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가톨릭의대 교수·전상일 큐피터 이사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약개발 종사자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는 각 기업의 개발 부문 인력 구성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회사마다 다소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후보물질이 약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이 70~80%이상일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많은 관계자들은 신약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 확보라고 보는 듯합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1차적 근거로써 비임상 및 임상 데이터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신약으로 허가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십시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후보물질이 어느 정도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가졌다라는 것에 대해 충분히 지식이 쌓이고 그러한 지식이 신약의 가치를 지지할 때 비로소 시판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발의 다음 단계를 계획하기 위해 혹은 시판 허가를 받기 위해 어떤 지식이 필요한가를 먼저 정의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를 결정한 후, 그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데이터가 무엇인가 순으로 생각을 진행해야 합니다.
인체시작용량을 결정하는 간단한 예를 통해 데이터, 정보, 지식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GLP 독성시험을 수행하면 복수의 종에서 용량에 따른 독성 발현 개체 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데이터입니다. 이는 표 혹은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으며 분량이 방대합니다. 이를 한 눈에 보고 의사결정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데이터를 요약 정리해서 정보를 도출하는데 인체시작용량을 결정하는 가장 직관적인 정보가 바로 NOAEL입니다. 다시 말해, 얻어야 하는 지식이 인체시작용량이기 때문에 NOAEL이라는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NOAEL을 사람에 그대로 써도 되는가? 이를 근거로 어떤 용량을 제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GLP 독성시험만으로는 답할 수 없습니다. 동물과 사람의 생리적 유사성, 개체 크기의 차이 등 다른 정보를 융합해야만 이를 지식화함으로써 목표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다양한 정보의 종합적 해석(translation)과 활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듯 데이터가 정보가 되고, 그것이 다시 지식이 되는 과정은 필요성에 대한 도출 과정과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이러한 원리는 신약개발의 모든 의사결정에 유사하게 적용됩니다.
지식은 어떻게 만드는가?
임상 적용 용량/용법에서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해 규제적으로 인정 가능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상 환자 집단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그러한 집단에서 최선의 목표제품특성을 보일 수 있는 용량/용법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전자의 경우, 충분한 임상 경험과 방대한 환자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후자는 그러한 지식을 도출하기 위한 정보가 무엇이며 이에 대한 기반 데이터가 무엇인지에 대한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전임상 단계에서부터 차근차근 다양한 데이터와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지식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화는 여러가지 재료를 좋은 비율로 섞고 적절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훌륭한 음식이 나오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용량/용법은 환자의 특성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후보 물질 자체의 특성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환자(인체)와 후보물질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가 바로 지식화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을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약동/약력학인 것입니다. 다양한 비임상/임상연구들은 이러한 약동/약력학 특성을 예측하고 확인하기 위한 정보 도출의 과정입니다. 동물과 사람에서 다양한 용량 투여 후 나타나는 시간대별 농도와 그러한 농도에 따라 동시간대에 혹은 일정한 시간 지연을 두고 발생하는 신체의 변화를 측정합니다. 재료가 신선할수록 맛있는 요리가 나오듯 지식화 과정에서도 보다 정보가 많은(informative, 측정치가 많음 혹은 보다 정량적인 endpoint를 사용함 등) 연구 결과들이 있을수록 좋은 지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정보들을 한데 모아 다음 단계 설계 혹은 개발 진행을 위한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재료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이 그릇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모델(model)입니다. 이는 후보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생체 내에서의 이동, 인체의 생리학적 특징과 질병 관련 마커들의 변화 양상 등 약동/약력학적인 고려 요소들을 수학적인 관계로 나타낸 것입니다. 신약 개발 중 확보되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는 이러한 모델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수학적 관계는 대부분 방정식을 나타내는데 이 방정식에서 y값(종속변수)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측정된 농도와 효능 또는 안전성 관련 마커의 값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이는 용량에 따라 영향을 받고, 투여 후 경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값입니다. 따라서, 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공변량(covariate)은 투약 여부 및 그 시점, 그리고 투여된 용량이 됩니다. 그리고 핵심적인 x값(독립변수)은 시간입니다. 독립변수의 변화에 따른 종속변수의 변화를 확인할 때, 수학적으로는 미분방정식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모델은 기본적으로 용량과 시간에 따른 농도와 효과의 변화를 표현하는 미분방정식입니다.
그러면 완성된 형태의 미분방정식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당연히 구조(structure)가 확정되어야 합니다. 이는 모델이 몇 개의 항을 가지며 각 항은 어떤 관계로 이어져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각 항에는 파라미터(parameter)가 필요합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y = ax + b의 방정식을 예로 들자면, 이는 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a와 b라는 두 개의 파라미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분방정식도 방정식이라는 차원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구체적인 파라미터 값을 추정하는 것입니다. 위의 예에서는 a와 b의 값이 되는데, 이 작업이 완료되면 방정식은 하나의 함수로써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즉, x값이 주어지면 그에 해당하는 y값을 산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조와 파라미터 값 모두 기반이 되는 데이터와 모델을 지지하는 정보에 의해 결정됩니다. 때로는 이론적 값으로 파라미터 값을 고정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하며, 다른 말로 학습(learning)이라고도 합니다. 한 마디로 기반 이론과 실측치를 융합하여 함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용기에 담겨 요리가 된 것입니다.
활용 목적에 맞게 구현된 모델은 그 기반이 된 정보로부터 도출된 정량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는 약동/약력학 모델링을 예로 들었지만, 최신 신약 개발 트렌드에서는 이를 더 확장하여 각종 모델링을 신약 발굴부터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MID3(Model-informed drug discovery and development)입니다. 또한, 이에 고전적인 혼합효과모델링(mixed-effect modeling, MEM)으로부터 생리학적기반약동학모델링(physiologically-based pharmacokinetics, PBPK), 정량적시스템약리학모델링(quantitative systems pharmacology, QSP)까지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및 지식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 및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지식화가 궁극적으로 라이센싱아웃이나 신약 허가에 있어 후보물질의 특성에 대한 핵심적 근거가 됨과 동시에 신약 개발 중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크기를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중요성은 활용에 있다.
아무리 좋은 요리라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야 하듯, 모델로써 구현된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이를 활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모델은 일종의 함수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의 투여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를 적용(apply)이라고 하며, 이 과정의 결과 개발 당사자는 기존의 정보를 종합한 지식을 토대로 최선의 의사결정(decision-making)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이를 정확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이해하고 그 가치와 한계를 인지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또한, 적용 결과를 해석하여 실제 개발 상황에 이를 반영하는 전문가도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데이터 생성이나 정보의 획득이 아닌 지식을 도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확보해야 합니다. 모델링을 수행하고, 적절한 적용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계량약리학자(pharmacometrician), 계량약리학적 자료를 이용해 최선의 개발 전략을 세우고 임상시험을 설계하며, 후보물질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임상약리학자(clinical pharmacologist)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가들이 충분한 input을 얻을 수 있는 경험 있는 다학제 전문가집단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