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이은아 기자
평생동안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며 온 몸에 혈액을 공급하고 정상기능을 하도록 원동력을 제공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우리 몸의 중심에 위치한 ‘심장’이다. 심장에는 혈액이 역류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도와주는 얇은 막 형태를 띤 심장판막이 존재한다. 이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기면 협착증, 폐쇄부전증, 역류증 등 각종 심장질환이 발생하고 종국에는 심장기능이 저하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심부전을 야기한다. 심장판막을 ‘생명의 문’이라 일컫는 이유다.
심장판막은 끊임없이 흐르는 혈액의 마찰과 압력으로 마모와 변성을 겪기 때문에 고령일수록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문제는 심장판막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약이 없다는데 있다. 현재 심장판막질환의 표준화된 치료법은 외과적으로 가슴을 절개하고 심장을 멈추는 개흉수술이다. 이 방법은 침습성이 매우 높고 수술 도중 사망 위험성도 있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 느끼는 부담감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도 있는 실정이다.
수술 없이 최소침습으로 심장판막을 치료하는 카테터 기반 의료기기 개발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회사가 있다. 2014년 설립된 부산대 기술지주 자회사이자 부산연구개발특구 연구소기업인 타우피엔유메디칼이 그 주인공이다.
양산 부산대학교병원에 위치한 타우피엔유메디칼 연구소에서 만난 창업자 김준홍 교수(순환기내과)는 “심장판막질환을 치료하는 서클라지(Cerclage) 기술은 카테터를 이용해 침습성이 낮고 수술 없이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 특히 심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판막질환, 심방세동, 부정맥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회사의 독자기술인 승모판막 서클라지 기술을 개발해 ‘First in human' 임상시험 진행과 의료기기 상용화를 추진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타우피엔유가 보유한 카테터 기반 승모판막 서클라지는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4등급 의료기기 탐색 임상시험 허가를 받아 국내에서 파일럿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 임상시험 결과는 심장학 분야 최고권위의 미국심장학회지인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JACC)와 세계심장시술학회에서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이 기술은 올해 발간 예정인 유럽 심혈관중재 교과서인 ‘Catheter-Based Cardiovascular Interventions’에 단독 챕터로 소개됐을 정도로 주목 받고 있다. 2018년에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주도로 미국 내 임상도 진행할 계획이다.
◇ 생명의 문 심장판막질환, 카테터 기반 최소침습 치료개발 필요
심부전은 심장의 구조나 기능이 저하돼 온몸에 혈액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질환으로 혈관질환, 판막질환, 부정맥 등이 주요 발생원인이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혈관질환은 관상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돼 협착이 일어나면서 혈류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다행히 스텐트 시술과 같은 관상동맥 중재시술(Cardiovascular Intervention)이 발달하면서 허혈성 심혈관 질환 치료는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문제는 심장의 구조가 변형돼 기능에 이상이 생긴 판막질환이다. 사람의 심장에는 심장판막 4개가 존재한다.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위치한 ‘승모판막’,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의 ‘대동맥판막’,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의 ‘삼첨판막’,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의 ‘폐동맥판막’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승모판막의 이상이 흔히 발견된다. 폐를 거쳐 산소가 풍부한 정맥혈은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이후 대동맥을 거쳐 전신으로 운반한다. 이때 승모판막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좌심실에서 좌심방으로 혈액이 역류되는 현상을 폐쇄부전증이라 하며 노화에 의한 승모판막 퇴행성 변화나 외부 요인으로 발생한다. 이 질환이 생기면 심장이 점점 커지면서 규칙적이고 정상적인 맥박을 유지하기 어려워 호흡장애, 부정맥, 심부전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한다.
김준홍 교수는 “승모판막(Mitral Valve)은 구조적으로 치료하기 너무 어렵다. 표준 치료법인 개흉수술은 침습성이 아주 높아 부담감이 크고, 현재까지 60가지 이상의 기술이 개발됐지만 실제 임상시험까지 진입한 기술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측에 위치한 삼첨판막(Tricuspid Valve) 수술법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개흉수술의 위험성이 다른 판막질환에 비해 훨씬 높아 독자 수술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른 판막 수술시 함께 진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첨판막질환 중 하나인 삼첨판막역류증은 우심실 수축시 판막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혈액이 우심실에서 우심방으로 역류하는 질환이다. 지금까지 삼첨판막에 대한 즉각적인 치료의 중요성이 다소 낮게 평가됐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증도 이상 삼첨판막역류증 환자의 경우 1년 사망률은 30%, 3년 경과시 사망률이 약 6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심장판막 질환은 높은 사망률을 보이지만 고침습성 수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면서 “타우피엔유의 서클라지 기술은 수술 없이 카테터를 이용해 최소침습 치료가 가능하다. 보다 많은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승모판막 서클라지 임상결과 “역류증, 심장사이즈, 심방세동 모두 개선”
타우피엔유의 승모판막 서클라지(Mitral Cerclage) 기술은 관상정맥동과 좌심실과 우심실사이에 있는 벽인 심실중격을 이용해 카테터로 심장의 특정 부위에 원형의 힘을 가해 판막을 조이도록 디자인된 치료법이다. 다시 말해, 가슴 상단을 뚫고 들어간 루프(Loop)가 상대정맥에서 좌심을 둘러싸고 있는 관상정맥동을 통해 좌심방·좌심실을 우회한 후, 심실중격 벽을 뚫고 삼첨판막을 지나 상대정맥에서 다시 합체 하는 구조다.
서클라지 기술은 김 교수가 NIH에서 연수 당시 고안한 것으로 유니크한 디자인을 인정받아 미국에서 방법 특허를 취득했다. 승모판막 서클라지 기본개념은 2009년 미국심장학회지인 JACC 저널에 발표하며 이를 입증했다.
김 교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서클라지 기술은 응용 포텐셜이 뛰어나다. 승모판막 플랫폼, 삼첨판막 플랫폼, 히스 접근 플랫폼으로의 확장 가능성이다. 루프가 삼첨판막을 횡단하기 때문에 승모판막 역류증 뿐만아니라 삼첨판막 역류증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실제 시술이 가능하도록 개발한 승모판막 루프 서클라지(Mitral Loop Cerclage, MLC)로 2015년 탐색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 임상시험은 기존 약물치료로 치료되지 않은 스테이지 3~4단계의 심부전 환자 5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김 교수는 “임상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역류증이 감소했고 심장사이즈도 축소하는 즉각적인 효과를 관찰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방세동이 관찰된 환자 2명에서 시술 이후 모두 심방세동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시술한지 약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태가 좋다”고 소개했다.
올해 JACC Cardiovasc Intervention에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를 살펴보면 심장판막 이상으로 발생한 역류증상이 평균 66%나 감소했다. 커져있던 심장 사이즈도 시술 6개월 후 측정시 34%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경쟁사인 미국 Cardiac Dimension 회사의 Carillon 의료기기 임상시험 결과와 비교시 서클라지 시술의 심장사이즈 축소 효과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CT나 초음파 영상에서도 승모판막이 제대로 닫히면서 승모판막 폐쇄부전증이 개선된 것을 관찰됐다.
임상결과 놀라운 점은 심방세동이 관찰된 환자에서 모두 증상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클라지 기술로 부정맥까지 개선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아직 치료효과가 시술 때문인지 정확한 기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향후 승모판막 루프 서클라지(MLC)가 심방세동에 주효하다는 임상결과가 나오면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시술도 안전하고 간편하다. 서클라지 기술은 동맥이 아닌 정맥 안에서 시행되서다. 또한 스텐트 시술보다는 복잡하지만 마취 없이 혈관조영술 수준으로 심플한 시술법”이라고 시술의 장점에 대해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승모판막역류증이 발생하면 삼첨판막역류증도 동반한다. 서클라지 기술은 추가시술 없이 하나의 디바이스로 승모판막과 삼첨판막 역류증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하나의 의료기기로 두 질환을 동시에 시술하는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며 “심방세동 효과까지 인정되면 승모판막역류증, 삼첨판막역류증, 부정맥까지 세 가지 질환을 한번에 치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달 개최한 PCR London Valve 학회의 Innovation 세션에서는 삼첨판막역류증 치료를 위한 초기 전임상시험의 성공적인 결과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심장질환은 대개 퇴행성이 주요원인이다. 고령일수록 심장질환에 많이 걸리지만 흉부를 열어 수술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전세계가 최소침습 심장질환 치료 트렌드로 이동하고 있다. 타우피앤유는 카테터 기반 서클라지 기술로 하나의 디바이스로 세 가지 심장질환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이는 경쟁사와 비교해도 독보적인 차별점으로 앞으로 전세계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향후 타우피엔유는 승모판막 전임상 검증과 함께 심방세동 효과를 검증하는 국내 임상2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2018년에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주도 하에 미국 내 서클라지 초기 임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타우피엔유는 지난 8월 스톤브릿지벤처캐피탈,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케이브릿지파트너스, 스마일게이트로부터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