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필자는 학부 4학년이던 1989년 “분자생물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였다. 물론 생화학 시간에 생물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DNA에 대해 배웠지만 인체 생물 정보를 저장하는 DNA와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산업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때 수강한 “분자생물학” 과목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직도 강의하셨던 최양도 교수님도 생각나고 그때 수강했던 강의 노트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강의가 재미있기는 했나 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단백질 생산 및 판매와 관련된 사업 모델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전세계에서 최초로 “재조합 유전자를 이용한 단백질 생산”을 실현한 회사는 미국의 Genentech 이다. Genentech은 1976년 설립되었으며 1978년 재조합 유전자를 활용하여 인슐린을 대장균에서 대량생산 함으로써 생물 의약품 시대를 열었다. 이후 Genentech은 Avastin, Herceptin, Rituxan 등의 블록버스터 생물 의약품을 개발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Genentech의 성장 모델은 기반 기술을 활용한 organic growth였으며 매출확대와 성장을 위한 M&A로는 2006년 인수한 Tanox가 최초의 M&A 사례이다. 이후 Genentech은 2009년 Roche에 인수되었으며 인수 이후는 활발한 인수합병 및 기술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Genentech의 공동 창업주중 하나인 Herbert Boyer는 1973년 Stanley Norman Cohen과 함께 DNA의 특정 부위를 절단하고 붙일 수 있는 제한효소를 발견하였으며 이 기술의 높은 산업적 가치를 파악한 Robert A. Swanson과 함께 Genentech을 설립한다. Genentech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선점함으로써 전세계 생물 의약품 시장을 선점하였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Gilead Sciences는 1987는 설립되었으며 시장에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 질환 치료를 위한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였다. 1992년 Gilead Sciences는 Nasdaq에 상장하였으며 1999년 매출이 3배나 많은 NeXStar를 인수한다. 이후 1999년 Roche가 Gilead Sciences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influenza 치료제 Tamiflu가 FDA 판매승인을 받고 2001년에는 HIV 치료제인 Viread가 판매 승인을 받는다. 2002년 Triangle Pharmaceutical, 2006년 Myogen, Corus Pharma, Raylo Chemicals, 2009년 CV Therapeutics, 2010년 CGI Pharmaceuticals, 2011년 Calistoga Pharmaceuticals, Pharmasset 등을 인수하였고 이후 2013년 하나, 2015년 3개, 2016년 하나의 회사를 인수하는 등 지속적인 M&A 를 진행하였으며 2017년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 therapy) 후보물질 확보를 위해 Kite Pharma를 $11.9 billion 에 인수하였다. Gilead Sciences의 최대 매출 의약품중 하나인 Sovaldi(C형 간염 치료제)의 경우 2011년 인수한 Pharmasset의 개발품목으로 Gilead Sciences를 세계적인 제약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Gilead Sciences의 성장 전략은 특정 질병 영역에 집중하며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을 지속적으로 인수함으로써 회사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였다고 볼 수 있다. Gilead Sciences는 이제 C형간염 환자의 감소에 따른 미래의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매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신사업이 필요한 시기이며 이를 위해 Kite Pharma를 인수하였고 면역 항암제라는 신규 사업 영역에 진출함으로써 제2의 성장기에 접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앞에서 언급한 두 회사의 성장전략은 완전히 다르다. Genentech의 경우 제품 개발초기에는 Lilly와 같은 대형 제약사와의 판권 협의를 통해 제품을 판매했지만 회사가 보유한 기반 기술과 시장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꾸준한 신제품 개발과 자체 영업망 확보를 통한 성장 전략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Gilead Sciences의 경우는 핵심개발 영역을 선정한 이후 자체 연구개발과 동시에 시장성 있는 후보물질의 기술도입, M&A를 통해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Gilead Sciences의 성장 역사는 M&A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든 두 회사 모두 초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이오벤처의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기반기술 또는 핵심 사업부분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초기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빠른 IPO를 통한 추가 자금 확보와 공모 자금을 활용한 제품 생산 및 자체적인 현금 흐름 확보 사업 모델이다.
이와 같은 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바이오벤처의 성장 전략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국, 일본 시장의 경우, 과거에는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모두 기반기술, 신규 사업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바이오벤처와 제약회사와의 역할 분담을 통한 빠른 신제품 개발 전략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제약사와 바이오벤처가 기반기술 또는 신규사업모델 선점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으며 몇몇 상장 바이오벤처의 경우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어가면서 자체적인 신약개발 및 판매를 할 수 있는 자금조달 능력이 생기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약사 기반 신약개발 모델의 경우 그간 많은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장점은 “기존 제품을 활용한 영업이익”이다. 신약개발 사업은 초기 현금 흐름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으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기존 의약품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활용한 신약개발 사업이 안정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국내 5위 이내 제약사를 제외하면 위의 사업 모델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투자 가능한 자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제약사의 매출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유한양행과 GC녹십자를 제외하면 1조원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 매출 구성 면에서도 유한양행을 예로 들면(홈페이지 참조) 전문 의약품 135종, 일반의약품 63종, 의약품외 11종, 건강기능식품 3종, 유전체분석서비스 6종, 생활용품 43종, 동물약품 105종, 화장품 및 기타 2종 등 전체 제품 종류가 368종에 이른다. 이와 같이 많은 제품 종류는 유한양행만의 특징은 아니다, 국내 모든 제약사가 이와 같이 다양한 제품, 상품을 판매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제약사의 제품 종류가 많은 이유는 과거 모든 제약사가 복제약 위주의 영업을 진행하며 경쟁력 있는 약품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제품 구색을 맞추는 것도 하나의 영업 전략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제품 종류가 많다 보니 매년 기존 제품의 관리에 들어가는 인력 및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신규 사업에 투여할 자원의 한계가 분명하다. 제약사의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외부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으나 보수적인 의약품 업계의 사정상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대주주의 지분율에 연연하다 보니 대규모 외부자금 유치도 힘들어져 신약 개발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에 대한 형평성 논란으로 신규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과거 LG화학이 4개 회사로 분할하던 때가 생각난다. 2000년 LG화학은 LGCI, LG화학, LG생활건강 등 3개사로 분할 하였으며 2002년 신약개발을 담당하는 LG생명과학이 LGCI로부터 분할함으로써 4개의 회사로 분할하였다. 당시 LG화학측은 "출자 부문과 사업 부문의 분리를 통해 각 사업 부문의 업무효율성은 물론 기업가치 및 경영 투명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와 같이 말한 근거에는 항생제 “팩티브”의 FDA 승인을 바탕으로 LG생명과학의 자생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LG생명과학은 투자를 더 집행해야 하는 시점에서 성급하게 독립하게 되면서 결국 쌓아놓은 역량과 경쟁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됐다. 만약 이때 LG생명과학이 분할하지 않고 있었다면 'LG화학, LG생활건강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약사 기반의 신약개발 모델은 결국 제약사의 안정성과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나 국내에서 신약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흐름을 내고 있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 위의 사업 모델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내 제약사의 미래 성장을 위한 사업모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앞에서 말한 국내 제약사의 가장 큰 약점은 기존사업에서 오는 현금 흐름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외부자금 조달의 한계라는 2개의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LG화학의 분할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단 이 때의 분할 목적은 새로운 회사의 자생 보다는 신규 자금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이다. 제약사가 보유한 해외사업본부(생산공장, 해외 판매법인)의 분할, 또는 보유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의 분할과 대규모 외부 자금의 유치를 통해 이미 확보한 기술 경쟁력에 기반한 신규 사업을 독립시킴으로써 모 회사에 억매여 있던 성장성 있는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고 이를 통한 기업가치 향상이 가능해 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현재 국내 바이오벤처는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보유한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기업가치가 늘어남으로써 기업은 연구개발 자금의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생겼다. 산업적으로도 거대 제약회사는 자체적으로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거나 협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특정 질환에 대한 약품을 보유한 회사도 기존 약품의 효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다른 업체의 협력과 인수에 나서고 있다.
암과 같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의 경우 여러 약품을 섞어서 사용할 경우, 한 가지 약품만 사용한 것에 비해 약효가 높아지는 현상인 '복합 치료법 combination therapy'을 위해서다. 소규모 회사와 거대 제약사간의 연합뿐만 아니라 소규모 회사간의 협력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바이오벤처도 기업가치 향상에 기여한 첫번째 신약 후보 물질의 기술수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술 수출 이후의 자체적인 영업력 확보와 이를 바탕으로 빠른 기술 도입 및 기업 인수를 통해 성장함으로써 국내에도 Gilead Sciences와 같은 대형 제약사의 성공 신화가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