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이 공개석상에서 신약과 개량신약의 약가제도 우대를 요구했다. 이미 발매된 고혈압신약 ‘카나브’를 예로 들어 기존에 발매한 신약의 가치를 재평가해주고, 국내개발 신약을 활용한 복합제의 약가 산정기준도 현행보다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 측은 난색을 표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열린 ‘제약산업의 국가 미래성장 동력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최 사장은 국내개발 의약품의 약가제도 개편을 요구했다.
최 사장은 “2011년 고혈압신약 카나브가 발매된 이후 이후 동일 계열 단일제 중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각광받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글로벌 진출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가장 힘든 것은 무엇보다 약가제도다”라며 공개적으로 정부 약가제도를 문제삼았다.
최 사장은 신약과 개량신약의 약가산정기준 개편을 요구했다. 우선 국내 시판승인 이후 해외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국내개발 신약의 경우 약가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최 사장은 “2011년 카나브가 보험약가를 받을 때 적정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미 개발된 신약도 새롭게 가치를 평가해서 약가 재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정책을 이미 판매 중인 카나브에도 적용해달라는 의도로 분석된다.
현재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은 현재 개발단계 신약에 집중돼있는데, 카나브처럼 국내 허가 이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추가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도 사실상 개발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약가우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추가 R&D비용 등의 원가 및 수출실적 등을 감안해 국내개발 신약의 보험상한가를 인상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복지부의 국내개발 신약 우대 규정 중 국내 보건의료 기여 약물의 기준에 부합하는 약제에 대해 조정신청 등의 절차를 통해 재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최 사장은 설명했다.
최 사장은 “정부는 향후 개발되는 신약에 대해 약가우대를 주겠다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카나브도 해외진출이나 새로운 적응증 추가를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중이어서 실제 신약개발 단계라고 볼 수 있다”라며 카나브의 약가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태홍 사장은 두 개 이상의 약물을 결합한 복합제의 약가산정 기준도 조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보령제약은 카나브와 또 다른 고혈압약, 고지혈증약과 결합한 복합제 ‘듀카브’와 ‘투베로’를 지난해 각각 발매한 바 있다.
현행 약가제도에서는 복합제의 약가는 원칙적으로 구성 성분 개별 단일제 최고가의 53.55%의 단순 합으로 산정하도록 규정됐다.
예를 들어 A와 B를 결합해 복합제 C를 만들 경우 A의 최초 등재약가가 100원, B의 최초 등재약가가 100원이라고 가정하면, C의 보험상한가는 107.1원(53.55원+53.55원)을 넘을 수 없다. 현행 복제약(제네릭) 약가체계에서 제네릭이 발매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종전의 53.55% 수준으로 최종 인하되는 것을 감안한 제도다. 복합제를 구성하는 2개 성분의 가격 합이 각각의 성분의 제품 가격을 더했을 때보다 높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반영됐다.
그러나 최 사장은 복합제의 구성성분 중 국내개발신약 특허가 남아있는 경우 53.55%가 아닌 100% 가격을 적용해달라고 건의했다.
카나브와 고지혈증약 ‘크레스토’를 결합한 ‘투베로’의 경우 크레스토10mg 최고가의 53.55%인 612원과 카나브60mg(665원)의 53.55%인 356원을 더해 968원으로 약가가 책정됐다. 카나브는 아직 제네릭이 발매되지 않아 현재 보험약가가 최고가다.
하지만 카나브가 글로벌혁신신약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카나브60mg의 현행 약가를 그대로 복합제에 합산하면 1277원(카나브60mg 665원+크레스토10mg 612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듀베로의 보험약가 968원보다 31.9% 상향조정된 수준이다.
최 사장은 “복합제는 단일제에 비해 임상적·경제적인 효과가 입증돼 유럽심장학회/유럽고혈압학회(ESC/ESH)에서도 처방을 권고하며 만성질환 복합제 신약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면서 “신약이 포함된 복합제는 임상시험도 필요하고 글로벌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특허가 남아있는 신약을 포함한 복합제는 약가우대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최 사장의 건의는 정부 측 관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김주영 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장은 “보험약가제도는 국내개발 신약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제도가 아니라서 국내개발 신약이 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안타깝다”면서도 “약가혜택이 확대되면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도 늘고 건강보험 보장성 저하도 우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구미정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의약품의 적정 보험약가는 해외 수출 여부보다는 환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임상적 유용성을 제공하는지가 기준점이다”면서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했더라도 기존 시장에 있는 약제보다 우월한 효능을 입증하지 못하면 높은 약가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며 국산신약의 약가우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구 사무관은 이어 “글로벌 진출 신약의 약가우대를 고려해달라는 요구는 제약사가 시장 확대를 위해 비용을 추가 투입했으니 환자들에게 더 부담을 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검토가 더 필요하다”면서 “국내개발 신약에 대해서만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면 통상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에 최태홍 사장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 (약가우대, 보험재정 절감 등) 다양한 요건을 모두 포용하는 정책을 펼친다. 국내에서도 산업 육성과 보험재정 절감 측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귀현 한미약품 전무는 임상시험 비용에 대한 조세혜택 확대를 요구했고 지희정 녹십자 전무는 정부차원의 R&D 투자지원을 확대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석래 미래창조기획부 생명기술과장은 “국내 제약기업들이 약 250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혁신성이 필요하다. 혁신후보물질이 아니면 글로벌진출에서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임상3상시험 비용까지 지원하는 것은 어려움이 크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글로벌3상 비용 지원은 민간 차원에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