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3세대 유전자가위 크리스퍼(CRISPR-CAS9) 특허는 일종의 놀이동산 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입장권이 있다고 해서 롤러코스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와 만난 자리에서 버클리·툴젠·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간에 벌어지는 크리스퍼 특허 분쟁과 관련해 이 같은 비유를 들었다.
원하는 DNA를 자르고 새로운 DNA를 삽입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활용을 위해서는 특허 확보가 중요하긴 하지만 특허가 전부라는 시각은 오해가 있다는 설명이다. 원천기술인 크리스퍼만으로는 산업적 활용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김 소장은 "크리스퍼로 새로운 치료제나 품종이라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특허가 합쳐지고 개발돼야 가능하다. 결국 크리스퍼는 길을 열어주는 특허로서 의미가 있다"면서 "하지만 여러 특허가 쌓여갈수록 입장권 특허의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원천기술은 '감가상각'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입장권으로서의 크리스퍼 원천특허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특허 분쟁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크리스퍼 특허가 무효가 되거나 각 회사가 일부 권리를 나누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특히 버클리·툴젠·브로드연구소 이 세 그룹이 특허청구범위에 따라 특허 일부분을 인정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 유럽의 생명과학 지적재산권 전문매체인 'LSIPR(Life Sciences Intellectual Property Review)'도 이 같이 전망했다.
툴젠의 경우 처음으로 크리스퍼를 세포에서 사용해 유전자교정을 성공한 실례를 보여줬다. 앞서 미국 특허를 출원한 버클리는 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툴젠이 유전자교정의 필수항목을 점유할 가능성이 있다.
김 소장은 다만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크리스퍼 특허는 플랫폼화된 일종의 '게이트 기술'이라는 점에서 특정 기업이 독점케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이롭지도 않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의 특허 분쟁은 특허청 내부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가장 늦게 특허를 출원한 브로드연구소가 신속심사로 특허를 확보하자 버클리가 이의를 제기했고 특허청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 두번째로 특허를 출원한 툴젠 역시 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대응하고 있다. 결국 특허분쟁은 이제 막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김 소장은 "사실은 아직 분쟁이 시작됐다고도 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최소 3~4년은 분쟁이 계속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특허에 대한 사업적 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권자·투자자들이 긴 분쟁을 지속하기보다는 합의를 통해 산업적 활용을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툴젠은 올해 크리스퍼 국내 특허 취득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내 특허청과 특허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올해 말이면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특허 공유 협정을 맺은 중국, 일본, 호주 등에서 빠르게 특허 등록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툴젠은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들과의 사업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크리스퍼를 산업화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교류를 본격화한 것이다.
국내 유전체 분석 및 빅데이터 선두주자인 신테카바이오와는 개인유전체맵분석 기술을 응용해, 진단 이후 솔루션 확대를 위한 연구협약을 체결했다. 신테카바이오의 유전체 빅데이터로 희귀유전질환을 스크리닝하면 툴젠의 유전자 교정기술로 맞춤치료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녹십자셀과는 T세포 기반의 차세대 면역항암제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혈우병·사리코마리투스 치료제 개발 등의 프로젝트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김 소장은 "동물모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개발 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