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 2010년 동아쏘시오홀딩스(옛 동아제약)와 녹십자가 원료의약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s) 업체 삼천리제약을 두고 인수전을 펼쳤다. 국내 제약업계 매출 선두권을 다투는 기업들간 경쟁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결국 동아제약이 약 500억원에 삼천리제약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 중 하나인 에스티팜의 전신이 삼천리제약이다.
지난해 6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에스티팜은 지난해 매출(2004억원)과 영업이익(778억원)이 전년대비 각각 45%, 26% 상승하는 실적 호조를 기록했다.
2년 전인 2014년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08%, 702% 성장하는 가파른 상승세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478억원)과 영업이익(180억원)이 전년동기대비 각각 55%, 107% 증가하며 거침없는 질주를 지속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38%에 달한다.
지난달에는 상장 10개월만에 코스닥 시장의 소속부가 중견기업부에서 우량기업부로 상향 조정됐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상장사를 우량기업부와 벤처기업부, 중견기업부, 신성장기업부 등 4개 소속부와 투자주의 환기종목 등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우량기업부는 자기자본 700억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이 최근 6개월 평균 1000억원 이상이면서 △자본잠식이 없고 △최근 3년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평균 3% 이상이거나 순이익 평균 30억원 이상 △최근 3년간 매출 평균 500억원 이상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최근 경기도 시흥시 에스티팜 연구소에서 만난 김경진 연구소장(54)은 “신약 API 영역에서 글로벌제약사들로부터 높은 신뢰도를 축적했다”며 최근 실적 호조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에스티팜의 연구소장으로 부임한 김 소장은 로슈 본사에서 15년간 연구개발(R&D) 업무를 담당했다.
에스티팜의 최근 실적 상승세는 길리어드의 C형간염치료제 ‘소발디’(성분명 소포스부비르)와 ‘하보니’(성분명 소포스부비르+레디파스비르)의 높은 성장세에 기반한다. 소발디와 하보니는 C형간염치료제를 완치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인 치료제로 주목받은 약물이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131억달러(약 15조원)을 합작했다.
에스티팜은 소발디와 하보니의 구성 성분 중 ‘소포스부비르’를 공급한다. 김 소장은 “길리어드는 소포스부비르를 3개의 API 업체로부터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3곳 중 1곳이 에스티팜이다”라고 소개했다. 소발디와 하보니가 글로벌 시장에서 많이 팔릴수록 에스티팜의 실적도 올라가는 구조다.
지난 1분기 기준 에스티팜의 매출에서 신약 API가 차지하는 비중이 79%에 달한다. 수출 실적(411억원)은 회사 매출의 무려 86%를 차지했다. 2014년 67%, 2015년 74%, 2016년 83%에 이어 지속적인 상승세다.
2015년 기준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16조9696억원)에서 수출(29억달러, 약 3조3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도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제약사 중 독보적으로 높은 수출 비중을 자랑한다.
에스티팜이 소발디와 하보니의 API를 공급하게 된 계기는 노력과 행운의 절묘한 조합이다. 길리어드는 지난 2011년 파마셋을 110억달러에 인수했는데 당시 에스티팜은 파마셋과 C형간염치료제 API의 공정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파마셋이 길리어드에 인수하면서 에스티팜도 C형간염치료제 API 공급업체로 합류했다. 국내에서 다국적제약사의 신약API를 생산하는 업체는 에스티팜 이외에 유한화학 정도 뿐이다.
국내업체 중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API는 에스티팜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과거 삼천리제약 시절부터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에이즈치료제 ‘지도부딘’을 생산·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신약 API 사업과 오랜 인연을 맺었다.
김 소장은 “에스티팜은 과거 삼천리제약 시절부터 유기합성능력이 뛰어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다국적제약사로부터 높은 신뢰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지도가 더 높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신약 API는 단순 위탁생산(CMO)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신약 API는 다른 업체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다국적제약사의 주문만으로 원하는 품질을 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 소장은 “특정 신약API를 생산하려면 원 개발사로부터 완벽하게 기술이전을 받아야 하고 제조시설과 생산공정 전반에 대해 글로벌 수준의 품질 기준을 구축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마치 설계도만으로 건물을 똑같이 건설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길리어드가 20여명의 인력을 에스티팜에 파견해 1년 동안 소포스부비르의 생산 노하우를 전수했고, 에스티팜의 API 제조시설은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의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도 통과했다. 사실상 에스티팜이 생산한 제품이 길리어드의 완제의약품 제조공정을 거쳐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셈이다.
김 소장은 “신약 API 사업은 종합예술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신약 API 사업의 어려움을 함축하는 단어다.
신약 API가 성공적인 성과를 내려면 연구 능력과 함께 적잖은 인내가 동반돼야 한다. 김 소장은 “대다수의 신약 API는 개발 과정부터 글로벌제약사들과 공정 연구를 같이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했다.
에스티팜은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료나 중간체를 공급한다. 소포스부비르의 생산도 에스티팜이 10여년간 공정연구를 진행한 인내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물론 상당수의 신약은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 극소수의 신약이 성공궤도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 API도 성공사례를 배출하려면 험난한 개발과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신약 API 업체는 다국적제약사와 ‘동반자’ 관계가 형성된다. 만약 제조공정의 결함으로 API 공급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다국적제약사도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다국적제약사 입장에서도 적기에 원하는 품질의 API를 조달해주는 업체가 절실하다. 제네릭 API의 경우 단가에 따라 거래처가 종종 바뀌지만 신약 API는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좀처럼 거래처를 변경하지 않는 이유다. 에스티팜은 길리어드와 2년마다 공급 계약을 채결해 API 공급 물량과 스케줄을 미리 결정한다. 에스티팜 입장에서는 일정 기간의 실적은 예측이 가능한 셈이다.
에스티팜은 길리어드와의 성공적인 사업 제휴를 기반으로 또 다른 신약 API 분야에서도 성공사례 배출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김 소장은 “길리어드와 계약기간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면 향후 사업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다양한 신약 API의 생산을 진행 중이며 다국적제약사들도 에스티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에스티팜은 소포스부비르 뿐만 아니라 올리고 핵산치료제를 비롯해 다양한 신약 API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에스티팜으로부터 API를 공급받는 국내외 제약사와 바이오텍은 20곳 이상에 달한다.
에스티팜은 신약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다. 김 소장은 “신약 API로 수익원(캐시카우)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 차별화된 신약을 개발할 계획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에스티팜의 신약 개발 전략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자체적으로 고유의 신약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외부 역량을 적극 활용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재 대장암치료제와 항응고제의 전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대장암치료제 ‘텐키라제(Tankyrase) 효소 저해’ 라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로 한국화학연구원과의 공동연구로 비임상후보물질을 도출했다. 항응고제는 변영로 서울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개의 과제 모두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의 지원 과제로 선정됐을 정도로 사업성을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에이즈치료제, 바이러스감염치료제, 인플루엔자감염치료제, 근육노화치료제 등 총 6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에스티팜은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 1,2상 단계에 진입해 성공적인 가능성을 확인하면 글로벌제약사에 기술 이전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에스티팜과 네트워크를 형성 중인 많은 다국적제약사들이 에스티팜의 신약 과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신약API 사업 협의차 다국적제약사와 미팅을 진행한 이후 신약 개발 현황에 대해 소개하는 회의를 별도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김 소장은소개했다.
김 소장은 “개발 중인 신약이 임상시험에서 만족할만한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기존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 이전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신약 API 사업을 담당한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기술 이전 계약을 맺을 때에도 API 공급은 에스티팜이 담당하는 조건을 제시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