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조정민 기자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도 적고 마음에 드는 사람도 적단다. 바이오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갈만한 회사가 없다고 한다. 어렵게 문을 두드렸지만 실망만 하고 돌아왔단다. 취업준비생들의 반박이다. 이 간극을 메워야 바이오산업 인력난 해소의 길이 열린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국내 바이오관련 학과에 재학 혹은 졸업한 취업준비생(석박사 이상) 10여명을 만나 그들의 입장에서 바이오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를 들어봤다. 취업준비생의 시각에서 바이오산업 인력난을 해결할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박사학위 취득 후 취업 준비 중인 김 모(32)씨. 최근 지인의 소개로 한 바이오텍의 문을 두드렸다. 서류 심사와 3차에 이르는 면접을 치룬 끝에 합격통보를 받았지만 그는 결국 취업을 포기했다. “업계에서 박사학위 소지자가 얼마정도 받는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다”는 그의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는 연봉때문이었다.
“소개해준 지인은 첫 취업에 그렇게 눈이 높아서 어떻게 하냐고 타박했지만 저는 나름 공부를 오래했고 학위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 측이 제시한 연봉과 태도를 보니 자존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바이오스펙테이터가 만난 석·박사 취업준비생들 중 상당수는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한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만 보고 현재의 열악한 상황을 그대로 감내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박 모(34)씨는 "적게는 2년부터 많게는 거진 10년까지 남보다 더 오래 공부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심리는 당연한 것 아닐까"라며 "바이오텍이 요구하는 스펙은 자세한데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석사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인 손 모(27)씨는 “바이오텍이 주로 위치하고 있는 송도, 판교, 광교는 집값도 비싸다. 취업해서 전세 못 구하면 월세로 살아야 되는데, 최소 50만원의 월세에 그동안 학자금 대출금에 통신비, 교통비 등 내고 나면 적금은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비슷한 연봉을 제시하기 어려운 바이오 기업들은 이를 상쇄할 스톡옵션이나 유연근무제 등의 복지제도, 수평적인 기업문화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이러한 정책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취업 이후의 환경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석사학위 취득 후 판교의 바이오텍에 취직했던 장 모(26)씨는 2개월만에 그만두고 다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2개월간 주말 출근을 안 한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중에도 실험이 급해 야근이 잦았던 그는 주말에도 나와 일해야 하는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어려운 취업 준비생의 길로 돌아왔다며 “똑같이 돈을 조금 받는다면 정부 산하 연구원으로 가서 일에 매몰되지 않고 내 시간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박 모(28)씨는 취업과정에서 들었던 회사 측 얘기와 실제 근무하면서 겪었던 현실의 격차에 힘들었다고 전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던 회사는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주기 보다는 데이터 생산만 닦달했다. 그녀는 “그저 테크니션으로 반복적인 일만 시켜서 내가 기계가 된 것 같았다”면서 “회사에서 시키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만 하는 것에 지치고 회의감이 들어 퇴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생긴 공백 탓에 이미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은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 바이오텍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모(31)씨의 경우,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이외에도 퇴사한 직원이 맡고 있던 프로젝트까지 떠맡게 돼 죽을 맛이라고 전했다. 인력 충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과도하게 업무가 쌓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상황을 못 버티고 나가면 또 다른 사람에게 폭탄이 돌아가는 것.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존재했다. 취업준비생들은 벤처나 스타트업 취업을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이직 시 경력 인정에 대한 불안함을 꼽았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는 이직이 쉽지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에 이직하기 쉽지 않다는 전반적인 인식 때문에 도전에 주저하게 된다는 사람이 많았다. 유전학을 전공하고 취업 준비중인 석사 졸업생 심모(29)씨는 “이직할 때 불이익이 있을까 싶어 바이오텍에 가는 대신, 정부 산하 연구소의 비정규직을 알아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해 어떤 이들은 바이오 제약 산업계의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고 이직 등에서 차별이 없어져야, 청년들이 불안을 해소하고 ‘진정한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