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동아에스티가 지난 5년 동안 지속됐던 ‘스티렌 효능 검증’ 논란을 종지부 찍었다. 유용성 입증 자료를 늦게 제출한 책임을 지고 ‘119억원 환수’와 ‘스티렌 약가인하’ 조건으로 정부와 합의하고 소송을 마무리했다. 소송 장기화로 최악의 경우 1000억원대 벌금을 물수도 있다는 리스크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동아에스티는 내년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119억원을 건보공단에 지급키로 복지부와 합의했다. 위염치료제 ‘스티렌’의 보험약가는 현행 162원보다 31% 인하하기로 했다.
동아에스티가 지난 2014년부터 2년간 복지부를 상대로 벌였던 ‘스티렌 보험급여 제한’ 취소 소송 과정에서 소 취하를 결정하면서 복지부와 합의한 조건이다. 동아에스티와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의 조정권고안을 수용한다는 동의서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스티렌 효능 검증 논란' 무슨일이 있었나
쑥을 추출해 만든 스티렌은 국내제약사가 배출한 간판 천연물신약이다. 지난 2002년 '급성위염과 만성위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투여로 인한 위염 예방' 용도로 허가받은 이후 한때 연간 8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누적 매출이 7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2006년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품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하면서 스티렌의 승승장구에 변수가 발생했다.
복지부는 효능에 비해 약값이 비싼 약의 퇴출하거나 약가를 깎는 '기등재의약품 목록정비'의 일환으로 지난 2011년 순환기계용약, 소화성궤양용약 등 5개 효능군에 대해 경제성을 검토한 결과 임상적 유용성이 부족한 211개 품목에 대해 보험적용을 중단키로 했다.
복지부는 이때 스티렌을 포함한 156개 품목은 임상적 유용성 판단을 유보하고 해당 업체에 직접 유용성을 입증하라고 지시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의 일부를 지원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하라'는 요구다. 복지부는 2013년말까지 논문 저널 등에 적합한 임상결과를 게재하도록 지시했다.
단 기한 내 임상시험을 완료하고 논문 게재를 준비하고 있는 경우에 한해 제출기한을 2014년 6월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그동안 거둔 처방실적의 30%를 환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스티렌은 허가받은 효능 중 '위염 예방'이 평가 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제약사들은 복지부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이행보증각서와 손해보험 이행보증보험 증권을 제출하며 복지부의 지시를 따를 것을 약속했다.
동아에스티는 약속한 임상시험 완료 시한까지 2년 가량의 시간이 있었지만 "당초 수행키로 한 임상시험 조건이 까다로와 환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유로 임상시험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동아에스티는 임상시험 완료 시기를 맞추지 못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보건당국에 마감시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보간당국은 합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아에스티는 임상종료 마감시한을 3개월 넘긴 2014년 3월말에 임상을 종료했고 같은 해 5월논문게재 예정 증명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동아에스티 측은 "마감시한 3개월을 넘겼을 뿐 유용성 입증에는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동아에스티가 약속한 임상종료시한을 준수하지 못했다”며 당초 공고대로 2014년 6월부터 스티렌의 위염 예방 효능의 보험급여를 중단했다. 행정처분이 확정되면 동아에스티는 2011년부터 3년간 처방실적의 30%인 600억원 이상을 건보공단에 물어야 했다. 2011년부터 3년간 스티렌은 881억원, 808억원, 63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아에스티는 즉각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얻어내고, 서울행정법원에 급여제한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11월 재판부는 동아에스티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복지부가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고려를 하지 않고, 당초 정한 기한까지 결과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형식적인 사유만으로 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다"고 판단했다.
요양급여기준에서 '복지부 장관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 약제의 경우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됐는데, 결과적으로는 경제성을 입증했기 때문에 제출 기한을 넘겼다고 유용성 입증 실패로 간주하는 것은 과도한 판단이라는 취지다.
복지부는 즉각 항소했고 법정에서 최근까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복지부는 당초 '스티렌의 임상자료를 검토할 가치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스티렌의 임상자료의 신뢰도에 의혹이 있다'고 맞서기도 했다. 결국 소송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서 양 측은 스티렌 약품비의 일부를 상환하고 약가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복지부ㆍ동아에스티,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자' 공감대 형성
복지부의 항소로 소송은 2라운드에 접어들었지만 2심에서도 동아에스티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 했다. 복지부는 "스티렌의 임상시험 자료가 신뢰성에서 의심이 간다"는 새로운 논리를 펼쳤지만 임상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두고 복지부와 동아에스티의의 이견차가 커 임상자료 재검증은 물 건너 갔다.
2심에서 선고만을 앞둔 지난 5월부터 양 측은 물밑으로 조정을 시도했다. 복지부와 동아에스티 모두 소송 패소 결과가 나올 경우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1심과 같이 2심에서도 패소할 경우 약효 검증 지시 과정에서 허점을 노출해 수백억원의 건강보험재정 절감 기회를 날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향후 약품비 절감을 위해 유사한 내용의 약효 평가를 진행하더라도 종료기한을 지키지 않은 업체에 대해 처분을 내리기에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1심에서 승소한 동아에스티 입장에선 표면적으로는 적잖은 금전적인 손실을 감수하며 양보했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에스티가 건보공단에 지급키로 한 119억원은 내년 말까지 3번에 걸쳐 분할 납부키로 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스티렌의 약가를 현행보다 31% (162원→112원)내리기로 했지만 스티렌의 약가가 지난해 7월 제네릭 등재에 따른 후속절차로 오는 7월 25일부터 124원으로 인하하기로 예정돼 실질적인 약가인하율은 10%에 그친다. 현행 약가체계에서 제네릭이 등재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약가는 종전의 70%로 인하되고 1년 이후 53.55% 수준으로 내려간다. 지난해 스티렌의 매출 362억원을 적용하면 약가인하에 따른 추가 손실은 연간 30억원대에 불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동아에스티 입장에선 소송에서 패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 이번 조정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만약 동아에스티가 소송에서 패소, 스티렌의 '위염 예방' 보험급여가 중단되면 2011년부터 거둔 처방실적의 30%을 건보공단에 되돌려줘야 한다. 스티렌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18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악의 경우 동아에스티가 1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소송이 2심에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하면 상환 규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구조다. 최근 당뇨약 신약 수출 등의 성과를 내며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리스크는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동아에스티는 임상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을 복지부에 제공하고 향후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실리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