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2년 전 본격 시행된 허가·특허연계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특허 도전에 성공한 업체가 무더기로 판매 독점권을 공유하는 탓에 제약사들에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네릭 독점 판매권의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주최로 열린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 정책 포럼’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의 중간평가와 개선책이 제시됐다.
한미FTA 발효로 도입된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제네릭 허가를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와 연계해서 내주는 제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네릭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핵심은 ‘제네릭 판매금지’와 ‘우선판매품목허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제네릭 판매금지는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소송 기간 동안 제네릭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다. 식약처는 최초 제네릭 허가신청시 신청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는데 이 때 특허권자가 제네릭 발매는 ‘특허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제네릭 판매는 9개월 동안 금지된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특허도전에 성공한 제네릭에 부여하는 혜택이다. 가장 먼저 특허도전에서 승소한 제네릭은 9개월 동안 제네릭의 진입 없이 해당시장에 오리지널 의약품과 1대1로 경쟁하는 혜택을 받는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단계적인 도입 절차를 거쳐 2015년 3월1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손경복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가 허가·특허연계제도 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손 교수는 “제약사들은 다수의 제약사가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하기 때문에 시장 선점 또는 수익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특허 도전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우선판매품목허가에 대한 실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일부 시장에서는 20개 업체가 공동으로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을 정도로 다수의 제약사가 독점 판매권을 공유함에 따라 특허도전 노력의 결과가 실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꼬집었다.
제약사들이 공동으로 특허 소송을 진행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모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부여하는 제도 특성상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독점판매권을 공유한 셈이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최초 특허심판 청구업체에 주어지는데, 특허심판은 최초 심판으로부터 14일 이내에 청구하는 제네릭은 모두 가장 먼저 청구한 것으로 간주된다. 동일한 품목을 준비하는 회사가 2개 이상 존재할 때 특허심판 청구를 1, 2일 늦게 했다고 해서 9개월 동안 판매를 못하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판단에 14일 유예기간을 도입했다.
비슷한 기간에 특허소송에 가담한 업체 모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가져갈 수 있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특허심판청구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경쟁업체가 단독으로 제네릭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십개 업체들이 동시에 특허소송에 가담하는 전략을 펼치는 상황이 펼쳐졌다.
박종혁김영신특허법률사무소의 박종혁 변리사는 우선판매품목허가 획득을 위한 요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 우선판매품목허가의 요건으로는 △품목허가신청 전에 심판을 청구할 것 △통지받은 날로부터 9개월 이내에 승소심결을 받을 것 △최초 심판청구요건을 갖출 것 등을 갖춰야 한다. 이중 최초심판청구요건의 경우 최초로 심판을 청구하거나, 최초 심판청구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심판을 청구하면 부여받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심결을 받아도 최초심판청구요건을 확보하게 된다.
박 변리사는 “주요 품목에 대해 어느 한 회사가 특허심판을 청구하면 14일 이내에 수십개 회사가 따라 들어온다”면서 “제약사 입장에서는 짧은 기간내 심판청구를 준비하면서 비용 부담도 높아지고 패소위험도 증가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최초 심판청구 이후 14일 이내 특허심판을 제기한 업체도 우선판매품목허가 부여 대상으로 분류돼 무더기 심판 청구와 우선판매품목허가 공유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박 변리사는 최초 심판청구인 또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재심사(PMS) 기간 만료일 1년 이전에 심판청구한 자를 우선판매품목허가 자격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 14일의 최초심판청구 유예기간을 줄이는 대안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약사 참석자들도 제도의 일부 개선 필요성을 촉구했다.
이경준 제일약품 팀장은 “허가·특허연계제도 본격 시행 이후 특허심판 건수가 큰 폭으로 늘었고 심판 청구 후 자진취하도 23%에 달한다”며 "이 팀장은 “제약사들이 최초 심판청구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무모하게 특허심판을 청구하고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제약사들의 소모적인 경쟁을 우려했다.
이 팀장은 "일부 회사는 제제 연구도 하지 않고도 특허심판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제도 시행 이후 부작용이 노출된다면 변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면서 “최초 심판청구 지위를 없애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호 한미약품 팀장은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승인받으려면 허가신청 이후 9개월 이내에 승소해야 한다”면서 “특허심판 이후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제도 시행 초기인만큼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 제약사 관계자는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다수의 제약사가 공동으로 가져간다는 사실만으로 제도가 문제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제도 시행 이후 건강보험재정 절감 효과 등 다양한 영향을 점검한 이후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옥기석 식약처 의약품허가특허관리과 과장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제약업계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 개선할 문제는 빨리 바꾸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