 의미다. 이는 단백질과 유전물질이 결합하는 부분을 저해하는 약물을 만드는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연구팀은 선도물질 최적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160여종의 유도체로부터 2종의 후보물질을 확보한 것이다. 정 선임연구원은 “올 하반기에 c-Myc 억제제의 전임상에 들어갈 예정으로 내년에 임상승인 신청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일부 기관과 기술이전 협의도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연구원은 오는 6월 1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양재역 엘타워 지하 1층 골드홀에서 열리는 ‘2017 제1회 바이오파마 테크콘서트’에서 'c-Myc DNA binding domain 타깃 신규항암제 개발'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여러 암종에서 발현하는 전사인자 ‘c-Myc’…항암타깃으로서의 차별성
c-Myc은 유전정보인 DNA가 읽히기 시작하는 전사과정를 매개하는 전사인자다. DNA는 특정 단백질로 발현되는데 그 시작단계인 것이다. c-Myc은 정상세포에서는 거의 발현하지 않으며 배아의 발생초기단계에서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c-Myc이라는 전시인자가 가진 중요성이 재조명된다.
Chi Dang 존스홉킨스 교수는 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종양을 분석해 미국에서 약 7분의1(14%)에 해당하는 환자가 c-Myc 유전자의 과발현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혈액암, 대장암, 난소암, 뇌암(glioblastoma), 유방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종에서 c-Myc의 과발현이 관찰됐다. 종양에서 c-Myc가 발현해 암세포의 분열∙증식에 기여하면서 문제가 된다.
c-Myc이라는 타깃이 매력적인 점은 또 있다. 정 연구원은 c-Myc이 암세포의 분열∙증식과 관련한 신호전달과정에서 ‘최종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c-Myc의 상위단계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는 약물타깃으로 성장인자가 수용체에 붙으면서 시작되는 ‘RAS-RAF-MEK 신호전달과정’이다. 반면 c-Myc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우회도로(Bypass)'가 없다. 지능적인 암세포는 성장∙분열에 관여하는 신호전달과정이 막히면서 금방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데, c-Myc은 최종단계이기 때문에 내성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이 낮다는 것.
이외에도 c-Myc은 변이가 거의 없다는 장점을 가진다. 현재까지 보고된 c-Myc 변이는 바이러스가 감염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특정 유전적변이는 약물결합부위에 구조적인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약물 내성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멀고도 험한 'c-Myc 억제제'의 개발…잇따른 임상실패
c-Myc이 항암타깃으로 갖는 매력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와 스크립스,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 여러 기관에서 c-Myc 저해제를 개발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실패원인으로 “c-Myc은 두개의 단백질로 이루어진 이량체(dimer)로 전사인자로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결합을 하기 때문에 기존 약물은 단백질 상호작용 억제제(PPI, Protein-protein interaction inhibitor)로 이를 방해하는 원리”라며 “문제는 해당 부위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c-Myc 아닌 다른 단백질까지 저해, 선택성(selectivity)이 떨어지면서 효능은 낮고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차선책으로 제시된 것이 간접적으로 c-Myc을 저해할 수 있는 타깃을 건드리는 방법으로, 정 연구원은 전사인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후성유전학적 인자인 ‘BRD4’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난해 로슈가 텐샤(Tensha)가 가진 ‘TEN-010’을 총 4700억원의 규모로 인수했다"면서 “의학적 미충족 수요 때문에 FDA로부터 임상은 허가 받았지만, 임상에서 또 다시 부작용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이 c-Myc을 간접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대사물질, 전사조절인자, 세포주기 검문분자 등의 관련 과정을 겨냥하는 약물을 개발중이다.
정 연구원은 c-Myc 억제제가 임상에서 번번이 실패하면서 우회타깃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을 ‘여우가 도달할 수 없는 포도를 신포도로 생각하는 우화’에 비유했다. c-Myc을 겨냥하는 약물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c-Myc이 성체줄기세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를 저해할 경우 부작용이 크지 않겠냐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는 설명. 그는 “억제제를 투여할 경우 조직재생능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약물투약을 중단할 경우 다시 가역적으로 재생능이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최근 제기되는 우려와 달리 c-Myc을 직접 겨냥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단백질-DNA 결합부위에 결합’ 선택성↑…다양한 암세포주+종양모델서 우수한 항암효능
연구팀이 c-Myc을 선택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은 전사인자인 c-Myc이 유전자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전략이다. 특히 DNA 결합 모티브(DNA binding motif)는 전사인자에 따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약물특이성이 낮아지는 문제가 없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이 부위를 겨냥하는 약물이 개발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정 연구원은 “단백질과 DNA가 결합 모티브를 저해하는 것이 우리 만의 노하우로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라며 “실험을 진행한 결과, 높은 약물농도에서도 c-Myc에 대한 선택성이 우수하면서 이량체가 결합하는 부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술력을 살려 DNA에 결합하는 부위를 저해하는 접근방식을 적용한 후속 항암제 파이프라인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암세포주를 포함한 142개에서 항암효과를 확인했으며, 이를 이식한 방광암, 폐암, 전립선암, 뇌암을 포함한 동물모델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초기에는 주사제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최근 경구투여가 가능한 형태의 약물도 개발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약물이 가진 자세한 프로파일과 약물이 가지는 효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암세포주, 종양동물모델에서 진행한 실험결과를 ‘2017 제1회 바이오파마 테크콘서트’에서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