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보건당국이 지난해 도입한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기준을 두고 이해 당사자들의 견해가 엇갈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중증의 비가역 질환’ 용도의 세포치료제는 임상2상시험만으로 조건부허가를 내주기로 했지만 수혜 대상 질환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건당국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강스템바이오텍은 지난 4일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치료제 ‘퓨어스템에이디주’의 임상3상시험 게획을 승인받았다.
퓨어스템의 조건부허가 불발에 따른 강스템바이오텍의 개발 전략 수정이다. 당초 강스템바이오텍은 지난해 7월 중증의 난치성 아토피피부염 환자를 대상으로 퓨어스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2b상시험을 승인받고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지난해 신설된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기준을 활용, 퓨어스템의 임상2상시험 결과만으로 조건부허가를 통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의도였다.
식약처는 지난해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심사 규정’ 개정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또는 ‘중증의 비가역 질환’에 사용하는 세포치료제는 임상2상시험만으로 조건부허가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을 신설했다. 세포치료제의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한 규제 완화 조치다.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확대되는 대상 품목은 자가·동종·이종, 체세포·줄기세포의 구분 없이 허가되는 모든 세포치료제이고, 조직공학 기술이 도입된 ‘지지체를 포함한 세포치료제’도 함께 포함된다.
강스템바이오텍은 아토피피부염이 비가역적 질환에 해당된다고 판단, 임상2상만으로 조건부허가를 시도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아토피피부염을 중증 비가역 질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식약처의 전문가 자문단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지난 5월 회의를 열어 “중증이라 해도 아토피피부염은 비가역적 질환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강스템바이오텍의 퓨어스템 조건부허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식약처의 권고에 따라 고육책으로 임상3상시험을 진행키로 했다. 강스템바이오텍 측은 “조건부허가 대신 임상3상 완료 후 시판승인을 받는다고 상업화가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해 7월 승인받은 임상2b시험 계획을 조기 종료하고 새로운 임상3상시험에 착수하면서 1년 5개월 가량의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됐다.
이처럼 일부 질환에 대해 조건부허가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당국과 기업들의 시각이 엇갈리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지침이 나온 이후 파미셀의 알코올성간경변치료제 ‘셀그램-LC' 1건만이 조건부허가 대상 질환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식약처는 지난 9월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파미셀이 신청한 셀그램-LC의 조건부 허가를 위한 대상 질환의 적절성과 임상시험계획의 타당성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알코올성간경변(Child-Pugh grade B, C)은 중증의 비가역적 질환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대체치료 여부, 비가역적 질환이라는 특성 등을 고려했을 때 알코올성간경변은 중증의 비가역질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전원 동의했다. 다만 파미셀이 제출한 조건부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 계획은 평가변수와 평가기간이 타당하지 않다며 임상계획을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반면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지난 4월 한 바이오업체가 신청한 퇴행성관절염 줄기세포치료제의 조건부허가에 대해 대상질환은 중증 비가역 질환이 아니라며 조건부허가를 거절했다. 회의에서 위원들은 ‘임상시험 결과에서 시험군과 대조군 모두 K-L grade2가 꽤 포함돼 있는데 K-L grade2는 비가역 질환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총 3개의 줄기세포치료제가 ‘중증의 비가역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이라는 이유로 조건부허가를 신청했지만 1개만이 조건부허가 요건에 부합한다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보건당국과 세포치료제 업체들간 ‘중증의 비가역 질환’ 범위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면서 허가 불발 또는 임상계획 수정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식약처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세포치료제 조건부 허가 운영 지침’을 보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적절한 치료가 수반되지 않는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질환으로 치료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질환이다. ‘중증의 비가역 질환’은 적절한 치료가 수반되지 않는 경우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에 비가역적인 병적 상태가 악화되는 질환 또는 상태로 정의했다.
‘비가역’의 사전적 의미는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변하지 않는’이라는 뜻이다. 중증 비가역 질환은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심각한 질병’으로 해석하면 된다. 식약처는 퓨어스템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중증의 비가역이란 의미는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은 아니며 기능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퓨어스템의 사례를 보면 강스템바이오텍은 아토피피부염이 근본적인 치료제도 없을 뿐더러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하는 질환이라는 이유로 ‘중증 비가역 질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퓨어스템의 조건부허가 대상질환 여부를 논의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아토피피부염이 중증의 난치성 질환에는 해당하나 비가역 질환은 아니다’, ‘세포치료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며 중증 아토피는 경험이 부족한 약물을 사용해야 할 만큼의 질환은 아니다’ 등의 전문가 의견이 개진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식약처가 중증 비가역 질환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더욱이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중증 비가역 질환’에 명확하게 해당하는 질환을 제외하면 다른 질환은 조건부허가 대상에 해당하는지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전문가들이 중앙약사심의원회를 열어 중증 비가역 질환 부합 여부를 논의하지만 참석한 전문가의 시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만약 강스템바이오텍 입장에서 아토피피부염이 중증 비가역 질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전에 파악했다면 조건부허가를 위한 임상2b시험을 진행하지 않고 임상3상시험을 준비, 개발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란 가정도 나온다.
업계 한 관자는 “개발 중인 질환이 빨리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개발 계획이 변경될 수 있는데 애초부터 해당 질환이 조건부허가 요건에 부합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면 상업화 일정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세포치료제의 조건부허가 요건을 더욱 완화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13년 기존 약사법을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품질, 유효성 및 안전성의 확보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하고 중대한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유효성의 가능성을 보이는 줄기세포치료제는 임상2상시험을 마치고 최대 7년간의 시판 중 임상시험을 허용하는 ‘조건부 승인’ 제도를 도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질병의 종류나 중증도에 따라 환자의 불편함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일부 심각한 질병을 제외하고는 특정 질환의 중증 비가역 질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면서 “아직 세포치료제의 조건부허가 신청 사례가 많지 않지만 허가 경험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