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정부가 오는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대폭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급여와 비급여의 중간 단계인 예비급여를 신설, 원칙적으로 모든 의학적 비급여는 건강보험으로 편입시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큰 폭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진입 장벽도 낮아질 전망이다.
9일 보건복지부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고액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방지하기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의 비중이 높아 국민들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현실을 고려해 60% 초반(2015년 기준 63.4%)에 정체된 건강보험 보장성을 2022년까지 70%까지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는 80%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모든 비급여는 건강보험으로 편입된다. MRI, 초음파 등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모두 급여 또는 예비급여를 통해 2022년까지 급여화하고 미용·성형 등 치료와 무관한 경우에만 비급여로 남는다.
효과는 있지만 가격이 높아 비용 효과성이 떨어지는 비급여는 본인부담률을 30~90%로 차등해 우선 예비급여로 적용하고 3~5년 후 평가해 급여, 예비급여, 비급여 여부를 결정한다.
예비급여 추진 대상은 약 3800여개로 정부는 전문가 논의, 국민참여위원회 등을 거처 2022년까지 모두 급여와 예비급여를 결정할 예정이다. 세부적으로는 기준 비급여의 횟수·개수 제한은 2018년까지, MRI·초음파는 별도 로드맵을 수립해 2020년까지 해소할 방침이다. 무분별한 급여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심사체계 개편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진입 요건도 종전에 비해 완화된다.
복지부는 약제의 경우 약가협상 절차가 필요한 특성 등을 고려해 현재의 선별등재(Positive) 방식을 유지하되,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하는 선별급여를 도입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위암에 급여 중인 항암제가 다른 암에는 경제성이 미흡해 급여가 어려웠던 경우 사회적 요구 등을 고려해 환자 본임부담률을 30~90%로 차등해 급여화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가격 대비 효과가 입증되지 않으면 보험급여 등재 자체가 무산돼 일부 환자들이 고가의 약값을 지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높은 약가에 비해 치료효과의 정도가 분명하지 않아 급여가 어려웠던 의약품에 대해서는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급여화해 환자 부담을 완화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에 등재됐지만 적용 범위(대상질환, 횟수 등)에 제한이 있어 비급여 부담을 발생시키는 의약품으로 대상으로 급여 확대가 진행된다. 복지부는 고가의 중증 신약에 대해 협상력 약화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오는 2018년부터 선택진료는 완전 폐지된다. 기존에는 선택진료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약 15%에서 50%까지 추가비용을 환자가 부담했지만 앞으로는 선택진료의사, 선택진료비 자체가 모두 사라진다. 복지부는 선택진료 폐지에 따른 의료기관의 수익감소는 의료질 제고를 위한 수가신설, 조정 등을 통해 보상할 에정이다.
상급병실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도 확대된다. 현재 1인실과 2/3인실은 비급여로 구분돼 그동안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4인 이상 다인실 부족으로 비급여 상급병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단계적으로 2인 이상 다인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다만 1인실은 중증 호흡기질환자, 출산직후 산모 등 꼭 필요한 경우로 제안하고 1~3인실 본인부담은 상급병원 쏠림 현상을 감안해 기존(20%)보다 높게 책정할 예정이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제공병상도 확대된다. 현재 대부분 입원병동에서 간병은 사적 간병인 또는 가족이 해결하고 일부 병원에서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으로는 수술 등으로 입원한 급성기 환자가 간병이 필요하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2022년가지 간호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반병상을 10만 병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노인, 아동, 여성 등 경제·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필수적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내용도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치매국가책임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치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 신경인지검사, MRI 등 고가 검사들을 급여화하고 중증 치매 환자(약 24만명)에게는 산정특례를 적용해 본인부담률을 대폭 인하(20~60% → 10%)한다. 노인 틀니·치과임플란트의 본인부담률을 50%에서 30%로 인하해 치과 의료비 부담을 대폭 완화한다.
정부는 경제적 능력을 감안해 적정수준의 의료비를 부담하도록 소득하위 50% 계층에 대한 건강보험 의료비 상한액을 연소득 10% 수준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다만 상한액 인하에 따른 요양병원의 과도한 의료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요양병원 장기 입원자에 대한 별도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약 335만명이 추가로 본인부담상한제 혜택을 받게 되며, 현재 기준으로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는 대상자도 연간 40만~50만원의 추가적인 의료비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복지부는 추정했다.
정부는 이번 보장성 강화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의 건보재정을 투입한다. 내년까지 집중적인 투입(신규 재정의 56%)으로 조기에 보장성 강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보장성 강화 대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건강보험 국고지원(2017년 6조900억원) 확대 추진, 보험료 부과기반 확대 등 수입기반을 확충하고, 효율적 지출을 줄이는 사후관리 강화, 예방중심 건강관리 등 재정절감대책도 병행해 보험료 인상률은 통상적인 수준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국민 부담 의료비는 약 18% 감소(2015년 기준 50만4000만원→41만6000원)하고, 비급여 부담도 64%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500만원 이상 의료비 부담 환자는 약 66% 감소(39만1000명→13만2000만명)하고, 저소득층(하위 5분위)은 95%까지 감소(12만3000명→6000명)할 것으로 기대했다.