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산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에서 확산 속도가 빨리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다만 미국 보호 무역주의 강화의 일환으로 미국 제약기업이 내놓은 혁신 신약의 가격 인상 압박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1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바이오·제약분야 정책 및 입법 대응과제-바이오·제약업계, 위기인가 기회인가’ 토론회에서 한국 제약 바이오산업 전망을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주최했다.
이성원 성균관대 제약산업학과 교수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우리나라 제약산업 영향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산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제약산업에 영향을 미칠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은 △오바마케어 폐지 △의약품 가격 자유경쟁 △해외 의약품 수입제한 완화 △한미 FTA 등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또는 폐기 등 4개로 압축된다.
이중 오바마케어 시행 변화에 따른 국내 제약산업 영향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오바마케어의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했지만 당선 이후에는 부분 수정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만약 오바마케어가 폐지되더라도 국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2014년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로 미국 제약산업은 8% 이상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다. 의료보험 의무 가입자 증가로 처방약 사용이 증가된데 따른 효과로 분석된다.
이 교수는 “트럼프에 의해 오바마케어가 폐지시 의약품 수요 증가가 주춤할 것이라는 견해와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의약품 가격 통제 정책으로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과 같은 저가 의약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비록 보호 무역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가격 자유경쟁을 지지하고 있어 고가 바이오의약품을 대체하는 바이오시밀러의 성장이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이 교수는 “트럼프가 저가 의약품 수입을 지지하고 있어 고가 바이오의약품을 대체하는 바이오시밀러의 성장이 예상된다”면서 “가격이 비싼 항체의약품은 바이오시밀러가 70% 이하의 가격도 가능해 성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셀트리온이 유력 수혜기업으로 꼽힌다. 셀트리온은 지난 2012년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했고 유럽 시장에도 빠른 속도로 침투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 시장에서도 항체 바이오시밀러 중 가장 먼저 출시됐다.
트럼프 당선자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로 한미FTA 재협상 요구나 의약품 가격 인상 압박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 시절 “한미FTA 때문에 거의 10만개의 미국 일자리가 없어졌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은 거의 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한미FTA의 부분적인 수정 요구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약산업의 경우 한미FTA 시행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허가특허연계제도의 도입이다.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제네릭의 허가를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와 연계해서 내주는 제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네릭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제도로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제네릭의 시장 진입시기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상원 교수는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이미 반영돼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재협상 요구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도 “미국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미국이 약가협상제도를 문제삼을 가능성은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 제약업계는 한국 건강보험공단이 혁신 신약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며 약가 결정과정을 독립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민간 독립기구의 설치 운영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트럼프가 한미 FTA 등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나 폐기를 요구할 수 있다”면서 “약가 결정 과정에 대한 이슈제기 및 압박도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이상원 교수의 전망에 대해 지지 의견을 보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 수요 증가는 불가피한 변화이며, 미국의 신약 가격 인상 요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황순욱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단장은 “시장경쟁에 따른 약가 결정, 효율적 의료비 절감을 위한 해외의약품 수입 개방 정책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비록 미국에서는 늦게 바이오시밀러 허가체계를 도입했지만 향후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어느 정도 정착이 돼고 있어 미국 측의 요구에 따른 협상의 재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도 “미국은 자국내 다국적제약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FTA에서 혁신적인 의약품 등에 대해 가격의 보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