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신약 개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좀 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연구개발(R&D)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약개발 주체들은 각자 다른 연구목적을 가지거나 무관심하는 등 서로간에 큰 벽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동현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 이사장이 말하는 성공적 신약개발을 위해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의 모습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35차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 '신약 개발의 규제장벽 분석 및 의사, 제약사의 협력' 세션에 참석해 이 같이 강조했다. 지 이사장은 고려의대 소아과 전문의로 한국애브비 부사장을 거쳐 국내 임상시험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출범한 KoNECT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 이사장은 신약개발의 패러다임 변화를 설명하면서 신약개발 생태계의 의미가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은 과거의 디스커버리, 전임상, 임상 1·2·3상으로 이르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을 벗어나 '퀵 윈-페일 페스트(Quick-Win, Fail Fast)'로 변화하고 있다.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POC(Proof of concept)에 도달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후기 임상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기술적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신약개발 초기단계부터 광범위한 협력을 통해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절약된 비용은 다른 R&D에 재투자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가 짧은 국내의 신약개발 환경을 살펴보면 협력적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은 더 강조된다. 그는 "신약개발 R&D 투자에 비해 성과가 적으며 신약 시즈(Seeds) 역시 너무 없다"면서 "국가 R&D 예산을 더 늘리기는 어렵고 부처간 유기적 협력이 안되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개인 연구자나 기업이 한 기관의 역량에 의존하는 환경도 문제다. 국내 산학협력이 개별기관대 개별기업으로 국한돼 있다는 설명이다.
지 이사장은 "각 주체의 신약개발 연구목적이 다르다. 개인 연구자나 기관은 좋은 논문을 내는데, 기업은 초기기술이전이나 주가관리 혹은 후기리스크 관리에, 의사들은 혁신신약의 접근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약개발에는 무관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체들 사이에는 큰 벽이 존재하는데 이는 마치 유대인이 결혼식을 할때 신랑과 신부가 손수건의 양쪽 끝을 잡고 춤을 추는(dancing together without touching) 모습과 같다고도 했다.
그는 "과거 신약은 발견이었다면 혁신신약은 표적 선정, 후보물질 합성, 안전성 평가, 제형 생산 등의 고안이 필요한 발명이 되고 있다"면서 "그만큼 다양한 산·학·병·연 전문가들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신약개발 선진국의 경우 다양한 신약개발 협력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미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공연구소, 대학, 비영리연구소 등의 연구결과를 그 기관이 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사용료를 받을 수 있게 허가한 바이-돌 법안(bayh-dole act, 1980년)이 대표적이다. 지 이사장은 "이 법안은 미국국민의 건강에 유익을 줄수 있는 연구의 경우 반드시 기업들과 협업해야 함을 명시했다"면서 "미국 바이오텍의 50%가 대학의 기술이전으로 만들어졌으며 바이오텍의 76%가 적어도 한개의 특허를 대학으로 가져온 생태계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협력연구 생태계의 실례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약품산업협회(EFPIA)가 2008년 공동 출범시킨 혁신의약이니셔티브(IMI, Innovative Medicine Initiative)도 주목받는다. IMI는 EU내 산·학·연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해 유럽 의약산업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기구로 예산만 50억 유로(2008~2020년, 6조 5000억원), 프로젝트 참여 인원만 6000여명에 이른다. 지 이사장은 "전체 예산을 협력형 생태계에만 투자하고 있다"면서 "프로젝트내에서 공유된 지식, 협력을 통한 결과물과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IMI는 임상시험 성공률 30%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면역, 호흡기, 신경, 퇴행성 신경질환 분야에서 5년내 임상적 POC(개념증명)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4개 질병군에서 새로운 진단 마커의 허가 및 적어도 2개(항생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이상의 신약 허가라는 결과물을 내겠다는 것이다. 자폐증 조기진단과 모니터링을 위한 바이오마커 개발, 조현병 임상시험 데이터를 확보해 환자수를 40%가량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임상 설계 등 산학협력을 통해 다양한 성과물이 도출되고 있다.
지 이사장은 "결국 국내 역시 정부가 나서 협력 R&D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의 산업화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KoNECT는 앞으로 범국가 첨단 융복합 임상시험 네트워크 구축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2005년 영국 전역을 잇는 UKCRN(UK Clinical Research Network)와 같이 임상시험 선진국을 중심으로 범국가적(Nation-wide) 개념의 임상시험 네트워크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지 이사장은 "환자, 연구자, 자원, (중개) 연구 등 임상시험 관련 각종 레지스트리를 구축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