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투자자들은 개발 중인 신약의 타깃이 무엇인지 관심없습니다. 투자 대비 수익 성과가 중요합니다."(데이빗 플로레스 바이오센트리 회장)
“회사를 설립할 때 구조화된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자금 조달 일정과 규모 계획을 미리 설계해야 합니다.”(이종현 시너지아이비투자 팀장)
“창업자가 보유한 네트워크와 투자자가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빠른 시간에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 2017’ 보건의료투자세미나에서는 국내외 바이오·제약 투자 전문가들이 국내 바이오텍을 대상으로 투자자 관점에서 본 효과적인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해 다양한 제언을 쏟아냈다.
미국 바이오 전문지 바이오센트리(BioCentury)의 데이빗 플로레스(David Flores) 회장은 바이오텍 설립 초기 기업인들이 주로 노출하는 위험 사례를 소개했다.
플로레스 회장은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어떤 치료제로 발전할 수 있을지 염두해야 한다. 좋은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잠재성만 가지고 성공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단지 참신한 잠재력에 의존해 막연하게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도 향후 시장성을 예측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발 중인 신약이 시장에서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도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한다. 플로레스 회장은 “투자자들은 신약 타깃이 무엇인지 관심없다. 투자 대비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 단계에서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것과 실제 기회는 동일하지 않다. 차별화된 타깃이 꼭 좋은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부적절한 질병 모델이나 상업적 분석을 사용하거나 실험에서 잘못된 비교 대상을 사용하는 것도 실패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도 잠재적인 안전성 이슈도 점검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플로레스 회장은 기술력보다 시장 경쟁력에 대한 오판으로 실패사례가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흔히 시장경쟁력과 같이 기술과 무관한 위험요소로 인해 실패하는 사례도 많다”면서 “개발 단계에서 이미 개발 중이거나 출시된 제품에 비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종현 시너지아이비투자 팀장은 회사 설립 단계부터 구조화된 투자 전략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팀장은 “바이오제약 창업 분야는 다른 산업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많아 실패했을 때 재기하기 힘들고 초기 자금 모집도 힘들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안정적으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보장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창업 이후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긴급하게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설립 단계부터 중장기 자금 조달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시너지아이비투자가 국내 바이오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이상은 임상시험 단계에도 진입못한 전임상시험 단계로 조사됐고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받는 시리즈A 투자를 받기까지 자금 압박감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자금의 70% 가량은 창업자들이 자금을 투자했고, 이후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벤터캐피탈을 통해 어렵게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팀장은 “회사 설립 단계에서 구조화된 자금 조달 전략이 없으면 앞으로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할 때 전임상시험 데이터가 도출되면 시리즈A를 투자받고 임상1상 진행 중단계에서는 시리즈A 2차 투자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임상1상시험이 끝나면 시리즈B 추가 투자를 받는 방식으로 단계별 자금 조달 전략을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복제약(제네릭)이나 의료기기 업체도 개발 진전상황에 따른 맞춤형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자금 조달 과정에서 지분율 방어도 중요 요소다. “시리즈A 투자를 받기 전까지 창업자가 70~80%의 지분율을 보유하는 것이 좋다”고 이 팀장은 조언했다.
통상 시리즈A 투자를 받기 전까지의 단계를 자금 압박감을 많이 받는 ‘죽음의 계곡’로 불리는데, 이때 정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중기청이나 보건복지부의 R&D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면 지분율 방어와 함께 ‘죽음의 계곡’ 극복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팀장은 투자자 관점에서 기술 진보성, 시장 성장성, 소규모 창업 가능성 등 3개의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창업을 고민 중일 때에는 진보성, 성장성, 소규모 창업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 추후 자금 조달이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통상 기술을 보유한 교수들이 CEO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업이나 임상시험 경험이 있는 전문경영인이 CEO나 CFO를 경험하는 것도 효과적인 경영 전략이 될 수 있다.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투자자들과 창업자와의 네트워크 시너지를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투자자들이 벤처에 투자한 이후 산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 대상 기업을 도와주지 않으면 원하는 시점에서 원하는 수익률을 낼 수 없다. 투자 이후에도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투자자는 투자비 회수를 목적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창업자들은 투자 회수 기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투자자가 보는 관점과 과학자가 판단하는 전략을 공유하면 자금 조달 뿐만 아니라 개발 중인 신약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 대표는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다. 창업자가 보유한 네트워크와 투자자가 가진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국적제약사가 개발하다 포기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져다 성공사례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향후 국내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금까지는 바이오벤처 초기 단계에서 투자해서 수익을 많이 낸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향후 2,3년 이후 예상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는 성공사례가 등장하면, 민간영역에서 다양한 자금이 유입돼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전망했다.
오성수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상무는 대규모 자금 조달의 경우 여러 기관으로부터 공동으로 투자를 받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해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레고켐바이오에 100억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다른 기관과 함께 총 350억원이 투자됐다. 레고캠바이오는 여러 기관으로부터 350억원을 투자받아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투입했고, 미국 전문가들과 항생제 신약 개발을 위해 설립한 조인트벤처 GEOM으로부터 5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오 상무는 투자자들의 투자회수 방식이 기업들의 IPO에 치우쳐있다는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우려했다.
오 상무는 “투자자들의 투자회수 방식이 다양화하려면 기업들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큰 기업들은 작은 기업들을 인수할때 많은 비용을 투입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초창기 단계 기업들을 연계해 기업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