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yang 객원기자
그가 이뤄낸 혁신보다 항암제의 혁신이 먼저였다면 어땠을까? ‘스티브 잡스’를 그리며 떠올리는 생각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잡스의 임종을 함께하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췌장암’에 대한 두려움을 자연스레 머리 속에 각인시켰다. 사실 신은 스티브잡스에게 그나마의 축복을 준 것이다. 그가 겪은 췌장암은 췌장암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케이스인, 상대적으로 훨씬 좋은 예후를 갖는 췌도세포 신경내분비암(Islet cell neuroendocrine tumor)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2003년부터 그의 죽음 2011년 말까지 세상을 바꾸는 데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실제 많은 췌장암 환자들은 그보다 악질인 적들과 싸우고 있다.
췌장암에 대해
대부분 췌장암 환자들이 겪고 있는 암의 구체적인 명칭은 췌관선암종(advanced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PDAC)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스티브잡스의 췌도세포 신경내분비암보다 훨씬 더 무서운 예후를 갖는다. 췌장암의 90% 이상에 해당하는 췌관선암종은 1년 생존률이 18%, 5년 생존율이 4%로, 발병이 곧 사망을 의미한다. 이미 전이가 진행된 췌관선암종은 이보다 훨씬 낮은 4.6개월의 중간생존기간(overall median survival)을 갖는다.
췌장암은 대부분 암이 매우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발견 당시 수술적 처치가 가능한 경우가 20% 이내이다. 또한 췌장암 환자 대부분(95% 이상)이 약물치료학적으로 해답이 없는, ‘undruggable’한 K-ras 변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췌장암 환자를 위해 적절히 쓰일 수 있는 약물도 부재하다.
수술적 처치가 가능하기 위한 조기진단에도 어려움이 많다. 후복막부에 위치해 다른 여러 장기들로 둘러 쌓여 있는 췌장 기관의 특징 때문에, 후진적인 기존의 진단법으로는 조기에 정확한 췌장암 진단이 매우 어렵다. 또한 체부나 미부에 생긴 췌장암은 조기에 ‘무증상’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도 환자들의 빠른 대처를 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췌장의 머리부분(두부)에 생긴 암은, 종양이 췌장 내 담도를 압박하여 조기에 황달증상이 나타나 그나마 조기진단이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근치적 절제술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고 수술을 진행하더라도 수술로 잡아내지 못한 미세 전이 때문에 1-2년 안에 대부분 재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