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성 가족 성당(Basílica de la Sagrada Família, 1882~)에 지하철로 가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이 아닌 엔칸츠(Encants) 역에서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걸어가는 방법이다. 엔칸츠 역 지하에서 땅으로 올라오면, 사방이 똑같이 생긴 바르셀로나의 바둑판식 교차로에서 아마 길을 잃을 것이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몇 블록을 걸어야 하는, 잠깐의 모험이다. 모든 모험은 끝에 있을 보상 때문에 떠난다. 엔칸츠 역에서 시작한 작은 모험은, 성 가족 성당을 가우디 공원(Plaça de Gaudí) 호수에 비친 흐릿한 이미지로 시작할 수 있다는 보상이 따른다. 만약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에서 내린다면, 지하철 역을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성 가족 성당의 모습에 압도되어 낯선 여행지에서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성 가족 성당이 비치는 호수 옆 벤치에 앉아 한숨을 돌린 다음, 성 가족 성당 쪽으로 걸으면 가우디(Antoni Placid Gaudí i Cornet, 1852~1926)가 만든 ‘탄생의 파사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우디 공원에서 봤을 때까지는 ‘다 먹은 옥수수로 성당의 첨탑을 만든 것일까?’ 정도의 생경함이었다면, 탄생의 파사드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놀라움이다. 탄생의 파사드는 사람이 만든 성당의 문이라기보다는, 숲의 한 부분이 그대로 돌로 변해버린 모습이다. 입구의 기둥은 거대 동물의 뼈처럼 보이고, 무성하게 자라난 나뭇잎 사이에는 성서 속 인물들이 나타나 예수가 태어나기까지의 중요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자연과 생명의 원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성당 입구로 들어가면, 파사드 앞에서의 놀라움이 이제 환상으로 바뀐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면서 빛은 색을 입는다. 색으로 꾸민 빛이 기둥을 비추는 것은 여느 성당에서도 본 듯하다. 그런데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거대한 기둥은 여느 성당에서 보던 기둥이 아니다. 뻗어나간 가지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수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나무가 아니라면 거인의 몸을 버텨주고 있는 뼈와 근육과 인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숲에서는 본 것 같다. 아니면 거인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 완전히 새롭지도 않다. 이런 환상적 장면은 매년 수백만 명의 여행자를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 성당으로 불러들인다. 자연과 생명의 원리로 인공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성 가족 성당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성 가족 성당이 자연과 생명의 원리를 인공적인 건축에 도입한 것이었다면, 바이오 의약품은 자연과 생명의 원리를 약에 도입하려는 시도다. 둘은 자연과 생명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성 가족 성당은 마음을 치료하고 바이오 의약품은 몸을 치료한다. 성 가족 성당과 바이오 의약품산업은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도 닮았다. 1882년에 짓기 시작한 성 가족 성당은,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다.
업그레이드된 바이오 산업 생태계 지도
『바이오스펙테이터 연감 2019.01-09』 는 2019년 한국 바이오 산업 생태계 곳곳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기록했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의 동향도 중간중간 추가했다. 2018년에 시작한 ‘바이오스펙테이터 연감 프로젝트’는 한국의 바이오산업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바이오산업 생태계 지도를 그리고, 매년마다 그 성장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기록하는 작업이다.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아이디어와 연구와 개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물론, 실패한 임상시험과 바이오 산업 생태계 전체를 충격을 준 불미스러운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바이오파마 전문매체 <바이오스펙테이터> 기자들은 새롭게 출간된 논문과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데이터 등을 분석해 2차 자료를 생산했고, 내부에서 교차 검증 과정을 거친 내용들을 정리해 『바이오스펙테이터 연감 2019.01-09』에 실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열린 세계적인 규모의 학술대회인 AACR(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 ASCO(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 ESMO(European Society for Medical Oncology) 등은 물론, 알츠하이머 병을 포함한 퇴행성 뇌질환 신약개발을 주제로 잡은 키스톤 심포지움(Keystone Symposia) 등에 직접 참여했다. 덕분에 15페이지에 이르는 차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2019년 바이오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기획 단계에서는 2019년 전체를 다루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지만, 분량이 너무 많이 일단 1분기부터 3분기까지를 다루었다. 2019년 4분기에 대한 것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손전등을 들고, 구석까지 뒤지는 작업
성 가족 성당을 이야기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표현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다. 가우디는 여러 건축 프로젝트에서 자연과 생명의 원리를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렇게 쌓인 지식과 경험을 성 가족 성당 건축에 쏟아부었다. 이런 이유로 성 가족 성당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가우디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성 가족 성당은 가우디만의 작품이 아니다. 1882년 성 가족 성당을 시작한 것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y Lozano, 1828~1901)였고, 가우디 다음으로는 여덟 번째 건축가가 성당의 건축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 산업 생태계와 바이오 신약개발은, 이런 점에서도 성 가족 성당과 닮았다. 뉴스는 늘 열쇠가 되는 아이디어를 내는 연구와 연구자, 발견과 발명, 논문 한 편에 주목하기 쉽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이 되어 세상에 나오려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매달려야 한다는 것, 수많은 실패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어렵고 지루할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바이오스펙테이터 연감 2019.01-09』도 어렵고 지루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터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쫓아 움직이기보다는 손전등을 들고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어렵고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과학 저널리즘을 향한 도전이다.
바이오산업 생태계의 사이언스와 밸류에이션에 대한 기록 『바이오스펙테이터 연감 2019.01-09』
◆바이오스펙테이터 펴냄 / 170×240mm / 본문 416쪽 / 양장제본 / 2020.02.12. / 값 300,000원 / ISBN 979-11-960793-7-6 93470 / 구매 문의 : book@bi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