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 옵티팜 대표
정말 재수없는 전화 한 통
"삐리리리링~ 삐리리리링~"
"여보세요? 형??"
"응, 나야 현일아, 잘 지냈고? 근데 니는 얼마 벌었니?"
이 형은 늘 이렇다. 단도직입적이고 약간 예의 없는 돌직구의 전형적인 인간형. 거래 관계에서 내가 '을'만 아니었어도 이 형이랑 이렇게 엮이진 않을 거다. 연구결과에 대한 피드백 메일을 보내는 중이라 어깨에 핸드폰을 끼우고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한 채 건성으로 질문을 던진다.
"뭘 벌어요?"
"아니 니가 저번에 추천한 책 있잖아. 내 니 서평 보고 산 책들이 다 맘에 들었는데, 마침 니가 바이오 투자하려면 함 읽어보라 하길래 사서 읽었는데, 그 책 보고 이거다 싶은 회사가 몇개 있는거라. 그래서 두어개 투자를 했는데 대박, 나 다섯장 벌었다~~~"
순간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뻔 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핸드폰을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무릎근처 높이에서 겨우 낚아채고 다시 묻는다.
"어디다 투자했는데요?"
"안갈켜주지~~~"
이 형은 늘 이런 식이다. 덕분에 식욕을 잃었다. 서평을 쓰기로 했는데 책을 던져 버렸다. 6월에 책을 받아서 읽고 서평을 쓰던 중이었는데 예쁜 보락색의, 삽화가 예쁜 책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형이 벌었다는 다섯장은 도대체 얼마일까? 예전에 한 사람이 친구 세 사람한테 돈 한장씩만 빌려달라고 했단다. 다음날 통장에 돈이 들어왔는데 1억원, 1천만원, 1백만원이 입금이 되었더란다. 우라질 인간들... 백만원이면 백만원, 천만원이면 천만원 이야기하면 쉬울 것을 꼭 있어보일라고 "장"을 붙여서 말한다. 형이 벌었다는 다섯장을 얼만지 정말 미치게 궁금하다. 다섯장을 벌었으니 나중에 맛있는 밥 한턱 산단다. 다섯장을 벌어놓고 달랑 밥을 한끼 산단다. 다섯장이 오만원은 아닐터...그것도 언제 산다는 기약도 없이. 공수표인 것이다.
내 지인이 투자한 회사는 분명 이 책에 들어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어떤 회사가 좋으니 투자하라고 적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개된 많은 회사의 주가가 모두 상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바이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많은 회사에 대해서 그 어떤 간행물 보다 자세하고 정확히 바이오회사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내 지인이 투자에 성공한 것은 평소에 투자하고 싶던 회사가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보고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투자의 귀재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자 대상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면 하루하루의 주가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다. 가치투자가 성공하는 이유는 묻지마 투자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와 어떤 면에서 정확히 일치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말들과 삽화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글쓰기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라고 하면 어렵다고 답한다. 그런덴 그 글쓰기도 다른사람에게 이해가 잘 되도록 쉽게 쓰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쉽게 쓰려면 자기 자신이 글쓰는 대상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재미있게 쓰는 것은 더 높은 경지의 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미 독자여러분은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책은 쉽게 씌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씌여져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의약품, 면역 치료,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 진단, 뇌질환 등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머리 아파해본 적 있는 글감들을 술술 읽히게 썼다. 출판한 회사 SNS를 보니 미녀 삼총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분들이 이렇게 내공이 높은지 한번 만나봐야 겠다. 그리고 아래 삽화를 한 번 보시라. 바이오스펙테이터 기자분이 직접 그렸단다. 개념을 이해하고 그린 그림이라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사람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신약개발
이 책을 펴낸 회사의 이기형 대표는 맺음말에서 이렇게 썼다. "처음에 저는 신약 개발이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업계를 지켜보니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약산업의 바탕은 어찌보면 화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화학 역사는 서양의 화학역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고 빈약하다. 서양인들은 금도 화학적으로 합성이 가능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약 1000년 전부터 금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원료에 대한 정제 기술도 더불어 발전하였고 반응을 위한 여러가지 기구들도 덩달아 발전했다. 순수 화학 기반 제약산업에서 우리나라가 고전했던 이유는 역사적 배경과 산업적 배경 탓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제약의 주 배경이 화학에서 생물학기반 바이오로 넘어오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중요한 생물학적 발전은 최근 200년 안에 거의 대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몇몇 선진국에 비해서 격차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바이오 분야는 한국이 최소한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이 앞서갈 수 있는 대표적인 산업 분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이오 분야가 잘되려면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할까? 바이오라는 하나의 큰 산업이 잘 되려면 연구자만 많아서 되는게 아닌 것 같다. 해당 분야로 연구하러 오는 학생도 많아야 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을 데려가는 회사도 많아야 하며, 그런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도 많아야 한다. 투자해서 완성된 제품이 나오면 제대로 알고 써주는 의학자도 있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 규제를 묶어 줄도, 풀 줄도 아는 정책입안자도 필요하다. 여기에 제대로 제품을 알고 투약 받는 소비자(환자) 및 똑똑한 보호자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들이 모두 논문을 찾아보고 직접 최신 정보를 수집, 공부해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쉽게, 재미있게 fact를 전달해줄 책이 꼭 필요한 시기에 나왔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문과 출신 전문투자자가 하루 이틀만에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책이 씌여졌다. 정말 사람의 머리속에서 신약개발이 일어나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한다.
어떤 분들이 읽어야 할까?
먼저 주식 투자하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의 산업 중 BT는 대표적인 성장가능 종목이라고 필자는 자신한다. 지금 과연 어떤 종목투자가 전망이 있을까? 전기차로 위협받는 자동차? 완전히 바닥을 친 조선업? 철강?? 지금은 IT와 반도체가 참 잘나가고 있는데 곧 BT가 잘 나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어떤 BT 종목이 좋을지 자문 받을 시간에 이 책 일독을 권하고 싶다.
바이오산업쪽을 장래 희망으로 두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자신의 진로를 위해 한번쯤 읽어두는게 좋을 듯 하다. 필자는 수의학과를 나왔는데 필자가 수의학과를 다닐때는 수의사가 이렇게 좋은 직업이 될지 모르고 다녔다. 지금 바이오 벤처 쪽 대우가 나쁘고 인건비 조건이 열악하다는 말이 들린다. 바이오 산업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BT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고 투자가 확대되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멀리,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안목을 키우는데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주변 지인 중에 암에 걸리신 분들이 있거나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난치병에 걸리신 분들이 있으면 본인 판단하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본인이 이 책을 먼저 읽고 한번씩 권해드리면 어떨까 싶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에 걸리면 다른 사람 말에 너무 쉽게 휘둘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