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유한양행이 올해 바이오벤처와 의료기기업체 2곳에 4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011년부터 사업과 관련 업체 17곳에 1556억원을 투자하며 벤처캐피털(VC) 못지 않은 투자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사업영역 확대와 연구개발(R&D) 시너지를 목표로 투자 대상도 바이오벤처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위생용품 업체 등으로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17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유한양행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3월 바이오벤처 바이오포아에 20억1600만원을 투자해 지분 6.13%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포아는 동물 백신을 개발 중인 바이오업체다. 2007년 설립 이후 동물 질병에 차별화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유한양행 측은 “동물의약품 백신은 인체의약품보다 개발기간이 짧고 상대적으로 개발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향후 사업영역 확대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유한양행은 지난 3월 임플란트 제조 업체 워랜텍을 인수했다. 당시 유한양행은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총 20억2500만원을 투자해 35.1%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들어 40억원을 투자해 동물 백신, 의료기기 등으로 사업 영역 확대를 시도하는 셈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몇 년간 벤처캐피탈 못지 않은 왕성한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 2011년 엔솔테크(현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 45억원을 지분 투자한 것을 비롯해 한올바이오파마, 테라젠이텍스, 엠지, 바이오니아, 코스온, 제넥신 등 바이오업체 및 화장품업체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파멥신(30억원), 소렌토(121억원), 네오이뮨테크(35억원), 제노스코(50억원), 이뮨온시아(118억원), 씨앤씨(25억원) 등 6곳에 379억원을 투자했다. 평균 두 달에 한번 63억원을 투자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투자 대상 업체들의 사업 영역도 다양하다. 파멥신은 항체신약을 개발중이고,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바이오벤처 소렌토도 항체 신약 개발 업체다. 유한양행은 소렌토와 공동으로 합작사 이뮨온시아를 설립하고 면역항암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네오이뮨테크는 국내 바이오기업 제넥신의 미국지역 파트너사로 유한양행은 2015년 제넥신으로부터 면역증강단백질 기술을 이전받은 바 있다. 유한양행은 2015년 제넥신에 200억원을 투자했는데 향후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네오이뮨테크 투자도 결정했다.
오스코텍의 자회사인 제노스코는 표적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지난해 5월 유한양행과 차세대 폐암치료제에 대한 공동 연구에 착수했고, 간암치료제를 유한양행에 기술 이전했다. 유한양행이 지난해 말 25억원을 투자해 2대주주(35.0%)로 올라선 씨.앤.씨는 치약ㆍ칫솔 등 구강위생용품을 생산·판매를 담당하는 기업이다.
유한양행은 2011년 조선방송(10억원), JBC(15억원), 체널A(10억원), 매일방송(10억원) 등 종합편성채널에 45억원을 투자한 것을 제외하면 2011년 이후 사업 관련 타 법인 17곳에 총 1556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 1건당 92억원을 투입한 셈이다.
풍부한 자금을 활용해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외부 R&D 파이프라인을 확충하려는 노림수로 분석된다. 지난 3월말 기준 유한양행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570억원으로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집중된 투자가 결실로 이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유한양행은 엔솔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퇴행성디스크치료제 후보물질을 도입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다 지난해 10월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임상을 중단했다.
유한양행이 2016년 7월 오스코텍으로부터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신약후보물질 'YH25448'의 기술을 이전받고 지난해 지난 7월 중국제약사 뤄신과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계약금도 받지 못하고 계약은 해지됐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2년 한올바이오파마에 295억원의 지분 투자를 진행하면서 R&D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2015년 대웅제약이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하면서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유한양행은 당초 보유했던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374만4500주 중 73.2%(274만4500주)를 처분했고 현재 100만주(1.9%)만 보유 중이다. 주식 처분으로 투자금보다 140억원 많은 435억원을 회수했다는 점이 위안이다.
테라젠이텍스와 소렌토 투자의 경우 주가 하락 등의 요인으로 지난 3월말 기준 투자금액 대비 장부가액은 각각 41.4%, 34.2%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유한양행이 장기적 안목으로 이끌어야 할 오너가 없는 탓에 대규모 인수·합병(M&A)보다는 소규모 투자만 지속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이후 사업 관련 투자 17건 중 9건은 투자금액이 50억원 미만이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15.4%)으로 지난 1969년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가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평사원 출신에서 대표를 선정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주요 투자는 각 부서별 검토를 거쳐 이사회 협의 등을 통해 결정한다"면서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외부 자원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