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이 또 불거졌다. 최근 유유제약이 위장 설립한 판매대행 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의사들에게 사례비를 지급하다 덜미를 잡혔다. 이 사건으로 제약사 임원 4명과 병·의원 의사 및 종사자 29명이 형사입건됐다.
얼마 전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가 학술지나 의약전문지 등을 통해 좌담회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뒷돈을 건네는 ‘신종 리베이트’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내제약사들의 고질적인 불법 복제약(제네릭) 영업 관행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탈 행위로 넘어갈만한 일은 아닌 듯 하다.
유유제약은 판매대행 법인을 끼고 의사들에게 뒷돈을 건넸는데, 처방액의 일정 비율을 주는 방식이다. 그동안 제약사들이 가장 많이 구사했던 고전적인 리베이트 수법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처방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처방 이후에 대가를 지급하는 '후불제' 방식과 처방이 시작되기 전 미리 현금 등을 제공하는 '선지원' 방식이다.
후불제는 주로 한 달 단위로 의사가 처방한 내역을 토대로 제약사가 사전에 약속된 비율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현금이나 상품권, 물품 등이 지원됐는데 최근에는 현금이 선호되는 추세다.
제약사와 의사는 비공식 문서를 통해 '매달 얼마 이상을 처방할 경우 몇%를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번에 유유제약은 처방금액의 15~20%를 사례비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지원 방식의 경우 의사가 일정 기간의 처방금액을 약속하면 제약사가 미리 현금이나 물품을 지원해준다.
예를 들어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의약품을 매달 10만원, 1년에 120만원어치 처방하기로 약속하고 그 대가로 20%의 리베이트를 주겠다고 계약하면 24만원(2만원x12개월)을 제약사가 의사에게 미리 제공한다.
노바티스와 같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는 자사 제품의 학술 정보를 알리면서 의사의 환심을 사는 학술행사를 빙자해 리베이트를 건네기도 한다.
그러나 제네릭 판촉을 위해서는 후불제나 선지원과 같은 현금 및 물품 지원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효능과 안전성이 똑같은 제네릭 제품의 경우 현금 및 물품 지원 이외에는 별다른 영업 전략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 시장에서는 처방 대가로 1만원만 제공해도 불법 리베이트로 간주된다. 최근 강화된 리베이트 규제로 의료진과 제약사들의 인식도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제네릭 영업에서 현금 지원은 절대 근절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국내제약사 영업본부장의 항변이다. “제네릭은 성분만 얘기하면 의사들이 무슨 약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진료실에서 약 설명을 하면 나가라고 합니다. 똑같은 약이 시장에 수십개 널려 있는데 어떻게 약 얘기를 합니까. 그렇다면 의사에게 뭔가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돈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허가와 약가제도 변화로 제네릭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 제네릭 개수가 50개 이상 등재된 성분은 63개에 달한다. 현재 오리지널 의약품 63개 시장에 최소 3150개의 제네릭이 경쟁한다는 의미다. 4년 전에는 제네릭이 50개 이상 등재된 시장은 20개에 그쳤다.
리베이트 규제는 크게 강화됐는데도 제네릭 시장에 뛰어드는 플레이어는 더욱 많아진 것이다. 환자들이 복용하는 의약품의 양은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제약사들은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하는 생태계가 조성된 셈이다.
제네릭 업체들은 “리베이트라도 주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아야한다”는 이유로 ‘생계형 리베이트’가 끊을 수 없는 처지다. 정부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해지고, 처벌 규정도 강화됐는데도 리베이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영업사원이 의사에게 뒷돈을 건넬 때 계약서나 영수증과 같은 문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내부고발이 없으면 좀처럼 리베이트가 적발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깔려있다.
제네릭 영업의 경우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판매대행 업체라는 신종 리베이트 도구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제약사가 자체 영업조직으로 영업을 하지 않고 별도의 법인에 일정 수수료를 받고 영업과 유통을 맡기는 방식이다. 만약 불법 유통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꼬리자르기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노림수도 깔려 있는 듯 하다.
물론 국민 건강과 연관된 영역에 검은 돈이 개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상황에서 제약사들의 자율적인 의지만으로 투명한 영업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부도 처벌 규정만 강화하면 될 일이 아니다. 리베이트 규제만 점차 강화될 뿐이다. 최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불법 리베이트 제공자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을 징역 2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에서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로 처벌 기간이 늘린 약사법 개정안과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제약 영업 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약가제도가 대표적이다.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모든 제네릭은 시장 진입 시기와 상관없이 최고가(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53.55%)를 받을 수 있다.
애초에 제약사들의 자발적인 가격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동일 가격을 부여했지만 소용 없었다. 제약사들은 약가를 절반 깎고 경쟁하는 것보다는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절반만 팔아도 된다는 전략이 더 실효가 있다고 판단한다.
건전한 생태계 조성과 약품비 절감을 위해 구조적인 개선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지난 2011년 보건당국은 중장기적으로 참조가격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참조가격제는 동일 성분의 의약품은 최저가 또는 평균가 이상의 약을 처방하면 일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제도다. 쉽게 얘기하면 저렴한 의약품만 보험을 적용하기 때문에 비싼 제네릭은 퇴출되는 구조다.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시장 경쟁도 지금보다 완화될 수 있다. 약품비 절감에도 효과적인 제도로 평가된다.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상당수 유럽국가들도 가격 통제를 위해 참조가격제를 운영 중이다.
의사에게 집중된 처방권을 분산시키기 위해 성분명 처방도 논의해볼만한 제도다. 수많은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의사 환심을 사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을 펼치면서 불법 리베이트도 범람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규제만으로 부정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제도를 바꿔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책임감 있는 정부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