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의료기기는 의약품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도 넓지만 대중이 공유하는 명확한 분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의료기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류와 각 분야에 대한 투자자로서의 시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의료기기의 분류하는 방법은 크기별 분류, 용도별 분류, 사업 모델별 분류 등이 있을 수 있다. 먼저 크기별 분류는 말 그대로 대형 의료기기와 소형 의료기기로 나누는 것인데 대형과 소형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병원의 전결 규정에 따라 분류하면 어떨까 한다. 대형 병원 과장이 결제할 수 없는 규모의 장비는 대형 의료기기가 아닐까? 국내 중견 병원의 위임전결기준에 의하면 “추정가격 3,000만원 미만의 물품 구매(수리, 제조) 요구 및 용역.공사 발주” 는 과장의 위임 전결 사항이다.
대형의료기기 투자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GPS의 시장점유율이 얼마나 되나?”이다. GPS는 대형 의료기기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GE, Phillips, Siemens를 의미하는데 우리가 병원에서 보는 대부분의 대형, 고가 장비의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CT(Computed tomography), PET(Positron-emission tomography) 또는 PET-CT, PET-MR 등의 장비는 10억원 이상의 고가 장비로 일단 돈이 많이 들고 구매 담당자가 구매를 실패했을 때 병원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 기기 유지보수가 매우 중요하므로 GPS 제품을 대부분 구매하게 된다.
우리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기본적으로 1)가격 2)연비 3)디자인 4)배기량 등 제품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자동차 회사가 제공하는 할부 서비스와 같은 금융서비스, 무상보증 서비스와 같은 제품의 성능과는 관계없는 부가서비스에 의해 구매의사를 결정하며 자동차의 브랜드가 구매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형 의료기기 제조사들은 금융서비스, 판매 후 관리서비스 등의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며 오랜기간 축적된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영업활동을 진행하기에 후발 주자들이 제품의 개선된 성능 및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장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국내에서 MRI, CT 등을 개발하는 회사들의 사업계획서를 많이 보아왔고 현재의 사업내용도 계속 지켜보고 있지만 대부분 시장 진입에 실패하거나 제품을 출시하였더라도 국내 저가시장과 동유럽의 저가시장을 공략하는데 그쳐 매출 성장이 매우 부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주 고가 장비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 의료기기 중 세계 시장에 인지도가 있는 초음파 진단기의 경우도 삼성메디슨이 시장 점유율을 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중저가 시장에 머물고 있는 점이 대형 의료기기 시장 진입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료와 관련된 시장은 장기간 축적된 브랜드 인지도가 제품 구매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의료기기 회사들은 대형 의료기기보다는 소형 의료기기에 집중하고 뒤에서 언급할 다양한 사업형태를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용도별 분류는 크게 의료기기를 7개의 사업군으로 나누어서 △수술기기 △범용의료기기 △전자의료기기 △방사선 및 영상기기 △치과용 의료기기 △체외진단기기 △기타 의료기기로 분류한다.
▲수술기기 : stent, catheter, spinal surgery, fixation, 인공수정체 등의 특수 수술용 장비 및 의료기기로 이미 특화된 영역에서 대형 다국적 회사들이 활발하게 M&A를 하는 시장이라 볼 수 있다. 국내에도 관련된 회사들이 많이 성장을 하고 있지만 주요 사업은 대형 회사의 OEM 공급에 그치고 있으며 매출 규모도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투자자의 주요한 수익 실현 모델은 IPO 보다는 M&A라고 볼 수 있다.
▲범용의료기기 : 의료용 장갑, 용기, 의료복, 일회용 부직포, wound dressing 등의 소모품으로 시장 규모는 크지만 기술적인 진입장벽이 없어 후발주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쉽고 수익률도 높지 않은 시장으로 투자자에게 큰 매력은 없는 시장이다.
▲전자의료기기 : 환자감시장치, 투석장비, 현미경, 의료용 laser 등의 전자장비 시장으로 국내 대부분의 회사는 OEM 사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신제품 출시시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하나 성장성 및 수익성은 높지 않은 분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기의 특성상 가격 경쟁은 치열하지 않으며 가격보다는 인증받은 다양한 판매 모델의 확보가 중요하다. 후발 주자의 경우 각 판매 모델별 임상 및 인증 비용이 부담이 되어 사업확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규모 초기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장속도가 매우 느려 수익률 제고가 어려울 수 있다.
▲방사선 및 영상기기 : 대부분의 기기가 앞에서 말한 대형 의료기기에 속하며 GPS의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분야이다. 국내 대부분의 회사들은 저가 X-ray 장비, 초음파 장비 시장에 치중하고 있으며 큰 사업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장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뒤에서 진단 시장을 따로 다룰 예정이지만 영상 장비야 말로 인체의 질병 상태를 있는 그대로 분석할 수 있는 시장으로 사업성은 큰 분야라 생각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암 진단에 가장 효과적인 장비의 하나로 근래에 대두되는 PET-MRI 또는 PET-CT의 경우 촬영 전 방사성의약품 (Radio-pharmaceutical) 을 주사하게 되는데 방사성물질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붕괴되어 방사성을 잃게 되므로 신속하게 제조 및 처방까지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방사성의약품의 제조기법 및 신규 방사성의약품의 개발 분야가 투자 유망분야라고 생각한다.
▲치과용 의료기기 : 국내 치과용 임플란트 회사들의 세계시장 경쟁력이 뛰어난 분야이다. 임플란트 제조사로 상장사도 많고 수요자의 의견이 신제품 개발에 신속히 반영되어 제품의 품질과 다양성 측면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임플란트 시장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모품 및 기기 시장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특히 Dental CAD/CAM 시스템을 이용한 보철 및 인공치아를 당일제작 및 치료, 특히 1시간내에 구현 (Zero-hour treatment)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 및 기기 등 digital dentistry 시장과 관련된 경쟁력을 확보한 회사들이 출연할 것으로 예상한다.
▲체외진단기기 : 대형 병원이나 임상 실험실 (clinical laboratory)에서 사용하는 대형 분석 장비 와 소형 병원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있으며 대형장비의 소형화를 통한 새로운 사업 영역을 창출하고자 한다. 체외진단 시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보다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의료기기 시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신규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하지만 기존 의료기기의 개량만으로는 시장진입이 힘들며, 기존 치료법을 대체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기 시장에서 사용하는 기본 기술들은 기술적으로는 전자제품이나 장비시장과는 큰 차이가 없지만 강력한 규제가 존재하는 사용 환경이 다르고 사용대상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 시장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 소재와 부품을 사용한 의료기기의 의료 환경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의료기기와 관련된 투자 의사 결정은 요소 기술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현장 및 시장진입 가능성을 더 잘 이해하는 전문 투자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필자가 투자 검토를 진행했던 비만 치료 의료기기의 경우 위장에서 분비되는 강한 염산을 견딜 수 있는 소재의 풍선을 위에 불어 넣음으로써 식사량이 줄어 비만이 치료된다는 기본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였으며 산업적으로 사용되는 소재가 인체에 삽입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의 검증과 임상을 통한 치료 효과 검증이 진행된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분야라고 필자는 생각했었다. 이와 같이 기존 약물을 이용한 비만 치료와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의료기기와 관련된 사업계획은 FDA 인증시 시장에 큰 파급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전자제품 및 장비 시장은 사용자가 곧 구매자로 구매 의사결정을 사용자가 내리지만 의료시장은 사용자, 의사결정권자, 구매자 가 모두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의료현장에서의 사용자는 환자, 구매 의사 결정권자는 의사, 구매자는 의료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료기기 개발자들은 구매자와 구매 의사결정권자 보다는 환자의 편익 향상만을 위한 기기 및 소모품을 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사업전략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신규 의료기기 및 소모품의 구매 의사결정권자는 환자가 아니고 의사 및 의료보험이고 이를 통해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의 편익 향상을 위한 기회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의료기기 사업 모델은 물론 환자의 편익 향상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구매자와 의사 결정권자의 편익 향상이다. 결국 사업전략에 있어 의사의 처방 용이성 및 병원의 수익성 향상, 의료보험의 수익성 향상을 항상 고려해야하는 이유이다. 환자의 편익 향상과 의사결정권자 및 구매자의 수익성 향상에 기여하는 제품 및 서비스 만이 시장에 진입 할 수 있다는 점을 개발자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사결정권자와 관련된 예를 들어보자. 응급실용 공용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는 장비 생산원가 3,000만원의 기기를 5,000만원에 판매하려고 한다. 장비 가동에는 소모품이 소요되는데 일회용 소모품을 20만원에 납품하려고 한다(원가는 10만원 이다). 단 이 병원 담당과장의 결제 권한은 3,000만원이며 3,000만원 초과 장비는 장비도입위원회에 회부하여 도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기기의 성능은 뛰어나다. 잘 팔릴까? 아니면 더 잘 팔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가격 결정 방법을 보면, 위의 판매 가격은 제조 원가를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제조사가 들인 원가에 적절한 이윤을 붙여 판매가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현금 흐름을 고려한 판매가는 마치 프린터와 잉크 구매와 마찬가지로 일회성 구매인 기기구매 보다는 지속 구매가 가능한 소모품 가격을 올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회사가 개발하는 제품의 원가를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구매자는 판매자의 제품원가 및 수익성 보다는 구매 담당자의 업무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장비를 3,000만원 이하에 판매하여 담당자가 빠른 구매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고 소모품 가격을 대폭 올려 200만원에 판매하는 것이 매출 및 현금흐름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을까? 판매가격은 생산 원가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업모델에 대한 고려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