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 2012년 근화제약을 인수하며 국내 시장에 진출한 알보젠코리아가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한다. 지난 2015년엔 드림파마를 추가로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거래소에서 자취를 감춘다. 알보젠 측은 ‘경영활동의 유연성과 의사결정의 신속함 확보’를 자진 상폐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업계에서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D)이나 자산 매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알보젠코리아는 지난 7일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자사주 172만4130주를 500억원에 취득키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알보젠코리아가 투자자들로부터 1주당 2만9000원에 주식을 사들이고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공개매수 주식 수는 발행 주식의 14.5%에 해당한다. 알보젠은 미국 복제약(제네릭) 업체로 지난 2012년 근화제약을 인수하며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알보젠코리아의 최대주주인 알보젠코리아홀딩스는 전체 발행주식 1185만7922주 중 82.47%(1150만3700주)를 보유 중이다.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172만4130주를 확보하면 지분율이 97.01%로 상승, 자진 상장폐지 요건(95%)을 충족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 자진 상장폐지에는 큰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알보젠코리아는 보유자금을 활용해 공개매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알보젠코리아의 상장폐지 절차가 완료되면 지난 2012년 10월 근화제약을 인수한지 4년여만에 거래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옛 근화제약 입장에선 지난 1973년 11월 거래소 상장 이후 약 44년 만에 거래소에서 퇴장하는 셈이다. 지난 2014년 말 드림파마를 1914억원에 인수한지 2년여만의 대변화다.
많은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증권시장 상장에 적잖은 공을 들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알보젠코리아의 자진 상장폐지 추진은 이례적인 행보다. 통상 주식시장에 풀린 유통주식이 많지 않거나 주식의 가격이 낮아 자금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한다.
알보젠코리아 측은 “회사의 상장폐지를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도모하고 비상장 상태에서 경영활동의 유연성을 제고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알보젠코리아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보유자금으로 유통 주식을 인수하고, 상장폐지하면 최대주주의 의지대로 공격적인 M&A와 같은 과감한 경영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의도로 읽힌다. 알보젠코리아의 실적 흐름도 좋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1812억원으로 전년대비 9.3% 늘었고, 영업이익은 307억원으로 48.9%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17.0%에 이른다.
알보젠코리아 측은 “이번 공개매수는 성장성 정체 및 주식의 거래량 부진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환금성 제고의 목적도 가지고 있다”면서 “공개매수가격 결정시 최근 시가대비 일정한 프리미엄을 가산하여 소액주주의 이익에 기여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알보젠이 국내 시장 진출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은 상황에서 상장 폐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제기하기도 한다. 알보젠코리아가 근화제약 인수 이후 본사와 한국법인 거래 과정에서 구설수에 올랐던 기억 때문이다.
지난 2014년 1월 근화제약은 알보젠의 계열사 알보젠파인브룩으로부터 제네릭 2개 품목의 판권을 4700만달러(약 500억원)에 인수키로 결정했다. 미국 허가가 진행 중인 아편중독 치료제 'Bup/Nal 필름'과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ALV-21'에 대한 지적재산권·판매권 등 모든 권한을 넘겨받는 조건이다.
당시 시장 가치가 불확실한 제품을 1년 매출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인수하는 것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2달 뒤 정기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만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쉐도우보팅을 진행한 결과 2개 품목의 인수가 무산됐다. 이번 상장폐지 추진에 대해 업계에서 의혹의 눈길을 갖는 이유다.
알보젠은 근화제약과 드림파마를 인수하면서 글로벌제약사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그동안의 행보는 글로벌 시장 진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았다.
알보젠은 지난 2012년 10월 약 300억원을 투입해 옛 근화제약을 인수했다. 당시 로버트 웨스만 알보젠 회장은 "한국시장 진출을 통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알보젠이 진출하는데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한화케미칼로부터 드림파마를 인수하면서 알보젠 측은 “드림파마는 알보젠 그룹의 편입돼 글로벌 제약회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당시 알보젠은 안국약품, JW중외제약, 광동제약 등 국내제약사들과의 인수 경쟁을 펼쳤고, 당초 예상보다 높은 가격으로 드림파마를 인수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도 옛 근화제약과 드림파마가 해외 20여개국에 거점을 둔 알보젠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복제약(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의 해외 진출이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외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알보젠코리아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1812억원 중 수출 실적은 전무했다. 알보젠코리아는 2014년 1억8099만원, 2015년 4775만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알보젠코리아는 지난 2년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총 16건(2015년 10건, 2016년 6건)의 임상시험 승인 계획을 받았는데 주로 기존에 드림파마가 개발 중이던 복합신약의 후속 임상시험에 착수한 것이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용은 3.7%에 불과하다. 알보젠코리아는 옛 근화제약이 드림파마를 흡수합병하면서 2015년 6월 출범했다.
알보젠은 드림파마를 1914억원에 인수했는데, 이때 약 600억원을 근화제약의 자금과 차입금을 활용해 조달했다. 알보젠코리아는 지난해 7월에는 의약품 공급내역을 지연 보고했다는 이유로 130개 품목이 10일간 판매업무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제약사들은 공격적인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사례가 많다. 알보젠도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상장폐지 이후 공장 매각이나 본사와의 이례적 계약 등을 통해 투자비 회수를 시도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