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원 신라젠 연구소장
바이러스와 암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좀 더 단순하게 질문하자면 암에게 바이러스는 어떤 존재일까? 바이러스는 암에게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인 듯 하다. 즉 바이러스는 암을 유발하는 우리 몸에 해로운 병원체이기도 하지만, 바이러스를 역으로 이용하여,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됨으로 암을 유발시키거나, 암 발병률을 현저하게 증가시키는 바이러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 virus), 만성 간염에서 간암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인인 B형, C형 간염바이러스(HBV: Hepatitis B virus, HCV: hepatitis C virus), 백혈병의 원인 중 하나인 human T-lymphotropic virus-1(HTLV)등이 있다.
이러한 바이러스에 의한 발병한 암의 경우 그 발생 위험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이들 바이러스의 감염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념인 백신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 백신으로는 死백신이나 약독화된 바이러스를 접종함으로 후에 노출될 수 있는 이 바이러스들에 대해서 싸울 수 있도록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준비시켜 놓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개념의 암 예방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바이러스는 위의 언급한 발암 바이러스와는 무엇이 다른가? 바이러스라고 해서 모두 병을 일으키거나 심한 증상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매우 약독화된 바이러스 종들은 이미 천연두, 폴리오, 일본뇌염바이러스 등의 예방백신에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이러스의 게놈을 엔지니어링 하여 질병과 연관이 될 수 있는 유전자는 제거하고 암특이적 항원이나 사이토카인을 발현하도록 디자인하여 암 예방과 치료에 사용되는 유용한 바이러스도 근래에 개발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바이러스를 활용하여 수지상 세포를 활성화시키거나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킴으로 면역 세포들을 암과 싸울 수 있는 전사(戰士)로 재탄생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벡터로써 갖는 장점, '바이러스...캡슐로 잘 제조된 화학 약품'
그럼 여기서 면역원성 증진을 위한 유전자 전달체로 왜 유독 바이러스가 각광을 받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화학약물을 체내에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약물투여경로와 거기에 맞는 전달 제제의 개발이 약물 개발만큼이나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약제인 항체나 면역증강 물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인코딩(encoding)하는 유전자를 체내로 전달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자체의 감염성 때문에 세포내 침입이 용이함으로 유전자를 전달하기에는 더도 없이 적합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의 life cycle에 따라 감염이라는 과정으로 바이러스가 세포내에 침투한 후, 감싸고 있던 외피를 벗고 유전물질을 세포내로 방출하고 이를 템플릿(template)으로 사용해서 단백질(여기서는 항체나 면역증강물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자체가 마치 캡슐로 잘 제조된 화학약품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점은 바이러스 자체의 유전체 사이즈가 다른 미생물에 비해 작아서 유전자 조작이 용이한 장점도 있기에, 유전자 전달체인 벡터(vector)로 바이러스의 개발 속도가 빠른 것이다.
이와 같이 벡터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로는 아데노바이러스(AdV), adeno-associated virus (AAV), Herpes simplex virus(HSV), 렌티바이러스(lentivirus), 백시니아바이러스(VACV)등이 있다. 이렇게 유전자 전달을 목적으로 활용되는 벡터용 바이러스들은 대부분 세포내에서 자가 복제가 불가능하도록 제작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Transgene사의 TG4010은 폭스바이러스 벡터인 MVA (modified vaccinia virus Ankara)에 사이토카인 IL-2와 암의 항원 MUC-1을 발현하도록 엔지니어링 하여 폐암에서 임상 진행중이다. Oxford BioMedica사의 항암백신인 TroVax도 MVA에 암관련 항원 5T4 (약 90%의 대장암에 발현되는 항원) 유전자를 탑재해서 저 농도의 항암제 사이클로포스파미드 (cyclophosphamide)와 병용하여 임상 1/2상을 진행하고 있다. Immune Design사의 CMB305바이러스는 엔지니어링된 렌티바이러스를 벡터로 사용하여 NY-ESO-1(여러 고형암에서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암 항원) 유전자를 탑재하여 폐암, 난소암등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1b상을 진행 중이며 더 나아가 글로벌 빅파마인 Genentech의 면역관문억제제인 테센트릭과 병용으로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암용해(oncolytic virus), '암세포가 가진 증식력을 이용하다'
암백신으로 사용되는 또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로 암용해(oncolytic) 바이러스가 있다. 이 그룹의 바이러스는 유전자 전달 목적인 벡터로 사용되는 것 이외에도 암세포를 감염시켜서 직접적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키고 그럼으로 암세포의 항원을 노출시켜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암용해 바이러스는 선천적으로 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암세포에서만 선택적으로 증식이 가능하도록 엔지니어링 되어 암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암용해 바이러스로는 FDA승인을 완료한 흑색종 치료 목적인 헤르피스바이러스인 암젠의 '임리직'이 있다.
현재 임상진행중인 바이러스로는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 중인 신라젠의 펙사벡, 췌장암, 난소암등 여러 암종을 대상으로 하는 온코리틱 바이오텍의 레오리신(Reolysin), Viralytics사의 Coxackievirus인 카바택(Cavatak)과 DNAtrix사의 아데노바이러스인 DNX-2401등이 있다.
이 바이러스들은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살상시키고 이로 인해 세포내의 암항원들이 외부에 노출됨으로 면역세포들을 유도, 활성화시킴으로 복합적이면서 강력한 항암효과를 발휘하고 부작용이 미비하여 많은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암용해 바이러스는 또한 다른 항암제와의 병용으로서도 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속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암용해 바이러스인 임리직과 요즘 뜨거운 관심사인 면역관문억제제 (이 경우 BMS사의 여보이나 머크사의 키트루다)를 병용했을 때 각각의 면역관문억제제 단독치료에 비해서 2배 이상의 반응율을 보였다.
현재 면역관문억제제의 효능은 약 20-30%의 환자밖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시장의 돌풍을 몰고 온 빅파마들의 면역관문억제제에게 병용파트너로 항암바이러스가 그 역할을 놀랍게 해내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만한 일이다. 따라서 항암바이러스 단독요법으로 얻은 효과로 인한 기대와 더불어 병용파트너로 각광받고 활약함으로 항암바이러스의 입지가 더욱 견고해지리라 예상된다. 불과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만 알았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바이러스가 항암시장의 주요약물로 자리를 굳힐 일이 머지않은 듯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