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이은아 기자
췌장암 세포를 더 공격적이고 약물내성 상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후성유전인자가 발견됐다. 미국 바이오기업 제넨텍(Genenctech) 연구진은 암 전이와 항암제 약물내성을 일으키는 상피-간엽 전이(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 EMT)를 조절하는 히스톤메틸화효소(histone methyltransferase)인 ‘SUV420H2' 유전자를 찾았다. SUV420H2 유전자를 표적해 기존 치료제의 약물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대부분 암세포는 기관의 표면에 위치한 상피세포(epithelial cell)로부터 형성되는데, 상피세포는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고정돼 조밀하게 채워진 단단한 조직 형태다. 그러나 암이 진행됨에 따라 상피세포의 특성은 잃고 이웃 세포로부터 분리돼 다른 조직으로 침투하고 이동성을 띠는 간엽세포(mesenchymal cell)적인 특성을 띠면서 암이 전이된다.
이렇게 상피세포에서 간엽세포로 전환되는 현상이 상피-간엽 전이(EMT)다. 암을 치료하기 어려운 것도 EMT 때문이다. 간엽세포로 전환된 암세포는 약물내성이 강하고 종양 성장을 유도하는 줄기세포와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진이 상피-간엽 전이(EMT)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제넨텍 연구진은 인간 췌장암(PDAC,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세포주에서 300개의 후성유전 조절인자의 발현을 감소시키는 siRNA 스크리닝을 통해 EMT를 조절하는 효소 ‘SUV420H2(lysine methyltransferase 5C, KMT5C)'를 발견했다. SUV420H2는 히스톤 단백질(H4)의 20번째 라이신 잔기에 특이적으로 메틸기를 붙임으로써 암전이를 매개하는 EMT를 조절한다. 연구내용은 11일 Journal of Cell Biology 논문에 발표됐다.
SUV420H2 유전자가 결핍된 췌장암 세포는 상피세포 특이적인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하고 간엽세포에 의해 발현되는 유전자가 감소했다. 대조군과 비교해 간엽세포성 특징인 세포의 이동성, 세포 침투력도 감소했다. 또한 종양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줄기능(stemness)의 마커인 CD24와 CD44의 발현도 줄었다. 췌장암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표적함으로써 암세포의 전이와 증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SUV420H2 유전자의 감소는 약물내성을 극복하는데도 효과적이었다. Manuel Viotti 박사는 “SUV420H2 결핍 췌장암 세포에서 화학항암제 젬시타빈(gemcitabine)과 5-플루오로우라실(5-FU)을 처리시 약물 감수성을 높이기에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SUV420H2 유전자의 발현을 높였을 때는 어땠을까? 연구진은 상피세포에서 SUV420H2의 발현을 증가시켰을 때 간엽세포의 특성과 유사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 건강한 췌장 조직에서는 SUV420H2의 발현이 낮았지만, 췌장암 초기단계에서 유전자 발현 수준은 약간 높았으며, 진행성 전이단계에 도달한 종양 조직에서 유전자 발현은 더욱 증가됐다. SUV420H2 유전자와 췌장암 상피-간엽 전이(EMT)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밝힌 것이다.
Ira Mellman 제넨텍 면역항암파트 부사장은 “이번 연구는 상피세포로의 유도를 통해 암세포의 전이와 조직 침윤 능력을 줄일 뿐 아니라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줄기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SUV420H2을 표적하면 기존 암 치료제에 대한 반응을 증가시킬 수 있기때문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은 종양세포를 상피세포로 전환시키는 것이 암 환자에게 유익한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경고했다.
현재 제넨텍 연구진은 췌장암 세포에서 SUV420H2 유전자의 역할이 다른 암에서도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