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서일 기자
면역과 암을 공부하는 공대 교수
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AACR)는 10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암 학회다. 세계 각지에서 암과 싸우고 있는 의사, 연구자, 제약기업 종사자 등 수만 명의 사람들이 회원이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연례 학술대회에 모여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데, 약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발표와 세미나의 목록만 정리해놓은 책자의 면 수가 200쪽을 훌쩍 넘는다. 1907년, 외과의사 4명, 병리학자 5명, 생화학자 2명이 모여 AACR을 시작했을 때, 이 11명의 창립 회원들은 100년 후에 학회가 이렇게 커질 것을 예상했을까? 아니 100년 후에도 암을 완전히 치료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기대수명이 길지 않았을 때, 암은 운 나쁘게 걸리는 질병이었다. 그러나 이제 암은 살아가다 한 번은 만나는 질병으로 그 지위가 바뀌었다. 지위가 바뀌면 대접도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첨단 과학을 가지고 달려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주인공으로 ‘면역항암제’가 있다.
미국 FDA는 2011년에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인 여보이(Yervoy, 성분명: Ipilimimab)를 암 치료제로 승인한다. 4년 후 비슷한 기능을 하는 면역관문억제제 옵디보(Opdivo, 성분명: Nivolumab)도 FDA 승인을 얻는다. 여보이는 흑색종, 옵디보는 흑색종, 비소세포폐암, 신장암, 방광암 등을 앓는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으며, 처방할 수 있는 암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옵디보는 약 67억 달러, 여보이는 약 13억 달러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돈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지만, 면역항암제가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학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과학자의 글쓰기 2)은, 이렇게 뜨거운 면역항암제의 역사, 개념, 현황,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전체적인 지도를 그려주는 책이다. 지도를 그려낸 이는 의사도,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 전공자도 아니다. 재료공학을 전공했고, 지금도 대학에서 재료공학을 가르치는 공대 교수다.
각도가 달랐을 때의 성과, 선입견이 없을 때의 통찰
도준상 서울대 교수는 Immunotherapy of cancer conference, Natural Killer Cell Symposium처럼, ‘면역’과 ‘암’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학술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공부하는 것으로 면역항암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공대 교수이니 면역이나 암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박사학위를 밟을 때부터 2019년 현재까지 면역학과 공학을 융합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스스로를 면역학을 전공하는 공대 교수로 소개하는 그는, 미국에서 출간된 Microfluidics in Cell Biology Part A: Microfluidics for Multicellular Systems(Academic Press, 2018)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공대 교수가 면역학을 공부하고 면역항암제에 대한 책을 쓴다고 했을 때, 그 앞뒤 사정을 궁금해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문, 공부, 연구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질문이 무엇이며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이 책은 공대 교수인 연구자가 면역학과 면역항암제에 질문을 갖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을 대중과 공유하려는 작업이다. 다른 각도와 선입견 없는 시선에서 나오는 통찰은, 오히려 문제와 질문과 답에 집중하기 좋은 조건이다.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
책의 내용은 책의 제목대로,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다. 우선 면역항암제의 역사를 개괄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단 장황한 연표 그리기는 아니다. 대신 ‘프레임’의 변화를 중심으로 변해가는 면역항암제 개발사에 방점을 찍는다. 면역의 존재를 알고, 면역으로 암을 치료해보려는 시도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는 비주류적인 흐름이었다. 실제 면역항암제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3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면역 시스템은 외부에서 침입한 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자기 vs. 비(非)자기 프레임’에 따르면 암은 외부 물질이 아니니 면역의 관할 영역이 아니게 된다. 오랫동안 계속된 자기 vs. 비(非)자기 프레임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면역항암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가로막은 셈이 되었다. 몇몇 연구자들의 노력과 우연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면역항암제 개발에 힘을 싣지 못하게 방해한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도준상은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 가운데 첫 번째로, ‘프레임의 무서움’을 제시한다. 프레임의 오류만으로도, 지금까지 이뤄낸 면역항암제의 성과를 엉뚱한 곳으로 보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면역은 아직도 연구가 더 필요한 분야다. 생명과학 전공자도 현재까지 밝혀진 복잡한 메커니즘의 면역 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 책은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면역으로 안내한다.
다음으로 그동안 시도되었던 면역항암제에 대한 아이디어, 도전, 실패, 이를 극복해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들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는 면역항암제인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 티쎈트릭 등의 암 치료 원리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이것 역시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의 기준을 지키려 노력한다. 면역항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해설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적합하지 않은 비유로 대체하거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욕심에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데이터를 가득 채우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 중간 어딘가에, 정확하지만 적당하게 자리를 잡아보려 시도한다.
‘면역항암제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들’에 면역항암제의 성과와 한계가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성과와 한계는 ‘방향과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정리된다. 면역항암제가 면역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면역 시스템이 달성하려는 목표와 그것이 실패하는 경우를 살펴야 한다. 암이라는 강한 녀석과 싸우려면 그만큼 독한 방법을 써야 한다는 논리가 면역항암제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면역 시스템의 장점은 문제가 발생한 곳으로 정확하게 가서, 무너진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현재 처방되고 있거나 연구하고 있는 면역항암제의 성과와 한계 지점을 해석할 수 있다. 성과가 있는 곳에는 잘 잡힌 방향과 균형이 있고, 한계가 나타난 곳에는 방향과 균형에 대한 혼란이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면역항암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고민한다. 더 많은 종류의 암과 더 많은 환자에게 정확하게 처방할 수 있도록, 또한 면역항암제 연구개발에서 효율과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바이오마커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또한 투약받을 대상자가 부족해 멈추는 경우까지 생기는, 면역항암제 병용투여 임상시험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한 분석과 제언 역시 잊지 않는다.
◆도준상 지음 /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13×188mm / 본문 260쪽 / 무선제본 / 2019.12.13. / 값 18,000원 / ISBN 979-11-960793-6-9 03470 / 구매 문의 : book@bi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