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임동석 가톨릭의대 약리학교실 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그동안 국내 신약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일정 부분 기여도 하고 실력 있는 분들의 비평도 받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마침 바이오스펙테이터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주제들을 10회짜리 정기 칼럼으로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국내 관계자들 간의 컨센서스 조성과 공동의 전문성 발전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을 왜 만드는가?
학부생들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제가 첫 마디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처럼 바른생활 같은 답변이 주를 이루지만 결국에는 핵심적인 답변을 말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 "돈 벌기 위해". 그러면 주변 학생들은 그 학생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저는 그 학생이야말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학생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각 사업이 지속가능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어야 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각종 재화나 서비스가 수요자에게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많은 제약사 또는 바이오텍이 궁극적으로 좋은 약을 통해 인류 건강에 이바지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일단 돈이 되는 약을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급적 적은 돈과 시간을 들여 최대한 높은 가치를 지닌 신약을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단순한 명제이지만 실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아직 많지 않은 듯 보입니다.
어떤 약이 가치 있는가?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복잡한 문제이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금전적 가치로 그 범위를 한정하고자 합니다. 다시 잠깐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 보면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결정됩니다. 즉, 희소한 것일수록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국내 제약사나 바이오텍은 대부분 시판 허가를 위한 어느 정도의 임상적 근거를 확보한 단계에서 후보물질을 다국적제약사 등에 '라이센싱 아웃'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요를 가진 고객은 의사도 환자도 심지어 규제기관도 아닌 회사입니다. 수요자 역시 영리 추구라는 목적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원하는 후보물질이란 이익을 줄 수 있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희소성은 어디서 발생할까요? 세상에 후보물질은 너무나 많습니다. 당장 국내에도 개발 중인 신약이 거의 300개나 된다고 합니다. 즉, 후보물질이 적은 것이 아니라 "살 만한" 후보물질이 적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신약개발이 순조롭게 되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후보물질이 매력적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가치 없는 수많은 물질 중에 하나에 불과한 것이며, 결국에는 아무도 그 물질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약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팔지 못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아무리 풍년이 들었어도 곡물 가격이 너무 낮으면 팔아 봤자 이득이 안 되어 논밭을 그냥 갈아 엎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국내사들은 내 후보물질이 그저 개발 단계 하나 하나를 넘어가고 있는가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고 있는가를 늘 확인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신약의 기본 요건은?
이제 어떻게 하면 내 후보물질을 사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됩니다. 이익이 크게 나려면 많이 팔리는 약이거나 비싼 약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목표제품 특성(target product profile)을 잘 잡아야겠네'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TPP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TPP와 상관없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대형 제약사가 찾는 물질은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대형 제약사는 수많은 품목을 가지고 있고 그 모든 품목에 리피토(atorvastatin, 블록버스터의 대표적 사례) 같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적더라도 확실한 수익이 나는 신약을 원합니다. 이것은 과연 들인 돈보다 더 많은 이익이 나도록 "팔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운 문제입니다. 이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특허이고, 기본적으로는 의약품 주성분에 대한 물질 특허를 의미합니다.
나라마다 의약품 허가 이후에 독점적 판매기간을 일정 기간 부여하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시판 허가 시점에서 특허 기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해당 성분에 대한 제네릭의약품의 개발을 늦추는 더욱 확실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TPP에 의해 이미 정해진 시장이 있는데, 그것을 독점하는 기간이 길수록 매력적인 신약인 것입니다. 따라서, 매력적인 신약을 만들기 위한 기본 요건은 물질 특허 등록으로부터 라이센싱 아웃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점까지의 소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개발 지연 시 신약의 가치가 하루 당 적게는 60만, 많게는 800만 달러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신약 개발은 속도전인 것입니다.
같은 물건을 비싸게 팔려면?
자료 생성, 각종 허가, 라이센싱 아웃, 신약 승인 등 개발의 전과정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설득의 과정입니다. 만약 TPP와 잔여 특허 기간이 같은 두 개의 물질이 있다고 한다면, 두 물질은 항상 같은 가격에 팔릴까요? 모두 예상하시겠지만, 답은 '아니오'입니다. 심지어 한 물질은 팔리고, 다른 물질은 아예 팔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대형 제약사가 확실히 수익을 내는 신약을 원한다고 했는데, 속도전은 ‘확실한 수익’이라는 말은 강조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또 눈 여겨보아야 할 것은 ‘신약’입니다. 실제로 “약으로써 허가를 받을 수 있는가?”여부를 본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증거는 ①어떤 작용기전을 가진 약이고, 그러한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다양한 실험으로 입증되었는가? ②목표하는 효능이 어떤 것이고, 그러한 효능이 사람에서 입증되었거나 또는 입증할 가능성이 충분한가? 의 두 가지입니다. 즉, 개발사들은 모든 개발 단계에서 단지 규제적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한 자료뿐만 아니라 위의 사항을 입증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를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자료가 충분할수록 개발사가 해당 후보물질에 대해 더 많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료의 생성도 그렇지만 그러한 자료들을 어떻게 해석하여 보여줄 것인가 역시 중요한 사항이며, 라이센싱아웃 당사자의 협상 능력 역시 신약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핵심적 요소일 것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신약 개발이라는 속도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어떤 자료들을 생성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