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최근 대웅제약이 ‘진격의 대웅제약 이지엔6, 진통제시장 지형도 확 바꿨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웅제약은 “이지엔6가 2016년 44.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전년대비 35% 성장했다. 특히 이지엔6는 전체 진통제 시장에서도 ‘타이레놀'과 '게보린'에 이어 3위를 차지해 ‘펜잘’을 앞지르는 판도변화까지 이루어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 보도자료를 인용해 많은 언론사에서 ‘이지엔6가 진통제 시장의 지형을 바꿨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지엔6는 해열·진통제로 승인받은 일반의약품으로 ‘이지엔6애니’, ‘이지엔6프로’, ‘이지엔6이브’, ‘이지엔6스트롱’ 등이 있다. 각각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등 구성 성분이 다르다.
자사 제품이 전체 시장 판도까지 바꿀 정도의 성장을 했다면 충분히 자랑할만하다. 기존 시장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한 걸출한 제품마저 제쳤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웅제약 보도자료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 발견된다.
대웅제약이 인용한 IMS헬스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지엔6애니가 18억4879만원, 이지엔6프로가 13억7108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지엔6이브와 이지엔6스트롱은 각각 10억2402만원, 1억8285만원어치 팔렸다. 4개 제품의 매출은 총 44억2673만원이다.
대웅제약이 제시한 ‘이지엔6가 2016년 44.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라는 정보는 이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펜잘을 앞지르는 판도변화’라는 문구에서는 오류가 발견된다. 종근당이 판매 중인 펜잘은 ‘펜잘큐’, ‘펜잘이알’, ‘펜잘레이디’, ‘펜잘나이트’ 등이 있다. 펜잘레이디는 ‘이부프로펜’이 주 성분이며 나머지 3개 제품은 ‘아세트아미노펜’을 기반으로 한다.
IMS헬스에 따르면 펜잘큐의 지난해 매출은 42억9095만원이며 펜잘이알은 20억3172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4종의 펜잘 매출 합계는 64억115만원이다. 이지엔6 4종보다 44.6% 많은 규모다. ‘이지엔6가 펜잘을 앞질렀다’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른 잘못된 정보라는 얘기다.
대웅제약 측은 “펜잘큐, 펜잘레이디, 펜잘나이트 등 3종의 매출과 이지엔6 4종의 매출을 비교했다”라면서 “펜잘이알은 조제용으로만 판매되기 때문에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라고 설명했다.
펜잘이알은 일반의약품이지만 주로 조제용으로 판매된다는 사실을 감안해 매출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20억원어치 팔린 펜잘이알을 제외한 펜잘 3종의 매출은 43억6944만원으로 이지엔6 4종보다 조금 부족하다.
대웅제약의 설명대로라면 ‘일반의약품 진통제 중 조제용 제품을 제외한 제품에서 이지엔6가 펜잘을 넘어섰다’라는 표현이 사실에 근접해보인다. 그렇지만 대웅제약은 자료 산정의 기준에 대한 설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웅제약의 보도자료에는 누가 봐도 이지엔6가 펜잘보다 많이 팔렸다고 이해할 뿐 처방실적을 제외한 실적이라고 추정할만한 내용은 없다.
‘이지엔6가 진통제 시장에서 타이레놀, 게보린에 이어 3위에 올랐다’는 문구도 과장된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IMS헬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 중인 진통제 중 쎄레브렉스(345억원), 게보린(142억원), 타이레놀이알(133억원), 타이레놀(123억원), 비모보(109억원), 노스판(101억원), 울트라셋이알(106억원) 등 이지엔6보다 높은 순위에 위치한 제품은 최소 10개는 넘는다.
이 정보 역시 “처방실적을 제외한 약국 판매 일반의약품 기준으로 순위를 책정했다”는게 대웅제약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대웅제약은 순위 책정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과연 시장 점유율을 계산할 때 처방실적과 약국판매실적을 구분해서 계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의사의 처방에 의해 팔리는 매출은 무시해도 된다는 의도일까. 이지엔6도 병의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지만 처방은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게 대웅제약 측 설명이다.
엄격하게 따지면 이지엔6 4종은 모두 구성 성분이 다른 제품일 뿐 ‘이지엔6’라는 브랜드로 묶인 제품군이다. ‘이지엔6애니’는 ‘이부프로펜’ 성분 진통제 중에서, ‘이지엔6프로’는 ‘덱시부프로펜’ 성분 제품 중에서 각각 점유율을 따져보는 것이 시장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게 마케팅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국내 진통제 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44억원어치 팔린 제품이 ‘시장 판도의 지형을 확 바꿨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헷갈린다.
대웅제약은 자료의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자사에 유리한 정보만 인용해 소비자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의약품은 잘못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제약사들은 정보 전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의약품 광고에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제품을 비방하거나 비방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광고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유다. 소비자가 확인이 불가능한 자료를 전달할 때에는 자료의 근거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 게 기업의 책임이다. 의약품은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된 안전성과 효능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더구나 경쟁업체들이 연이어 대형 신약 기술수출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연 매출 8000억원 규모 제약사가 겨우 44억원의 매출로 여론전을 펼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동안 쌓아온 '곰처럼 우직한' 기업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