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석 충북대 교수
지난 4회의 연재 동안 기초연구의 성과가 어떻게 구체적인 표적항암제의 형태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글리벡(Gleevec) 등장 이후에 글리벡에 내성을 가진 만성 골수성 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CML)의 출현, 단백질 구조 규명을 통한 내성 기전의 규명, 그리고 글리벡로 대표되는 ‘표적항암제’의 의의와 그 한계에 대해서 알아보고 CML 이야기를 마치도록 한다.
구조생물학이 밝힌 글리벡의 작용기전
STI-571이라는 후보물질이 전임상에서 좋은 효과를 내고, 임상시험에 적용될 때까지 이 화합물이 어떻게 BCR-ABL과 결합하여 이의 기능을 억제하는지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결국 화합물이 어떻게 단백질과 결합하여 이를 억제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화합물과 타겟 단백질이 결합한 복합체의 단백질 구조가 규명되어야 하는데, 임상 2상이 진행되던 2000년까지 글리벡과 타겟 단백질인 BCR-ABL과의 결합구조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단백질 인산화효소가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단백질에 인산을 전달해주는 기질이 되는 ATP의 결합부위가 다양한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아마 글리벡은 활성화된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ATP 결합 부위에 결합하지 않을까하는 예측이 있었다[1]. 그러나 버클리대학의 존 쿠리안(John Kurian) 연구실에서 2000년에 최초로 규명된 글리벡과 ABL 인산화효소의 복합체 구조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구조였다[2].
단백질 구조에 의하면 글리벡은 예상한 것처럼 활성화된 형태의 단백질 인산화효소에 결합하여 이의 활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불활성화된 형태의 ABL 인산화효소에 결합하여 있었다(그림 1) 이러한 글리벡의 결합 방식은 왜 글리벡이 보여주는 BCR-ABL을 포함한 몇 개의 인산화효소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대개의 단백질 인산화효소는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그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하나의 단백질 인산화효소에 결합하는 저해물질은 다른 단백질 인산화효소에도 결합할 수 있으며, 따라서 높은 부작용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