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석 SLMS 대표
20세기 초반을 뒤흔든 바이러스 질병이 황열병, 인플루엔자라면 이러한 바이러스들에 대한 백신이 나온 다음 가장 큰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이러스 질병은 소아마비였다. 19세기 중반에 처음 보고되기 시작한 소아마비는 20세기에 들어서며 도시지역의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급격히 창궐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 보스턴에서 26건의 발생이 보고된 것을 시작하여 1907년에는 뉴욕 시에서만 2,500건의 발생이 보고되었다. 1916년에는 미국 전체에서 약 2만7,000건의 발생과 6,000명의 사망이 보고되었으며 그 중 뉴욕시에서만 2,400명의 사망이 있었고 대부분이 10세 이상의 아동이었다[1]. 특히 소아마비 감염에서 간신히 생존하게 되더라도 감염자의 상당수가 평생 치유되기 어려운 신체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소아마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시 보건당국은 소아마비에 걸린 환자들을 철저히 격리수용하고, 엄청난 방역 노력을 계속하였지만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한 대책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지난 연재인 바이러스와의 전쟁(1)에서 기술한 것처럼 1908년 독일에서 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와 에르윈 포퍼(Erwin Popper, 1879-1955)에 의해서 소아마비가 세균보다 작은 병원체에 의해서 감염된다는 것을 원숭이 실험에 의해서 확인했다. 그 이후 스웨덴의 칼 클링(Carl Kling)은 스웨덴의 소아마비로 사망한 환자의 조직에서 역시 폴리오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원숭이에게 감염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기존에 폴리오 바이러스가 발견된 척수 조직 이외에도 목이나 기관지, 소장 등에서 채취한 타액에서도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환자 중에서는 특별한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환자들도 발견되었다. 클링은 소아마비의 감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의 타액 등을 통하여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였다[2]. 폴리오 바이러스의 전파가 실제로 소아마비의 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동가능한 환자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뉴욕시 보건 당국이 1916년 소아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를 적극 격리해도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1].
록펠러 의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사이먼 플렉스너(Simon Flexner, 1863-1943)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생존한 원숭이에서 채취한 혈액 유래의 혈청을 소아마비에 감염된 척수 추출물과 같이 접종한 원숭이는 소아마비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생존한 원숭이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첫번째 단서를 주었다.그렇다면 소아마비를 유발하는 병원체는 과연 무엇일까? 플렉스너의 랩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매독을 일으키는 원인 세균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유명해진 일본 출신의 연구자인 노구치 히데요(Noguchi Hideyo 野口 英世, 1876-1928)는 1913년 소아마비를 유발하는 미생물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플렉스너와 함께 발표한다[3]. 이전의 연구 결과들이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분명히 박테리아보다 작고, 박테리아를 여과할 수 있는 필터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는 이러한 필터를 통과하는 박테리아가 소아마비를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노구치와 플렉스너의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고, 노구치는 그 이후에도 소아마비 뿐만 아니라, 황열병, 광견병 등 여바이러스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알려진 질병들이 실제로는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에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이 질병의 원인 박테리아를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맥스 테일러가 닭의 수정란에서 배양을 계속하여 약독화시킨 황열병 바이러스가 황열병 백신으로써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백신을 만들려는 시도는 1930년도에 본격화되게 되었다.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의 처참한 실패
1930년대 중반에 최초로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 제조가 시도되었다. 필라델피아의 템플대 의대 교수였던 존 콜머(John Kolmer, 1886-1962)와 뉴욕시 보건국 연구자였던 모리스 브로디(Maurice Brodie, 1903-1939)가 이들이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황열병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는 달리 수정란에서 배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콜머는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의 척수 추출물을 여과한 후, 식물성 지방용액인 소디움 리시놀산으로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척수 추출물을 처리하여 약독화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한편 브로디는 원숭의의 척수 추출물에 포름알데하이드를 처리하여 바이러스를 파괴한 불활성화된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려고 하였다.
콜머는 원숭이에서 그의 백신이 예방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그의 백신을 자신의 두 자녀와 비서에게 접종하였고, 곧바로 어린이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934년까지 약 1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의 백신을 접종하였다. 한편 브로디는 약 20마리의 원숭이를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하여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자 곧바로 사람에 대한 접종에 들어갔다. 오늘날의 의약품 개발과 인증 과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허술하고 성급한 임상시험 시도였으나, 의약품 개발과 임상시험 및 안전성에 대한 개념이 부실했던 당시에는 이러한 일들이 부지기수로 행해졌다.
콜머와 브로디는 1935년 미국 공중보건학회(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 학술대회에서 그들의 결과를 발표하였다. 콜머는 미국 전역의 1만명의 어린이에게 백신을 접종했다. 그러나 그의 임상시험에서는 대조군을 전혀 행하지 않았음으로 과연 그의 백신이 어느 정도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지를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그의 백신을 접종한 어린이 중에서 10명이 소아마비 현상을 보였으며, 5명의 어린이는 사망하였다. 공교롭게도 소아마비 현상을 보인 어린이 중에서 몇 명은 해당 도시에서 발생한 유일한 소아마비 환자였다[4].
그나마 브로디의 연구에는 대조군이 있었다.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4,500명 중에서 5명에게서 소아마비가 발생한 반면, 백신을 접종받은 7,000명 중에서는 한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4일만에 사망하였다. 그 후에 백신을 접종받은 환자 중 2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더 발생헀다는 것이 밝혀졌다[5].
결국 이들의 백신은 완벽하지 못했고, 백신을 맞은 사람 중 수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들은 학회장에서 ‘살인자’라는 동료 학자들의 비난을 들어야만 했으며 이들의 백신 연구는 중단되었다. 그 이후에 소아마비 바이러스 백신이 다시 시험되기까지는 약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마치 오브 다임
1921년 소아마비로 생각되던 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193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38년 소아마비 국립재단(National Foundation for Infantile Paralysis)이라는 이름의 폴리오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재단을 설립하였고 대대적인 민간 대상의 모금 활동이 이루어졌다. 모금 캠페인의 이름인 “마치 오브 다임”(March of Dimes, 다임은 10센트 동전을 의미한다)을 통하여 10센트 동전을 기부하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고, ‘마치 오브 다임’은 나중에 해당 재단의 이름이 되었다.
이전 ‘신약연구사’ 연재의 고혈압 부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루즈벨트의 뇌졸중 사망이 고혈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루즈벨트가 세운 마치 오브 다임 재단은 역시 소아마비 퇴치에 대한 미국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루즈벨트가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는 일반적으로 소아마비 감염이 적은 39세이고, 그의 의료기록을 분석해 본 오늘날의 의사들은 루즈벨트의 질병은 소아마비보다는 말초신경계통의 손상으로 근 무력이 발생하는 길렝-바레 증후군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마치 오브 다임 재단은 1938년부터 조나단 솔크의 백신이 등장한 1955년까지 소아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약 2억 3,000만불의 의료비 지원을 하였고, 폴리오 바이러스 연구에 2억5,000만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하였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엄청난 투자는 궁극적으로 소아마비 퇴치를 가능케 한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의 기반이 되었다.
폴리오 바이러스의 세포 배양법의 개발
1930년대의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 개발이 실패한 이후 향후의 백신 개발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몇가지 전기가 이루어졌다.
그 첫번째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여러가지 종류의 서브타입(Subtype)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멕팔레인 버넷(Macfarlane Burnet, 1899-1985)과 진 맥나마라(Jean Macnamara, 1899-1968)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두 가지 바이러스가 서로 면역학적으로 구분되는 바이러스라는 것은 발견했다. 이들은 특정한 종류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원숭이는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력을 보이지만, 멜버른에서 발견된 다른 계통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소아마비 증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였다[6]. 즉 적어도 두 종류의 면역학적으로 구분되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은 면역학적으로 구분되는 다른 바이러스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분리된 폴리오 바이러스는 면역학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버넷과 맥나마라의 발견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결론적으로 폴리오 바이러스는 크게 3종류로 나뉘며, 타입 1이 약 80% 를 차지하며, 타입 2와 타입 3이 10% 을 차지한다는 것이 1950년대에는 알려지게 되었다[7].
폴리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의 또 다른 전기가 된 것은 2차대전 이후 바이러스를 체외 세포배양에 의해서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콜머와 브로디의 백신 개발 시도에서는 원숭이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원숭이의 척수 조직에 함유된 바이러스를 약독화/불활성화시켜 백신을 만들려고 했다. 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 역시 광견병 바이러스를 접종한 토끼의 척수 조직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척수 조직에서 증식한 바이러스에서 만들어진 백신을 접종받은 경우 0.4% 정도의 빈도로 영구적인 척수 마비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이후에 이것이 척수 조직에 존재하는 미엘린 베이직 단백질(Myelin Basic Protein)이라는 단백질에 대한 면역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8]. 어쨌든 콜머와 브로디의 백신 실패 이후 사람들은 원숭이 척수 조직에서 배양된 바이러스에 의한 백신 개발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다른 배양 시스템을 찾으려고 했다. 황열병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수정란 배양 시스템에서 배양할 수 있었지만 폴리오 바이러스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폴리오 바이러스를 체외에서 배양할 수 있는 다른 세포 시스템의 개발이 필수적이었다.
폴리오 바이러스의 체외 세포에서의 배양에 처음 성공한 것은 하버드 의대의 존 엔더스(John Enders, 1897-1985)와 그의 연구실의 대학원생인 토마스 웰러(Thomas Weller, 1915- 2008)와 프레데릭 로빈스(Frederick Robbins, 1916-2003)였다. 원래 이들은 볼거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의 바이러스를 인간 세포를 이용하여 배양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9],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폴리오 바이러스의 배양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앤더스가 연구실에서 보유하고 있던 폴리오 바이러스 샘플을 한번 접종해 보기를 대학원생인 웰러와 로빈스에게 권했고[10], 그들은 별 큰 기대 없이 낙태된 태아의 피부, 근육, 신장세포 등을 채취하여 여기에 폴리오 바이러스를 접종하였다. 이들이 바이러스를 세포 배양액에 접종한 후 배양액을 채취하여 마우스에 접종해 보자 마우스에서는 마비 현상이 일어났다. 바이러스는 배양을 지속할수록 점점 높아져서, 배양액을 처음보다 10^16배 희석을 해도 바이러스는 여전히 생물학적인 활성을 유지했다[11].
결과적으로 이들은 기존에 번거로운 동물실험을 통하여 증식하던 바이러스를 간단한 세포 배양 시스템을 통하여 대량으로 증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동물의 척수 조직에서 배양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던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엔더스와 웰러, 로빈스는 폴리오 바이러스의 체외 세포배양을 가능하게 한 공로로 195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보통의 노벨상 수상자는 실제로 실험 연구를 수행한 ‘실무자’인 대학원생이나 포스트닥 급의 연구자가 아닌 연구실의 책임자인 교수(여기서는 존 앤더스)에게만 수상되는 것이 보통이나 존 앤더스는 그와 같이 연구를 수행한 두 명의 대학원생이 공동으로 수상하지 않으면 수상을 하지 않겠다고 단독 수상을 거부하였고, 결과적으로 3인의 연구자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되었다[12].
이렇게 폴리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기 위한 여러가지 기술적인 장벽이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가 실질적인 백신의 형태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했다. 다음 연재에서는 실제로 실용가능한 폴리오 바이러스의 백신이 등장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가지 시행착오, 그리고 이러한 백신의 보급이 어떻게 소아마비를 퇴치할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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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Paul A. Offit M.D.. The Cutter Incident: How America's First Polio Vaccine Led to the Growing Vaccine Crisis (Kindle Locations 328-330).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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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Paul A. Offit M.D.. The Cutter Incident: How America's First Polio Vaccine Led to the Growing Vaccine Crisis (Kindle Locations 337-340). Kindle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