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세계에서 가장 정밀도 높은 진단기기는 로슈(Roche)의 전기화학 발광기술 (ECL, Electrochemiluminescense) 기반 '코바스(Cobas)'시리즈다. 한대에 6억~7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코바스6000은 2014년 1만대 이상의 기기가 전세계 병원에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다. 체외진단 세계1위인 로슈의 2014년 진단부문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액수다. 그런데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국내 바이오텍이 있다.
언뜻보면 ECL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이오메트로의 ECL기술은 로슈 것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로슈가 양극 ECL(Anodic-ECL) 기술이라면 바이오메트로는 '음극 ECL(Cathodic-ECL) 기술’이라는 것. 이를 기반으로 바이오메트로의 C-ECL기술은 “같은 정확성을 가지면서, 소형화가 가능하고 응용가능성이 더 높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로슈의 코바스는 병원에 설치된 대형기기인 반면, 바이오메트로의 현장진단기기는 환자의 피한방울이 들어가는 카세트와 이를 읽는 리더로 구성된 소형기기다.
강충경 랩마스터 연구소장(CTO)은 “리더기 한대의 생산단가는 150만원이고, 카세트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실리콘칩은 1000~2000원 선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라며 “코바스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45분 정도가 소요된다면, 우리 제품은 단 5분이면 진단결과를 얻는다”고 했다. “게다가 실리콘 칩에 들어가는 항체 종류를 늘리면 한번에 다중검사도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메트로는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소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C-ECL을 기반으로 혈액 한방울로 수십가지 질병을 5분 이내에 측정가능한 미래형 체외진단 플랫폼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회사는 '체외진단기술의 패러다임 전환과 의과학적 응용'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현장진단검사, 그리고 ECL기술을 적용한 로슈 코바스의 경쟁력은?
전기화학 발광기술(ECL)은 크게 양극, 음극 ECL(C-ECL)로 분류된다. 그러면, ECL은 어떤 기술일까? 시장성은? ECL은 현장진단을 하는데 최적화된 기술로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바이오메트로 기술의 경쟁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장진단의 개념과 ECL 분야의 최대 강자인 로슈의 코바스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자.
우리 몸의 체액과 검사기의 조합으로 몸의 상태에 대해 진단하는 것을 체외진단(혹은 현장진단)이라고 하고, 전문용어로는 IVD(In Vitro Diagnostics)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는 임신진단키트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체액에서 특정 바이오마커를 20~30분 내에 검출해 질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개념이다. 메르스 감염여부를 알아보는 진단키트도 있다.
ECL기술이 적용된 진단기기는 면역화학진단 및 현장검사(POCT, Point of care test)와는 다른 개념으로 POCT가 작은기기로 20~30분 내에 여러 개 질환에 대한 감염여부를 검출한다면 코바스는 병원에 설치된 큰 기계로 병원에 환자를 대상으로 질환을 검사한다.
의사는 코바스로 환자에서 심장질환, 암질환, 폐질환, 당뇨병, 신장질환 등을 진단한다. ECL기술의 작용원리상 전기장 형성을 위한 대형 전자석이 필요하기에, 한대 가격이 6억~7억원으로 매우 고가다. 그런데도 전세계 병원에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정확도' 덕분이다.
강 대표는 “로슈의 코바스는 ECL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장 정확한 체외진단기기로 현존하는 기술 중 가장 정밀도가 높다”라며 “ECL기기가 속하는 현장진단기기는 전체 의료기기의 2%에 불과하지만, 실제 병원에서 의사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60% 이상 반영된다”고 언급했다.
체외진단 기기의 총 시장규모는 50조원. 지난해 에보트(Abbot)가 체외진단기업인 엘리어(Alere)를 6.4조 원(58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로슈도 차세대 진단기술을 발굴하기 위해 활발하게 기술사냥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시장선점경쟁이 활발한 체외진단시장에서, 바이오메트의 진단기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다. 바이오메트로의 현장진단기기는 환자의 피 한방울(3.5ul)을 카세트에 떨어뜨리고, 이를 리더에 꽂아 바이오마커를 측정하는 형식으로 5분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용화되면 코바스와 동등한 정확성을 가지면서 다중진단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정밀도가 떨어지는 POCT와 같이 소형화가 가능하다. 추가적으로 전문가의 작업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 간단하는 장점도 있다. 즉, 코바스와 POCT 진단기기의 장점을 합쳐놓은 형태라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하는 C-ECL기술에 대해 살펴보자.
◇C-ECL이 뭐길래…“전기, 화학 융합기술”
강 CTO의 C-ECL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면역진단을 기초로 한 실리콘 기반 기술이라는 설명. 그는 "환자의 피 한방울이 카세트에 떨어지면 항원이 발광물질이 달린 항체에 결합한다. 항원, 항체가 막을 통과하고 나면 실리콘 칩에 부착된 또 다른 항체에 결합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바이오마커에 해당하는 항원을 중심에 두고 항체가 샌드위치와 같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후 실리콘에 약한 전기를 흘려주면 전자가 방출되면서 항체에 붙어있는 물질에 전자를 전달해주면서 발광하게 되고 이에 따른 결과치를 측정하는 원리다. 즉, 항원-항체 결합으로 발생하는 전자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로슈의 A-ECL은 전자를 끌어당겨야 하기에 전자석과 같은 고가의 부품과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지만, 바이오메트로는 방출되는 전자에너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소형화가 가능하며, 간단하고 응용범위도 높다고 설명이다.
강 CTO는 “진단을 위한 시약이나 전처리가 따로 필요 없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측정하는 시간도 단 3초다”고 강조했다. 또한, C-ECL기술로 다중진단이 가능하다. 병원에서 질환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여러 개의 바이오마커를 사용한다. 바이오메트로는 실리콘 판 위에 구역을 나눠 항체를 부착하면 되기에, 한번의 스크리닝으로 여러개의 바이오마커 측정이 가능하다.
바이오메트로의 진단기기는 로슈의 코바스와 동일한 초 민감도(ultra-sensitive)를 가지며, 넓은 측정범위를 가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POCT와 비교하면 최대 천만배가 넘는 정밀도를 가진다고 전했다. C-ECL 관련 기술은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가에서 특허등록을 완료했다. 강 CTO는 “현재까지는 항체 단백질을 이용하지만, DNA가 이중가닥을 이루며 결합하는 원리(hybridization)를 통해 유전물질까지 검출가능다”고 했다.
◇랩마스터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체외진단 상업화에 도전
바이오메트로는 2015년 C-ECL기술을 보유한 핀란드 투르쿠 소재 랩마스터(Labmaster)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반면, 랩마스터는 바이오메트로의 지분 33%를 갖고 있다. 랩마스터의 핵심기술인 C-ECL기술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기술로, 강 CTO와 오랜 기간 학문적 교류를 통해 두 회사가 협력하게 됐다.
강길남 바이오메트로 대표는 “C-ECL기술이 완성되면서, 이를 상업화하기 위해 바이오메트로를 설립했다”라며 “기본적으로 바이오메트로는 제조∙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랩마스터는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협력모델이다”라고 했다. “랩마스터가 바이오메트로의 연구소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성모병원에서도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해 특허기술을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토니 월루스(Tony Warhools) 랩마스터 대표는 “세계에서 유일한 C-ECL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10개 정도 보유하고 있으며, 의사의 니즈가 높은 질병에 대한 현장체외진단에 주력하고 있다”라며 “체외진단시장은 연간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특히 중국시장에서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랩마스터는 유럽시장을, 바이오메트로는 그외 시장을 공략한다. 랩마스터의 ECL 리더인 '루시아(Lucia)'가 올해 가을 유럽CE 판매등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자체기술의 응용가능성을 보여주는 첫번째 제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패혈증, 심혈관계 질환을 먼저 공략…”기존 바이오마커를 우수한 기술에 적용”
그러면 어떤 질환에 기술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현재 병원에서 현장진단용으로 쓰이는 바이오마커는 약 350가지다. 바이오메트로는 C-ECL을 적용한 소형화 기기에 기존 바이오마커를 적용해 시장해 침투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현재까지는 측정방법, 측정기기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질병진단 마커와 다중진단 등에 대해 특허권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메트로가 먼저 공략하는 질환은 패혈증(Sepsis)이다. 패혈증 진단키트의 공동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제갈동욱 인천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생명에 지장을 주는 장기부전의 원인이 신체 면역부조화일 경우 패혈증이라고 정의하며, 발병원인이 매우 다양한다”라며 “패혈증에 걸리면 일단 사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사망률이 증가해, 빠른 진단이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C-ECL기술은 심혈관계 질환에도 적용된다. 채효진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호소시스테인(Homocyctein)과 심혈관질환의 연관성은 크기에, 심혈관질환의 위험도를 판단하기 위해 이 바이오마커를 측정한다”고 언급했다.
바이오메트로는 감염질환 체외진단 연구∙개발도 염두하고 있으며, 이외 식품위생, 환경, 동물 등까지 확장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실리콘 칩을 기반으로 하기에 향후 IT, BT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집에서 휴대폰에 진단기기를 꽂아 환자의 질환정보를 측정해 병원에 보내는 접근방법도 가능하며,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