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이 우수 신약기술을 보유한 바이오벤처나 연구진들에 ‘3자 분업모델’을 제안했다. 초기 개발단계에서 발굴한 우수 기술을 임상시험 경험이 많은 업체들에 넘겨 상업화 시기를 앞당기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사장은 최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만나 “벤처들이 보유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것이 많다. 일부 벤처들은 기존에 투자한 자금만 생각해 기술 이전료를 높게 부르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기술료를 많이 주지 못해도 끝까지 동업하는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기술수출한 신약 과제 모두 임상1상 또는 2상까지 완료한 이후 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등 다국적제약사에 막바지 임상시험을 맡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사장은 “다국적제약사에 임상시험을 맡겼더라도 엄연한 우리 약이다. 현실적으로 국내 벤처나 기업들이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한 모든 과정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단계별로 잘할 수 있는 기업에 맡겨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다”고 조언했다. 사실 한미약품도 대규모 기술수출 성과가 나오기 전엔 주주들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았지만 과감한 R&D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미약품도 지난해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대박'을 준비 중이다. 우선 지난해 기술 수출한 제품들의 상업화 단계를 앞당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미 베링거인겔하임, 스펙트럼 등에 기술수출한 신약 과제가 후속 임상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지난해 5조원 규모의 수출 규모를 기록한 당뇨 신약은 현재 사노피가 임상3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한미약품은 임상시험용 당뇨약을 공급하기 위해 바이오공장 확장을 진행 중이다.
새로운 신약의 추가 수출 계약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 사장은 “이미 기술수출한 신약 이외에도 다양한 과제에 대해 전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신약 과제의 가치가 높다면 전임상 단계에서도 딜이 많이 이뤄진다. 작년의 성과로 인해 한미약품의 신뢰도가 높아져 추가 수출 계약 가능성은 높다”고 설명했다. 신약의 상업화 단계까지 직접 수행하는 시도도 구상 중이다. 이 사장은 “회사 자본력에 맞춰 환자 수가 많지 않은 희귀약은 글로벌 임상시험도 직접 해볼 계획이다”고 했다.
국내외 유망 업체의 인수ㆍ합병(M&A)이나 기술 제휴도 적극 추진한다. 이미 신호탄이 쏘아올려졌다. 한미약품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최근 의약품 관리 자동화 시스템 기업인 제이브이엠을 인수했다. 이번 인수에 투입된 총 1290억원 중 80%인 1033억원은 한미사이언스 주식 1.1%를 제이브이엠에 넘기고 경영권을 받는 주식스왑 형식이다. 한미사이언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올라 현금은 크게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이 사장은 "제이브이엠은 국내외 보유 특허가 541건에 달할 정도로 신기술을 많이 보유한 기술집약형 기업으로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의약품 관리 자동화 시스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자회사인 온라인팜의 유통 사업과 시너지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한미약품은 최근 국내 벤처기업들의 신약 과제를 적극 수용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혁신, Open Innovatio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제1회 한미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을 열어 유망 신약 기술을 직접 발굴해 R&D(연구개발) 역량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성과 효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한미약품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사장은 “현재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검토 중인 신약 과제가 수백개에 달한다. 우수 과제가 많아 우선순위가 꼽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만간 국내 기업과 협력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