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찬 아산병원 비임상개발센터장
오늘날 국내 신약개발에 대한 열기는 뜨겁다. 어떤 이는 과열되어 있다고 한다. 금융업계의 어떤 분은 전문적인 용어로 오버 슈팅(overshooting)이 염려된다고도 한다. 이 모두 신약개발에 대한 당위성과 요구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개발 산업은 많은 성과가 기대되며 이미 상당 부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신약개발에 대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 실정에서 우리가 말하는 국내 신약개발은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신약개발의 전체 과정 중 자본과 개발 기술이 비교적 덜 필요한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에 막대한 수익이 기대되는 후반기 신약개발은 자본이나 경험 부족 등의 이유로 아직 시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신약개발의 주체가 되는 국내 신약개발 회사의 규모는 외국의 그것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이다. 그만큼 신약개발을 시작한 역사가 짧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로벌 제약사가 끊임없이 인수 합병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회사의 덩치를 키우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연구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점차 관련 기술이 축적되고, 자본이 집중됨에 따라 후기단계 신약개발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단기간에 우리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작은 규모의 신약개발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경험과 기술을 축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신약개발 기술은 대개 기밀사항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한 회사에서 먼저 경험한 사실을 다른 회사에서 알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신약개발 기술을 과감하게 공유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서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신약개발의 원천기술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필요한 개발 기술이다.
대표적으로 비임상 독성 개발은 공유하기에 적합한 분야이다. 신약개발자가 비임상 개발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는데, GLP 독성시험을 시험의 전부로 여기거나 CRO 에서 독성 부문을 담당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IND 를 무난하게 통과하는 것이 약물의 안전성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다. 비임상 독성 개발은 단순히 GLP 독성시험 결과를 얻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IND 를 통과하였다는 것은 임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판단을 한 것일 뿐 향후 약물의 경쟁력 있는 안전성 프로파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임상 독성 개발의 참된 의미는 약물의 독성학적 측면에서 가치를 예측하고 평가해 나가는 것에 있다. 약물의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정확하게 독성을 예측하고, 약물의 용도와 특성에 적합한 독성 시험의 종류를 파악하고, 완성도 높은 시험을 설계하고 실시하여 규제기관에 제출하는 한편 신약개발 주체로서 철저히 가치평가의 관점으로 독성학적 개발을 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비임상 독성 개발 기술에는 교과서처럼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동일한 독성 프로파일을 보인 경우라도 임상 적응증에 따라서 독성의 가치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염증 치료제로 개발하는 경우와 항암제로 개발하는 경우의 용인할 수 있는 독성의 기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또한 현 시점에서 좋은 독성 프로파일을 가졌다고 판단하였더라도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서 약물의 독성학적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비임상 독성개발은 결코 CRO에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RO 는 단지 시험을 의뢰하는 회사의 지시(시험 계획서)대로 철저히 시험 결과만을 생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CRO 에 많은 것들을 의존한 채 전문적인 비임상 독성개발에 실패소홀히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미 심각한 독성이 예견되는 결과를 얻고도 계속 투자를 해 나가는가 하면, 예측되는 구도에서 독성학적 가치가 낮음에도 개발을 지속해 나가는 등은 정작 너무나도 중요한 독성시험 결과에 대한 폭 넓은 해석,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개발 약물의 가치평가를 소홀히 한 결과이다.
많은 부분이 경험에 의해서 습득되는 비임상 개발 기술은 회사 내부에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는 ‘노하우(know-how)’이다. 작은 규모의 신약개발 회사에서 이런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은 하겠지만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실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개방형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개방형 오픈 이노베이션은 수직화된 신약개발 비임상 독성개발 활동을 보다 수평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각각의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핵심 아이디어는 유출하지 않되 우리 모두에게 부족한 공통의 비임상 개발 기술들은 수평적으로 확립된 플랫폼을 통하여 공유해 나가는 것이다. 즉, 공유가능한 각자의 기술들을 플랫폼을 통하여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동시에 플랫폼에 축적된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서 기술의 수요자가 되는 한편 동시에 또 다른 플랫폼 참여자들에게 핵심 역량기술의 공급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 체계가 활성화되면 새로운 수요자가 또 다른 새로운 공급자의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생산적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산업부가 지원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신약개발 독성 실패율 감소를 위한 플랫폼'은 산업 플랫폼을 신약개발에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비임상개발센터에서는 독성문제 해결에 대한 공통 역량을 체계적으로 구축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즉 비임상개발센터를 통해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창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플랫폼에 착안한 것은 국내 비임상 개발에 아직 자리잡지 못한 '실패관리(Risk Management)' 개념을 조속히 도입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현재 신약개발의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한 Risk Management는 독성이 신약개발 후기 단계에서 발견되어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문제점들을 미리 관리하며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이 플랫폼에서는 실패관리를 현재 진행중인 신약개발 프로그램에 직접 적용하여 실패율을 감소시킨다. 독성을 미리 예측하고 관리하면 개발단계에서 요구되는 각종 판단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신약개발 시 소요되는 막대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비임상개발센터에서는 1년동안 52개의 Risk Management를 위한 독성시험을 실시하였다. 이런 시험들을 GLP 시험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모두 개발 물질의 독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험들이었다. 이중 6개의 시험 결과들은 규제기관에 제출하여 자칫 개발 실패로 이어질 뻔한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였다.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에서는 독성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과 시험법을 개발하여 신약개발 업계에 무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러한 독성개발 기술을 이전받은 회사 실무자는 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보고, 이 때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피드백을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새롭게 경험한 것이 있으면 직접 추가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더욱 보완하여 공유한다. 바로 집단 지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플랫폼에서는 비임상 센터에서는 격주로 온라인을 통한 비임상 기술 세미나 릴레이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약개발 회사의 비임상 독성 담당자들이 직접 겪은 경험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자로서 참여하면 같은 분야 26여개 회사의 비임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WebTox(Wednesday Web Toxicology Conference)라고 명명한 이 프로그램은 IT 기술을 활용하여 동시에 100여명이 참여할 수 있으며 각자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신의 데이터를 실시간 양방향으로 보여주며 진행한다. 이러한 활동은 소통하는 오픈 리소스를 추구하는 신약개발 개방형 생태계 플랫폼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공통된 역량과 자원을 체계적으로 공유하여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플랫폼은 비단 독성뿐만 아니라 신약개발 과정의 다양한 단계 및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공유 가능한 공통 역량을 모으면 자연스럽게 빅데이터를 축적하게 되고, 이것이 각자의 핵심역량 가치로 재창출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운영주체는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고, 참여자는 실제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각자 회사의 고유역량을 훼손시키거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전제 하에서, 핵심은 공공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는 윈-윈(Win-Win)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러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확산된다면 결과적으로 신약개발 산업의 고도화를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